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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평단의 역할이 중요한 때

필진 칼럼 2008. 1. 1. 23:03 Posted by woodyh98
2008.01.01


초등학교 2학년 때 귓병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다. 1주일에 한 번 꼴로 2년을 한결 같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명동 성모병원엘 가야 했는데, 병원에서 나오면 골목의 만두집에서 물만두를 먹는 것이 일과 중 하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몸서리쳐질 정도로 아픈 귀 치료였지만, 오로지 맛있는 물만두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시간을 참아낼 수 있었다. 한 번은, 명동에서 스카라 극장까지 걷게 되었고 갑자기 영화 표를 끊은 아버지께서는 나를 데리고 극장으로 들어가셨다. 영화의 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황해, 장동휘, 독고성 등 남성미 물씬 풍기는 배우들이 나오는 전쟁영화였다. 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더니, 나름 영화를 본 적이 있다는 녀석 왈 “얼굴이 험악하게 생기고 이상한 말투를 쓰면 나쁜 놈이고, 잘 생기고 말씨가 고우면 좋은 사람”이란다. 여기에서 이상한 말투란 당연히 북한 사투리를 말한다. 실제로 교과서나 만화책에도 또 소년중앙과 어깨동무 같은 잡지에도 북한군은 험상궂은 모습이고 주인공인 국군은 늠름하고 잘생겼었다. 그렇게 세상물정 하나 모르던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군인이 등장하는 만화와 전쟁영화를 보면서 나쁜 것(나라, 사람)과 좋은 것의 구별방식을 배웠던 것이다. 세상이 변해 북한도 한겨레요 우리 동포라는 인식이 보편화 되었다지만, 여전히 사상과 이념이 다른 이들을 일방적으로 타자화시켜버리는 일은 도처에 비일비재하다.

지난 5년 동안 참여정부와 386을 중심으로 한 진보주의자들은 보수 세력에 ‘수구꼴통’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주었다. 문제는 수구꼴통이라는 낙인을 통해 잘못된 과거를 돌이켜보고 교훈으로 삼고자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배제하고 상대조차 할 수 없는 ‘구제불능의 인간’으로 타자화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마치 70년대 교과서에 나오는 ‘북한괴뢰’의 형상으로 보수집단을 매도하고 형상화시켜 국민에게 주입시켜왔으니, 화합은 고사하고 반목과 대치가 난무한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이었다. 아쉬운 것은, 두 진영 사이에서 화합과 타협을 조율해야 할 지식인 계층이 한쪽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에 머물고 말았다는 점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보수도 수구꼴통도 진보도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집권세력의 이념적 잣대로 단죄하거나 말이 안 통한다고 버리고 갈 수 있는 선택사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 대선은 특정집단의 일방통행에 염증이 난 국민의 고육지책이자 항거인지도 모른다.

영화 쪽으로 돌리면, 몇 년부터 네티즌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말이 눈에 띈다. 이를테면 ‘충무로 쓰레기 영화론’인데, “충무로는 쓰레기 조폭영화나 만드는 집단이며 한국영화 질적 저하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는 지난여름 <디 워> 광풍의 한축을 담당하면서 이슈몰이에 일조한 바 있기도 하다. 물론 판에 대한 정확한 통계나 사실에 근거한 정교한 비판이 아니기에 무시해 버릴 수 도 있으나,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생성 유포 재생산 과정을 고려한다면,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의 불만이 경계수위를 넘어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간 영화계는 공급이 수요를 좌우하는 ‘겁나게 먼 옛날’ 애덤 스미스식 경제이론에 기대어 시장을 지배해온 것이 사실이다. 몇몇 대형 배급사의 영화가 상영관을 독식하면서 관객은 특정영화를 강요받아야 했다는 말이다.

이런 가운데, 2007년 한국영화계가 체질개선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제작비 감축에 대한 영화인들의 공통적 합의를 도출해냈고, 일부 배우들은 평균 개런티 이하로(제작규모에 따라 탄력적으로)출연료를 낮췄다. 또한 제작비의 50%까지 육박하던 마케팅비 축소노력도 병행되었다. 언론배급시사회장에서 배포되는 보도 자료가 간소화된 것은 단적인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인과 관객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해소되기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연말 불거진 ‘극장관람요금 1만원 인상안’도 해를 넘겨 악재가 될 소지가 농후하다.

영화인과 관객, 극장과 관객이라는 두 집단은 공급자와 수요자의 위치일 뿐 아니라 필요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상보적 관계가 될 수 있다. 이질적이거나 대척에 놓인 집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두 집단의 목소리를 서로에게 전달하여 긍정적 작용을 촉발시키는 것도 평단의 임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껏 평단(저널도 이 범주에 넣어주자)은 제 기능을 다하였는가? 되돌아 볼 때이다. 네오이마주의 2008년은 바로 이 기능을 수행하려고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가장 힘들 것이라 예측하는 2008년 한국영화계에 비평기능을 통해 기여하려는 것이다.

새해가 되었다. 각자 소망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저 좋은 글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고 그것을 밑천 삼아 살림이 넉넉해지면 좋겠다는 솔직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 부디 독자여러분 모두의 소망이 다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무엇보다 건강하고 좋은 품질의 한국영화를 만끽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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