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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12 [인디포럼 월례비행] 언제쯤 끝이 날까, 악을 행하는 권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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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월례비행 [골리앗의 구조]+[행당동 사람들2]

‘칠, 팔 십 년대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최근 몇 달의 주요 뉴스들에서 가장 흔하게 접했던 말머리다. 어느 누구도 ‘공공연히 벌어지는 일’에 대해 설명하지 않지만 누구나 알고 있고 체험하고 있다. 마치 암시장의 뒷거래처럼 입을 닫은 채 행동으로만 전달되는 의사소통을 바라보는 심정이다. 이 상태로 몇 년 만 더 지속되면 한국은 세계 최고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농담이 쓰리게 들린다.

2009년 1월 20일에 일어났던 ‘용산 참사’ 100일 추모제를 앞둔 지난 4월 28일, 인디스페이스에서는 김경만 감독의 <골리앗의 구조>와 김동원 감독의 <행당동 사람들2>가 연달아 상영되었다. 제작 시기 순으로는 <행당동 사람들>에 이은 <행당동 사람들2>가 앞선 것이지만, 이 날은 <골리앗의 구조>를 먼저 상영했던 것이다. 두 영화의 상영에 맞춰, 극장 내의 분위기는 1부와 2부로 나뉘어졌다. 먼저 상영된 <골리앗의 구조>와 후에 상영된 <행당동 사람들2>는 서로 다른 지역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두 작품의 공통 주제는 철거구역이다. <골리앗의 구조>는 일산 풍동 철거민들의 투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소름끼친 날 선 다큐멘터리이고, <행당동 사람들2>는 행당동의 철거 이후 주민들이 힘을 합쳐 또 하나의 마을을 만들어내는 ‘철거 이후’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골리앗의 구조(2005)>가 <행당동 사람들2(1999)>보다 먼저 상영되었다는 사실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적지 않은 갈등과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원인과 결과가 맺어지는 과정을 다룬 <행당동 사람들2>는 <골리앗의 구조>보다 앞선 과거의 이야기로, 3년간의 투쟁 이후 쟁취한 행당동 철거구역에서 희망을 찾는 주민들의 아름다운 웃음을 주로 보여주고 있다. <행당동 사람들2>는 억압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서로 돕고 의지하는 세상 모든 ‘바른’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영화는 우리와 우리의 이웃들이 지향해야 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이야기한다. <행당동 사람들2>는 카메라를 잡고 있는 연출자나 행당동 주민 등 사건에 직접 뛰어든 인물이 아닌 제 3자의 나래이션으로 이야기를 열고 맺는다. 차분하게 타인의 시선으로 읽어 내려간 <행당동 사람들2>는 철거, 그리고 투쟁과 쟁취 이후의 대안에 대해 생각해보아야만 하는 중요한 지점을 다룬다. 하지만 이에 앞서 상영된 <골리앗의 구조>는 어떠한 희망도 없이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생존권을 위해 하루하루를 싸우며 연명해야 하는 강제 철거민들의 현실을 말한다. 유리조각이 발사되고 화염병이 터지는 등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카메라는 철거민들과 함께 위협과 공격을 버텨낸다. <행당동 사람들2>이 희망의 이야기였다면 <골리앗의 구조>는 희망 뒤에 가려져 있는 또 다른 희생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반복해서 일어나는 끔찍한 이야기들, 그리고 군사 독재 시절에나 가능했던 파렴치한 일들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골리앗의 구조>다. 두 영화는 약 10년의 시간을 두고 발표된 것이지만, ‘이후’의 이야기가 <행당동 사람들2>가 아닌 <골리앗의 구조>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 아닐까. <골리앗의 구조>에 이은 <행당동 사람들2>의 상영은,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진전 없이 실려 나가는 무수한 인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주는 것이었다.

(편집자 주: 네오이마주의 [인디포럼 월례비행] 상영현장 기사는 대담 내용의 전부를 편집을 거치지 않고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다른 인터뷰와는 달리 앞뒤 맥락이 희미해질 경우 불필요한 오해나 상영 및 대담의 취지가 왜곡될 수도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긴 분량의 대담이 독자의 인내심을 자극할 지언정 분명 곱씹어 볼 가치가 있는 내용이니 일독을 권합니다.)


최진성 : 진행을 맡게 된 최진성이라고 합니다. 인디포럼 월례비행이란 행사구요, 매달 오시는 분들도 계시는 거 같은데 이번 달이 세 번째입니다. 원래 공지로는 <행당동사람들1>이 상영된다고 나갔는데, 2주전에 (김동원)감독님 요청에 의해서 <행당동사람들2>로 바뀌었구요, 김경만 감독님 <골리앗의 구조> 이렇게 두 편 상영했습니다. 일단 감독님들이 영화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먼저 상영한 김경만 감독님 말씀해주세요.

김경만 : 네, <골리앗의 구조>를 만든 김경만입니다. 제가 여기 출연하신 채남병 위원장님과 같이 촬영했던 때가 2004년 11월이었어요. 그 전에 풍동에서 몇 년 동안 계속 철거싸움 하고 있는 와중에 침탈(2004년 5월 8일)이 들어온 게 계기가 됐어요. 제 친구가 이 분이 위험한 촬영을 다 했는데, 침탈 들어온 시점에 현장에 있다가 그 때 갖고 있는 카메라로 찍어서 촬영한 게 9시 뉴스에 나가는 게 계기가 돼서 협상이 들어오게 됐고, 그 결과로 풍동에 계신 분들이 임대주택을 얻고, 인터뷰 해주신 채남병 위원장님은 구속되는 걸로 결말이 났었습니다.

벌써 오래 된 일이네요. 2004년이었으니까요. 저는 풍동이 어딘지도 잘 몰랐습니다. 풍동이란 데가 이름그대로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대더라구요. 인터뷰 촬영 하던 도중에 너무 추웠어요. 저는 풍동이 어딨는지도 모르다가 친구가 거기 관심이 있어서 저도 덩달아서 가게 됐는데 그게 몇 년 동안 풍동 철거싸움에 막바지쯤이었어요. 하도 오래 끄니까 원래 결합했던 다른 연대단위 단체도 다 떨어져나간 상태였고, 가끔 가던 우리도 서로 하던 얘기가 '풍동 끝이 어떻게 날까' 뭐랄까, 정말 알 수 없다고 생각되면서 그런 말을 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원래는 제가 이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니었어요. 전혀 만들 생각이 없다가. 위원장님 구속되는 바람에 만들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부랴부랴 위원장님 인터뷰를 따서 만들게 됐죠. 11월 이후에 바로 사건이 정리되고 난 다음에 위원장님이 구속된 시점이었는데 마침 도망을 가셨었어요. 위원장님이. 그러다 잡혔죠. 오셔가지고 거의 1년 동안 이제 구치소에 계셨었고, 용역들은 구속이 안되고 바로 석방이 됐었습니다. 이게 간단한 사건의 개요입니다. 제가 너무 길게 얘기했나요. 오늘 길게 얘기하는 자리여서 길게 얘기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웃음)


김동원 : 저도 7~8년 만에 (영화<행당동사람들2>를)본 거 같아요. 굉장히 한편으론 여전히 감개가 무량했고요, 한 편으로는 김경만 감독에 비해서 너무 촌스러워서(웃음) 창피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제가 <행당동 사람들2>로 바꿔달라고 했어요. 그 이유는 1편은 94년도에 완성이 됐는데, 2편도 별로 좋은 건 없지만 그 때는 VHS와 8mm로 찍어서 너무나 화질이 열악했고. 또 한편으로 김경만 감독의 <골리앗의 구조>가 철거투쟁 과정에 관한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같은 철거투쟁 장면을 보여주는 것 보다는 좀 '철거투쟁 후에 철거민들이 과연 어떻게 살아갈까, 어떻게 살면 좋을까'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일반인들이 철거민들에 대한 선입관 같은 것을 좀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또 행당동을 찍었던 이유가 다른 철거지역도 많이 가봤지만, 가고 싶은 데가 있잖아요. 여러군데라도 발길이 향하는 철거 지역이 있는데, 그게 행당동이었거든요. 제가 상계동 때부터 철거촌에 있었는데 상계동 투쟁을 저는 절반의 승리라고 생각하는데, 상계동 주민들이 이루지 못했던 그런 꿈을 행당동에서 이뤄나간 것을 보았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에 행당동을 자주 다니게 됐어요. 여기서 소개 됐던 그런 지역 공동체 운동, 사실 철거투쟁이라는 것이 소극적으로는 철거를 막아내는 싸움을 하고, 철거가 끝난 후에 임대아파트나 그런 상응하는 보상을 받아내는 투쟁이기도 하지만, 적극적 의미로서는 철거투쟁 중에 얻었던, 배웠던 그 에너지를 갖고 철거투쟁 후에 그 뭔가 대안적인 삶을 살아나가는 그런 투쟁이라고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거든요. 그래서 <행당동사람들2>를 좀 고집 했습니다.

그리고 제 옆에 있는 분이 영화 속에 잠깐 보셨겠지만 유영우 회장님입니다. 지금은 회장님이 아니고. 장기집권 실패하셨군요(웃음). 사실은 저랑 동갑이에요. 제 아버지가 아니에요(김동원 감독에 비해 하얗게 샌 머리카락 때문에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데. 영화에서 보셨겠지만 처음엔 머리가 새카맸잖아요. 아까 보면서 <행당동사람들2>에 나왔을 때 '저 땐 좀 검은머리가 있었네'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아직까지도 빈민운동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하고 계시고요. 제가 사회자는 아니지만, 여기 오신 소감이 어떤지 한 말씀 좀 여쭤봐도 되겠죠.


유영우 : 저도 몇 년만에 제가 나온 필름을 봤는데요. 굉장히 감회가 새롭고 그렇습니다. 사실 오늘 여기 오는 걸 김동원 감독님이 무작정, 그냥 막무가내로 오래요. 오면 안대요. 인연이 인연인지라 안 오면 안돼서 와봤더니 이런 행사가 있었네요. 행사 얘기도 안하고 무조건 오라 그래서.

요새 이제 용산 문제가 터지면서 우리 사회가 심각한 재개발 문제에 봉착해 있는데 답답하죠. 현 정부의 행태를 보면 전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고, 사회적 분위기도 초창기에는 반짝하고 관심도 있고 그랬는데 지금은 전혀 여론도 형성도 안돼고. 언론매체도 별 관심이 없는 거 같고. 그 와중에 오늘 이런 개발의 문제 철거의 문제, 철거민들의 이야기들을 방영하는 걸 보면서 '오늘 누가 이 행사를 기획했는지 모르겠지만 참 잘하신 거 같다', 또 잘한 거는 '오늘 보니까 젊은 분들이 너무 많이 오셔서 좋은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이 드신 분들이 오셨으면 별로 재미없었을 거 같은데. 현재 이 사회 분위기상 '젊은 분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이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잠깐 회상을 해보면 뭣도 모르고 막 했어요. 93년에 철거싸움 시작할 때 하왕 2-1지구 세입자 대책위원장을 맡았었는데 그때 뭐 뭣도 모르고 뛰어 들어서 용역깡패들이랑 싸우고, 지명수배 당해서 도망당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행당동 사람들2>에서 보여주고 있는 거처럼 무작정 권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생존권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싸워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난한 사람의 문제는 고질적으로 우리 스스로가 풀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그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고민에 봉착하면서 철거싸움하면서 공부하고,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기도 하고, 선배들이 했던 걸 탐구하기도 하고 준비를 해 나갔어요. 주민들과 함께 했죠. 한 예로 저희가 신협을 만들었다고 아까 나왔잖아요. 그 때 3억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150억의 자산을 갖고 있어요. 그만큼 지역사회에서 컸죠. 철거민들이 만든거긴 하지만, 지금은 철거민 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온 주민들이 모두 부자건 가난하건 상관없이 다같이 이용하고 함께 하는 그런 은행으로 지역사회에서 발전을 했어요. 그런 것들을 꿈꾸면서 스스로가 삶을 좀 바꿔보자, 그리고 또 바꿔가는 과정 속에서 지역사회가 자연스럽게 발전하는데 기여해보자, 가난하기 때문에 뭐든지 못한다든가 가난하기 때문에 저 사람들은 이 부류에 속하지 못한다는 그런 편견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구조에서, 그게 아니라 가난한 것은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해서 가난한 게 아니라 사회적 모순에서 오는 거기 때문에 그 모순 속에서 우리가 대안을 찾아가고, 그 대안을 통해서 할 수 있다,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충분히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운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운동이 후세에게 잘 전달된다면 우리사회는 좀 더 밝은사회로 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고 지금도 지역에서 계속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를 얘기할 단계는 아닌거 같고요. 지속해서 가야겠죠. 그게 나중에는 평가는 다른 사람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는 할 수 있는 만큼 하는거고.

시사회 같은 거 하는 분위기에요(웃음). 영화 보여주고 나온 배우가 나와서 소감 말하고. 제가 오늘 갑자기 영화배우가 된 기분이에요(웃음).


최진성 : 오늘 월례포럼 제목이 <폭력 대 활력>이었는데. 유영우 선생님이 활력에 대한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신 것 같습니다.

용산사건이 1월 20일에 터졌고요, 내일이 100일(4월 29일)이 되는 날이죠. 지금 마침 용산4구역에서 직접 철거민 분들이 몇 분 오셨거든요. 잠깐 인사 좀 해주세요(노한나 용산4구역 철거대책위 총무부장 인사). 내일 100일이라 바쁘신 와중에 와주셨구요, 이따가 영화 얘기 마친 후 선생님께 용산 얘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행당동 얘기를 봤고, 풍동얘기를 봤고 또 용산사건이 있는데. 저도 솔직히 그냥 제가 관심 있는 영화 많이 찍고 공부하고 이러다 보니까 우리사회에 철거가 이렇게 많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고 있었어요. 얼마 전에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상영했던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시즌2>라는 옴니버스를 했는데요, 저도 이번에 안티MB를 주제로 참여했고. 감독들이 3분짜리 영상을 만들었는데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작품이 철거에 관련된 얘기였고, 제가 몰랐던 사건들도 있어서 '내가 너무 몰랐구나' 생각이 들었는데.

일단 감독님들에게 여쭤보고 싶은 게 김동원 감독님은 상계동부터 워낙 철거전문가(웃음)잖아요. 또 봉천동 사셔서 비슷한 일을 당하기도 하셨지만, 철거가 과연 폭력이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또 되게 궁금한 게 유영우 선생님 나오셔서 좋은 얘기 해주셨지만 철거가 끝나면 철거 지역이 과연 어떻게 되는지, 그 이후의 상황들이 궁금하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들에게 조금씩 들어보고 싶습니다. 먼저 철거전문가(웃음) 김동원 선생님 말씀해주세요.


김동원 : 상계동에는 보상계획이 전혀 없었어요. 그 때 얘기 들어보면 가옥주들이 이사비용으로 10만원 주면 굉장히 고마워하면서 이사를 나갔죠. 근데 투쟁이 길어지면서 안나가니까 보상을 50만원 줄게, 100만원 줄게 이러면서 보상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비공식적이었고, 그 때부터 임대아파트를 요구했거든요. 그 자리에서 만약 내가 1000만원에 월 10만원으로 살고 있었다, 그러면 최소한 그 정도 수준에서 살 수 있는 권리는 나에게 있지 않느냐는거죠. 보통 세입자에게 권리가 없다고 하지만 세입자가 그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그 동네가 개발될 수 있었거든요. 상계동만 해도 버스가 없었고, 수도도 없었고, 근데 동네가 형성되면서 전기나 이런 것들이 들어왔고 이게 개발로 이어지기 때문에 세입자에게도 권리가 있는 것이죠. 그게 90년대 돈암동 철거 때부터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게 됐어요. 그렇지만 지금 현재도 아파트 들어가기 되게 힘들구요. 지금도 단독 세입자 안되고, 동성동본 세대도 안되고, 굉장히 예외 조항이 많고 한 채라도 임대아파트 덜 짓기 위해서 많은 폭력을 행사하죠. 이주비라고 해서 300만원 500만원씩 그렇게 해서 이사 내보내거나 임대아파트 주고 그랬는데, 임대아파트를 한 채라도 덜 짓는 게 건설회사의 관행인데요. 아파트 짓기까지 몇 년이 걸리니까 행당동처럼 '가이주단지' 시설을 지어내라는 요구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 이후에 많은 지역에서 가이주단지를 짓고 있어요. 제가 살던 봉천동은 가이주단지를 짓지 못하고 1500만원씩 셋방을 얻을 수 있는 돈을 받았는데요.

그런 협상이 딱 끝나면 철거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이제 가이주단지 들어가 살거나, 뿔뿔히 셋방 얻을 돈 갖고 흩어지거나, 그렇게 되는데 가이주단지 들어갈 때쯤이면 굉장히 뭐랄까요. 누적된 피로나 혹은 철거싸움 중에는 긴장이 있고 적이 있으니까 주민들이 잘 뭉치고 단결이 되는데, 사실 그러면서도 여러 앙금이 내재해 있게 되죠. 가이주단지 가면 대부분 그런 것들 때문에 공동체가 깨지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어떻게 보면 행당동은 예외적 경우고 가이주단지로 더 단단해진 경우지만 여러 경우에 사실 철거투쟁 때 보였던 그런 힘이나 단결심이 없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사실은 철거가 끝나고 보상을 받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인데, 그 철거 이후에 대한 대비를 하면서 철거투쟁이 가르쳐 주었던 혹은 철거투쟁 때문에 가능했던 그런 끈끈한 사람관계를 더 발전시켜서 사업을 벌이고(이런 게 중요하죠). 또 영화 속에서 보셨듯이 우리가 아무리 자본주의에 어떤 비인간화 등 여러 가지에 대해 얘기해도, 도시에서 사는 한 그걸 벗어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잖아요. (철거 이후의 관계가)적극적으로 그것이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삶의 어떤 대안적 삶의 형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보는데, 거기까지 가기가 굉장히 힘든 거 같아요. 상계동도 그렇고. 위원장님은 잘 알지만 한 두군데 빼놓고는 거의 다 시도는 하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그게 철거투쟁 과정에서 '증오' 같은 걸 같이 배우죠. 평범한 사람들, 평범한 아주머니들이 철거투쟁 과정에서 욕도 배우고, 어떤 미움이나 이런 것들을 할 수 없이 모든 투쟁에서 마찬가지겠지만 역으로 배우게 되는데, 그런 것들을 잘 순화시키고 그 에너지를 다른 데로 끌어가는 그런 것이 굉장히 중요한 거 같습니다.


김경만 : 풍동의 경우는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처음에 풍동에 오래 사시던 분들이 철거가 되니까 세입자분들이 정당한 보상비나 이주비를 받을 수 없는 형편이니까 그 분들이 안 나가고 버티는 게 철거싸움의 시작이라고 수 있어요. 근데 이제 철거업체가 가만있는 게 아니죠. 그 마을 자체가 철거되기로 결정이 났다고 한다면 건물을 하나하나 다 헐죠.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안하고. 거기 있는 세입자의 경우는 풍동도 마찬가지지만 각자 원래 살던 집에서 나와서 가장 튼튼하게 생긴 건물을 골라서 공동으로 들어가신 거예요. 맨 나중에 들어가신 게 소망빌라라는 건물이었구요. 거기가 가장 튼튼했으니까요. 거기서 공동생활을 하신거죠. 건물 하나를 하나의 성곽처럼 방어벽을 삼아서 방어탑을 만들고, 외부에서 쳐들어 왔을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건데. 나머지 건물은 다 무너져 있으니까 그 일대는 폐허처럼 돼 있구요. 굉장히 이상한 것은 높이가 굉장히 높은, 높이가 거의 7,8미터는 되는 거 같았어요. 그 정도로 아주 높은 펜스를 치기 때문에 밖에서는 안쪽을 볼 수 없거든요. 안쪽은 사람이 있어서 포크레인이 밀고 들어오고 전쟁 상황인데. 바깥에는 멀쩡한 아파트들이 늘어져 있고 빵가게도 있고 그런 아주 이상한 풍경이라고 할 수 있죠.

공동생활을 하는 분들의 목적은 철거싸움이라는 게 공격이 들어오면 그걸 막는거거든요. 근데 그 때의 목적은 화염병을 던져서 포크레인을 태우는거에요. 왜 그러냐면 철거가 단순히 돈 문제만은 아닌 게 사실은 강제철거에 드는 비용이 세입자들 보상비용보다 더 크거든요. 사실 돈 문제면 세입자에게 돈을 줘서 내보내는 게 더 싼거예요. 근데 강제철거를 하는 이유가, 주택공사에서 직접 얘기를 들은건데 '선례를 만들지 않겠다'는거죠. 그런 선례가 만들어지면 '사람들이 보상비용 요구를 당연하게 생각할테니까'라는 대답을 하더라고요. 강제철거에 쓰이는 포크레인이 아주 고가의 장빈데, 거기 탑승하는 사람도 건설기사가 아니라 용역깡패에요. 용역 깡패 중에 전문적인 포크레인 운전사가 있는거고. 아까 보신 장면 중에 기억나실지 모르겠는데 방화복을 입고 있던 사람이거든요. 그 사람이 용역깡팬데 직접 운전해서 들어옵니다. 거기 쓰이는 포크레인은 간간히 등장한 일반적 건설현장의 포크레인과 달리 대형이고 규모가 좀 크죠. 거기에 용접을 해서 뿔처럼 만들어서 건물을 때려 부수는 거예요. 포크레인을 불 태우게 되면 비용이 올라가니까 협상이 그제서야 들어가요. 그전에는 협상조차도 해주지 않는게 주택공사의 작전인 거죠. 그런 일이 반복인데.

풍동의 경우도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던 거 같아요. 사실 용산의 일이 올해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사실은 옛날에 벌써 일어났을 법 한 일이거든요. 훨씬 전부터 계속 그래왔고요. 일이 이렇게 되는 바람에 결국 사람들이 철거라는 게 어떤건지 알게 된 셈이 돼버렸죠. 풍동 때만 해도 사람들에게 이런 장면을 보여줬을 때 반응 중 하나는 '200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냐'는 반응이었는데요. 지금은 모두가 그런데 의문을 갖지 않게 된 거 같습니다.


최진성 : 유영우 선생님께 여쭤볼께요. 투쟁보다 공동체가 더 어렵다고 하는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영화에서 다른 선생님이 '자체 브랜드를 갖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돼는지, 유지해오신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유영우 : 브랜드를 갖고자 했던 희망은 '옷을 만드는 사람들' 이라고 해서 브랜드를 가졌었어요. 제가 지금 개량한복을 입고 있는데, 이 옷을 자체 브랜드로 만들어서 하다가 역시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는 힘들죠. 시장진입이 어려우니까. 이런 옷들 하나 브랜드를 제대로 유통시키고 판매하려면 디자이너, 기본적인 자본부터 시작해서 판매, 유통구조 등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데 이런 걸 가난한 사람들이 출자금이라든가 쌈짓돈으로 해나가는 건 어렵죠. 3년 정도 시도하다가 망했어요. 5년 전에. 망해서 지금은 여러 가지 다른 걸 좀 준비하고 있고, 생협이라든가 올해부터 다시 준비하고 있어요.

공동체가 힘들다 하는 것은, 모든 일이든지 사람이 하는 일이거든요. 공동체 운동이나 철거투쟁이나. 이 세상 모든 건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거죠.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게 공동체 운동이죠. 그러려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잘 이뤄져야 해요. 근데 이 관계가 잘 만들어지는 건 굉장히 어렵잖아요. 그거처럼 어려운 게 없어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사람이라고요. 그만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건 어렵습니다. 그게 녹아나 있어야지만 공동체가 되는데 말처럼 쉬운 게 아니죠. 여전히 갈등하고, 싸우고, 이러면서 또 다시 만나고. 또 싸우고 만나고...이렇게 비비면서 가고 있는 것이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목적했던 가치, 목표점을 분명히 두고 그런 갈등과 문제들이 계속 발생해서 좀 어렵긴 하지만 그 가치를 중시하고 중심을 잡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가고자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 운동은 계속 존재하는거라고 생각하고.

저희들도 이 필름 찍을 때가 10년 전인데 10년이 지금 지금도 여전히 운동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동청소년과 관련된 활동과 신협은 꾸준히 성장 해왔고요, 생협 준비하고 있고, 다양한 사회복지 지원해주는 시스템도 만들었고, 단오제는 재작년에 끝났어요. 단오제 대신 지역문화제로 바꿨는데, 단오제 할 때는 철거민이나 어려운 사람의 참여가 많았어요. 지금은 지역문화제로 바꾸면서 우리(임대아파트) 옆 일반 분양 아파트가 6~7억씩 나가거든요. 그런 일반 아파트에 있는 에어로빅 댄스하는 아줌마들 불러서 공연하고(웃음), 일반주택에 살고 계시는 분 중에 알음알음 알아서 악기 등 특기가 있으면 불러오고. 한마당 속에서 모든 지역주민들이 같이 자기 장기를 뽐내고 어우러지는 그런 지역문화제로 바꿨어요. 자꾸 그런 걸 통해서 지역사회를 묶어가는거죠. 가난한 사람과 부자와 사이에 벽을 허무는 그런 것들을 시도하는거죠. 여러 방법을 통해서. 서로 배려하고 나누는 지역사회를 만들어가려고 하는거죠. 그런 노력을 조금 조금씩 하고 있어요. 변화는 금방금방 오는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십년이 걸리든 이십년이 걸리든 목적을 갖고 계속 간다면 언젠가 이뤄지지 않을까하는 그런 희망을 갖고 움직여가고 있습니다.


최진성 : 행당동 통해서 가장 놀라웠던 게 생협이나 신협같은 조직이 발생했다는 점인 것 같아요. 그리고 <골리앗의 구조>에서 굉장히 놀랍고 충격적이었던 것은 공권력이나 용역깡패가 아니라 온갖 공기업이, 한전이나 소방서 주택공사 등등이 네트워킹해서 가난한 사람을 폭력으로 밀어붙이는 점이었어요. 전 이게 이영화의 핵심이자 가장 충격이었던 거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경만 : 글쎄요. 뭐. 더. 흔히 사람들이 작전회의를 하는거죠. 철거대책을 세울 때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일단 그 철거지역은 단전이 기본적으로 되고, 단수도 그렇고. 사람이 살고 있어도 개의치 않는 상황이어서. 물론 거기 계신 분들(철거민)은 철거싸움의 노하우가 있는 분들이라 알아서 연결을 하시더라고요. 인터넷도 그렇고 전기도 그렇고(웃음). 그런 게 굉장히 재밌는 광경이었고요.

(철거를 위한)대책회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본 적은 없어서. 다른 분이 몰래 찍은 걸 봤는데, 굉장히 고압적이죠. 당연히 그 사람들은 많이 하던 장사니까 전혀 거리낌이 없어요. 이런 식의 철거나 밀어붙이기가 사람을 죽을 지경으로 몰아넣는 거에 대해 미안함이나 불편함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요. 그게 젤 무서운건데. 경찰도 마찬가지고. 제일 무서운 게 사람 생각인 거 같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자기가 계속 합리화를 하는 거죠. 거리낌 없도록. 소방서도 아까 보셨겠지만 불끄러 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포크레인에 불 붙으면 꺼주려고 오는 거죠.(웃음) 세입자 있는 소망빌라 불 붙었다고 끄는 게 아니라, 철거싸움에서 용역을 도우러 오는 사람들이죠. 화염병 싸움을 할 때, 소방서랑 경찰이랑 경찰은 뒷전에서 멀리 관전하는 입장이고. 마지막 장면에서 경찰이 왔던 건 누군가 112로 신고를 했어요. 경찰이 와서 도와달라고 신고하는 바람에 경찰 체계상 어쩔 수 없이 출동했던 거지, 지역지구대에 연락했으면 사실 안 오죠. 오면 멀리서 용역깡패들이 버젓이 돌아다니는데 멀리서 방송이나 하는거죠. ‘화염병 던지지 마시구요’ 등 하나마나한 얘기를 해요.

이게 어떻게 보면 철거싸움 문제 만은 아닌 거 같은 게 한국은 그게 전통인거 같아요. 힘이 없는 쪽에서 들고일어나거나 이러면 철저하게 짓밟는 거죠. '빨갱이다, 폭력적이다' 이래서 아주 그냥 초토화를 시키는 게 한국의 전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웃음) 농담이 아닌 거 같아요. 한국역사 초기부터 그랬잖아요. 그게 면면히 쌓여온 거 같더라구요. 정부나 공권력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되게 오랫동안 형성된 거잖아요. 위에서 주입이 되고. 그런 과정을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징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보기만 해도 그러네요.


최진성 : 정말 무서운 곳에 살고 있는 거 같고요. 김경만 감독님 원래 관객과의 대화하면 단답형인데 오늘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걱정했거든요.

용산 선생님(노한나 용산4구역 철거대책위 총무부장)에게 좀 여쭤보겠습니다. 1월 20일 날 알다시피 용산참사가 일어났고요. 내일이 100일째고, 여러 행사가 준비되고 있고,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하는 상황인데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들 묻고 싶습니다.


노한나 : 제가 영화를 보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전혀 없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이 영화 속에 다 있었습니다.

저희는 주거가 아니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에요. 용산이라는 곳에 장사를 하신 분들이 전부 짧게는 2,3년이지만 2~30년 되신 분들도 있습니다. 용산이 맨 처음에는 상권도 굉장히 안 좋았지만 그 속에서도 진짜 지금까지 굉장히 많은 고생을 하면서 지금을 만들어놨는데 어느 날 쫓겨나는 입장이 됐어요. 개발로 인해서 저희도 뭔가 어떤 혜택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막연히 기대했어요. 근데 돌아온 게 3개월 영업보상이에요.

저희는 상권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그런 이익에 좀 앞장서 있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인데도 이 논리가 너무 비합리적인 거예요. 그래서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행하는 법질서가 이런 것이면 그냥 조용히 나가야하나, 그럼 다른 곳에 나가서 또 다른 고생을 해야할텐데 생각이 많았어요. 사실 다시 이만한 상권을 만들려면 가진 재산의 대부분을 또 투자를 해야 지금 정도의 상권을 이룰 수 있는데 '이렇게 하는 게 옳은가, 아니면 여기서 한번 싸워봐야 옳은가' 제 경우에 그런 고민을 했어요.

나라와 법, 국가와 싸우는 건 굉장히 무서운 거잖아요. 거기에 대항하는 건 전부 나쁜사람이고, 빨갱이가 되는거고. 저도 사실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런 것을 도와주는 곳도 없고, 하소연 할 때도 전혀 없었어요. 그러다 전철연을 알게 됐고 그 곳에 가입해서 활동을 하다보니까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은 (철거 문제에 있어서)주거는 굉장히 많이 좋아졌습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1250만 원 정도의 이주비가 나오고, 잘 모르는 분들이나 나이 드신 분들은 그것도 못 받고 이주비용 300만원도 고맙게 생각하고 받아가시는 분도 있고, 끝까지 자기 몫 찾아서 임대아파트 받아가는 상황도 있는데. 달라 그러면 주고 모르면 그냥 나가는 상황이죠. 그보다도 요즘은 상권에 대한 투쟁이 많아졌습니다.

아까 먼저 풍동의 사건(<골리앗의 구조>)을 볼 때 전 너무 심장이 떨렸어요. 왜냐면 20일 때를 다시 보는 거 같아서 굉장히 마음이 떨렸습니다. 돌아가신 분들 중에 같은 건물에서 장사하시던 양회성씨나, 또 도와주시러 온 분들도 같은 철거민으로 다른 지역에서 철거의 아픔을 겪으셨던 분들이 와서 도와주셨어요.

저는 이 나라 안에서 나이가 오십이 다 돼도록 살면서 교통법규 어기는 것조차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살았어요. 20일에 사건 발생하는 날부터 지금까지 100일 동안 그곳에서 지켜보면서 언론이나 정부에서, 경찰서에서 구청에서 모든 것에서부터 감독님들이 말씀하신대로 저희가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에' 나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버리고. 이에 항거하는 저희가 이상한 사람이 돼 버리고. 기본권인 전기와 물이 끊어져요. 화장실을 못 씁니다. 수도가 끊겨서 화장실을 쓸 수가 없어요. 이동화장실이 있었는데, 맨 처음에는 사람이 죽었으니까 누가 잘잘못이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구청에 전화했더니 갖다 주더라구요. 근데 검찰의 발표가 '철거민들이 잘못했다‘는 여론은 얻고 나서부터는 화장실을 가져갔어요. 그렇게 철저하게 구청이나 경찰서나 모든 곳에서 다 저희를 배제하고 이상한 집단으로 만들어가는 상황입니다. 저는 전철연의 기조도 있지만, 사실 내가 여기서 머물러 '그만 둘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을 많이 합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각자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살아왔어요. 장사하면서 이익내고 생활하고. 그러다 같이 모여서 행동하고 진짜 구속되는 것을 각오하고 싸움하다보니까, 거기서 이제 사람 사는 냄새를 맡게 된 것 같아요.

저희가 처음에 요구한 것은 개발이 될 때 '가상가'를 공동으로 할 수 있게 임시상가를 내달라는 거였어요. 4~5평정도로 장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박한 꿈을 요구했습니다. 근데 건설회사와 조합의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들은 '어림없는 소리다, 꿈꾸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게 합당하지 않은 아주 이상한 소리로 만들어버렸죠. 저는 (<골리앗의 구조>를 통해서)여기서 당했던 걸 보고, (<행당동사람들2>을 통해서는)저희가 나갈 해답을 보고. 문제점과 해결책을 다 보고 가는 거 같아서 마음이 좋습니다.

어제 영정사진을 들고 앉아있는데 수사과장이라는 사람이 3차 경고까지 하면서 구속하겠다고 했어요. 저도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고 왔던 사람입니다. 죄가 4가지나 되더라구요. 집회 때 앞에서 발언한 죄, 남일당 건물에 들어가서 불법침입죄, 전경들 막아섰다고 공무방해죄, 포크레인 막았다고 업무방해. 이래서 4가지 죄를 조사받고 나왔는데, 어제 영정사진 들고 앉아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남편에게 애들에게 하직인사를 했어요.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잘 있으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이 길밖에 갈 수가 없고, 여기서 구속돼도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분향소에 있는 사람이 15명입니다. 구치소에 수감된 분들 포함해서 모두 26명이 남아있는데. 15명 중 한 명이 남자고 나머지가 여자에요.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진짜 말씀하신대로 욕할줄도 모르고. 생활비 벌어서 애들 학비 좀 더 보태고 이렇게 살려고 했던 사람들 입에서 용역들과 싸우면서 욕을 하면서, 이게 끝나고 나면 '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할 정도에요. 돈이고 뭐고 떠나서 내가 여기까지 와서 왜 철거민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슬픔도 많이 느끼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냥 물러서면 그냥 문제점을 인정하는 거예요. 끝까지 싸워서 내가 빈손으로 나가는 한이 있어도 이것만큼은 끝까지 뭔가를 규명을 해서 결과를 봐야겠다, 그리고 올라가신 분들의 목적이 어땠든 그날 그 사고현장에 제가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제가 진압하는 걸 보면서 '아, 이 나라는 대항하는 자는 저렇게 죽이는 구나', 컨테이너 박스가 올라갈 때 이 나라의 공권력이라는 게 대화를 하자고 한 번도 얘기하지 않고 바로 (진압)시작하는 걸 보면서, 대한민국에 사는 거 자체가 힘들고, 버겁고, 무섭고. 아이들을 남겨두고 죽어야 하는 게 걱정스럽더라고요. 돈이 많으면 될지, 공부를 많이 하면 될지... 그런 고민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장황하게 말씀드렸는데 상황은 그렇고요, 내일이 100일이 되는 날이고 꼭 한 번 와서 봐주세요. 끝까지 남아있는 분들이 힘이 있고, 머리고 좋고, 잘 싸우는 사람이 아니고 전부 힘없는 사람들이에요. 15명이 90일 넘게 싸우니까 굉장히 강해졌어요. 경찰도 용역도 안두렵습니다. 하루라도 그냥 지나가면 조용하고 심심해요(웃음). 그 정도로 저희가 강해졌어요. 어떤 불의 앞에서도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됐습니다. 하여튼 이렇게 인사를 드리고 저희 용산에 대해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시청 앞에서 7시에 저희들 전부 나가서 저희들의 현재 상황을 알리려고 합니다. 지금 언론에서도 그렇고 어느 곳에서든 관심 안 가져줘도 저희가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용산이 굉장히 바람이 세거든요. 그렇게 추운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는 이 시점까지 견딜 때, 보이지 않는 손길들로 인해서 라면이 떨어지면 라면을, 쌀에, 김치에... 전국에서 많이 보내주셨어요. 그것이 우리나라의 어떤 정이고 사람 살아가는 맛이라는 걸 저는 배웠습니다. 철거민이 되기 전에는, 돈이 많아야 행복해지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악착같이 하루에 10~15시간씩 일했는데, '아 돈이 없어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요즘엔 돈 한 푼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용역 깡패와 경찰과 대응하면서, 제가 50년 살면서 사람답게, 그렇게 좀 인정을 느끼면서 산다는 걸 처음으로 배웠습니다.


최진성 : 말씀 감사드리구고요. 관객 분들의 질문이나 궁금한 거 받겠습니다. 앞에 있는 두 감독님, 유영우 선생님, 용산 선생님(노한나) 모든 분께 질문하셔도 괜찮습니다.

관객1 : 광명에서 서울로 회사를 다니는 일반 회사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요번 용산참사 문제 뿐 아니라, 옳고 그르고 비상식적인 것에 대해서 분노를 하게 되는데, 이번 용산 참사 때도 그런 생각으로 동료들과 참사현장에 여러 차례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고인이나 투쟁하는 분들의 그 슬픔을 전부 다 알 수 없지만,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진 거에 대해 분노하고 책임감을 느끼는데, 현장에서 그런 집회를 주도 하는 분들을 보면 저희들이 잘 모르는 용어를 갖고 얘기합니다. 예를 들면 투쟁이랄까, 일반 시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당사자 문제는 아니더라도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힘이 되게 위해 찾아갔는데, 막상 찾아가면 함께 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생깁니다.

저희가 찾아갔을 때는 이 문제에 대해서 경찰의 과잉진압 부분하고 서울시의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재개발 정책에 대해서 먼저 풀어나갔으면 하는데, 가보면 대부분의 구호라든가 요구사항이 정권퇴진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는 물론 결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면 해야겠지만, 지금 당장 유가족 등이나 투쟁하는 분들에게는 재개발 문제라든지 이런 거에 해결방안을 집중하고 조명해야 하는데 그거는 굉장히 약하게 비춰지고, 결국에는 정권퇴진과 가투라든지 경찰과 전경의 대치에 초점이 맞춰져서 일반시민이 한발자국 더 물러나게 됩니다. 효과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못 찾고 답답해서 질문을 드리는데, 이런 점을 생각하고 계신지. 방향성에 대해 얘기 듣고 싶습니다.


유영우 : 어떻게 답변을 드려야 할지, 답변이 될지 잘 모르겠는데. 우선 제 얘기를 해볼게요. 철거싸움을 하고 가이주단지에 들어가고, 협동공동체 운동을 지역에서 주민들과 준비하면서같이 하는 운동이 주거권운동입니다. 용산문제도 저희 단체에서 실무자들이 파견돼서 범대위에 속해서 이런저런 역할들을 하고 있어요.

이게 좀 시대적 흐름이 있는 거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오랫동안 한 건 아니지만 한 20년(동안 철거 및 주거권운동을) 하다보니까, 제가 할 때만 해도 지금의 시대적 분위기와 많이 틀렸어요. 그때는 워낙 산동네, 달동네 철거를 너무 많이 하다보니까 일정정도 공권력이나 정부라든가 이런 쪽에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어찌 보면 운이 좋았던거죠. 그래서 가이주단지를 쟁취해냈고, 그게 전파돼서 수많은 지역에 가이주단지가 생기고, 주거안정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고 그랬거든요.


지금 골리앗이 풍동 필름(<골리앗의 구조>)에 나왔지만, 골리앗이 생긴 게 90년대 처음 시작됐어요. 청량리에서. 그 다음에 두 번째가 저희 지역이었어요(행당동). 그 외 들불처럼 철거싸움에는 으레 골리앗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골리앗을 중심에 두고 철거용역과 거기 계신 주민들과 극렬한 대치가 시작된 게 2000년대 들어와서 양쪽간의 싸움이 심화됐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고. 그 정점에 이른 게 용산참사에요. 용산참사는 그 동안의 개발지역에서의 골리앗 싸움의 중심에 있었던 철거깡패와 조합과 주민의 갈등이 아니라, 공권력 저지른 일이에요. 공권력이. 이건 다른 싸움과 틀려요. 기존의 싸움과 전적으로 틀립니다. 공권력이 직접 개입한 거거든요. 그래서 아까운 목숨을 잃었죠. 이건 정부가 책임져야 할 문제거든요. 그 본질을 잘 보셔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둘째로 지금 질문하신 내용의 일반시민이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 심정적으로 행동적으로나. 그런 부분이 안타까운 게 현 정부가 워낙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세부적으로 넘어가기가 당사자 분들에게는 굉장히 어려울거에요. 저도 한 발 건너서 보면 말씀하신대로 하는 게 맞는데. 범대위도 그런 부분을 고민안하는 건 아니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워낙 안풀리니까. 용산에서 싸운 분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 넘겼고, 명예회복을 안 시키고, 구속시키고... 워낙 이렇게 강경하게 나가는 기조가 있어서, 지금 지적하신 부분은 100%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전환되기가 쉽지 않은 국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100일을 기점으로 해서 뭔가 좀 확산되는, 지적하신 부분처럼 변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요.


최진성 : 시간이 많지 않은데요, 관객 질문 짧게 하나 더 받겠습니다.

관객2 : 질문은 아니구요. 질문하신 분이 함께 할 수 있는 게 뭐가 없느냐고 물으셨잖아요. 제가 용산 4구역 철대위 총무부장님(노한나)과 같이 왔는데 짧게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용산의 촛불미디어센터, 촛불방송국이라고 해서 남일당 건물 뒤에 고 이상림 씨가 운영하시던 호프집을 문화공간, 미디어공간으로 만들었거든요. 예전에 김동원 감독님 오셨을 때 드렸던 말씀에 예전에 상계동에는 그 당시 철거전문가인 김동원 감독님만 카메라를 들고 알리는역할을 하셨는데, 지금은 작년의 촛불국면에서 봤던 것처럼 (1인 미디어들이)직접 만날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생각해서, 거기 공간을 마련해서 작업을 한 달 정도 진행하고 있어요. 지금 하는 게 생중계도 하고 있고, 철거민 뉴스를 만들고 있고, 라디오 방송도 만들고 있어요. 영상뉴스도 만들어서 인터넷으로 상영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다음 까페에 촛불미디어센터 치시면 나오는데, 가입하셔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웃음). 수많은 김동원 감독이 시민들 사이에서 나왔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최진성 : 촛불미디어센터 분들 인사 좀 해주세요. 고맙습니다.

김동원 : 아까 질문하신 분 지적이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서 말씀드리고 싶은데. 어떤 투쟁이든지 층위가 두 가지로, 거시적인 면과 구체적인 사안을 동시에 갖고 있잖아요. 예를 들어 대추리 경우에, 대추리 지키기와 더불어서 '미군 물러가라'는 구호가 같이 나오게 되고. 80년대 같은 경우는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라는 구호가 동시에 맞붙게 되거든요. 근데 이제 그거 때문에 사실은 소위 운동권과 당사자가 같이 결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반면에, 자칫하면 그게 분열할 수 있는 요지가 되기도 하죠. 강경파 온건파 이런 식으로. 그런 것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은 말씀하신대로 일반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장치들을 갖는 것도 중요하고, 일반시민들도 '아 저거는 어떤 의미에서 저렇게 강경한 구호가 나오고 있구나', 말하자면 운동이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고요.

사실 용산 같은 경우도 얼마 전까지 살벌했는데 문정현 신부님이 3주전에 들어가신 후에 분위기가 굉장히 부드러워졌어요. 밥도 주고요(웃음). 매일 7시에 미사를 집전하시는데 아무런 부담 없이 참가하실 수 있고요. 사실 용산 분들 지금은 모르지만 곧 지쳐 갈 것 같아요. 이게 사실 철거싸움이라는 게 지난한 싸움이에요. 몇 년씩 걸리는데. 처음엔 모르죠. 한 두 달이면 끝나겠지 하다가 몇 년씩 가는데 그런 것들을 좀 뭐라고 할까요. 아무것도 없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방문하고 한 마디 나누고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저는 용산 경우 분위기 자체가 불에 타죽었고 강성인 전철연이 있고 여러 살벌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아마 문정현 신부님이 그거 때문에 들어간 거 같아요. 희석시키기 위해서. 말씀 들어서 알겠지만 풍동 위원장이나 행당동 위원장이나 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런 지경에 놓이게 된거거든요. 거기 가시면 중요한 걸 얻어 가실 수 있어요. 다른데서 느낄 수 없는 걸 느낄 수 있는 거 같아서 적극적으로 방문하시길 권합니다.


최진성 : 관객과의 대화 많이 못해서 너무 아쉬운데요. 감독님 두 분에게 한 마디씩 듣고 오늘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아까 촛불미디에센터에서 오신 분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예전에는 김동원 감독님이 만드신 <상계동 올림픽>이나 <행당동 사람들>을 저는 대학 때 보면서 '저런 데서 누군가 찍고 있구나', '영화는 참 촌스럽지만 정말 대단하다'(웃음)생각했어요. 오늘도 깜짝 놀라셨을거예요. 그 촌스러운 나래이션과, '우리 함께 소풍가지 않을래요'(웃음)같은 지금은 꿈도 꾸지 못할 놀라운 나래이션...(웃음) 그때 김동원 감독이 혼자 카메라를 들었다면, 지금은 굉장히 많은 카메라가 생겼죠. 너무 좋은 거 같구요. 이런 시대변화와 더불어서 감독님들 생각도 있을 거 같은데 간단히 듣고 정리하겠습니다.

김동원 : 사실 할 말은 되게 많은데. 제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삶의 본질적인,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의 문제가 철거 문제에 있다고 생각해요. 나에게 주어진 공간이 무엇인지, 내가 발 딛고 있는 우리집이나 이런 것들이 어떻게 내게 허용된건지, 혹은 내가 누구 것을 뺏은 건 아닌지... 저는 굉장히 여러 가지를 상계동에서 배웠는데, 상계동 속편을 만들고 있거든요. 글쎄 오늘 저도 이 자리에서 잊어버렸던 것들을 다시 좀 환기 했구요. 잘 만들어야겠다는(웃음) 의지를 다지게 돼서 굉장히 좋습니다.

김경만 : 영화라는 게 송구스럽고 민망한 일인 거 같아요. 영화 만든다는 거 자체가. 실제 사건 주인공인 채남병 위원장님은 여기 못오고 계신데 제가 이런 자리에 나와 얘기를 한다는 게 참 민망합니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고맙습니다.

유영우 : 삶의 자리라는 말이 있잖아요. 용산의 문제는 상권의 문제였습니다. 상권의 문제가 지금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큰 문제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더 말씀드리는 이유는 과거에는 조금씩 개발했기 때문에 상권이 별로 없었어요. 근데 지금은 대규모 사업을 통해서 대규모의 상권이 한꺼번에 철거되는데 거기에 대한 대책에 전혀 없는 상태죠. 근데 이게 용산을 통해 알려진거죠. 고귀한 목숨을 통해서요. 이런 문제들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거냐면, 불행하게도 우리사회는 집이라는 걸 재산증식의 수단, 투기의 수단으로만 알고 있고, 이를 통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하는 욕심을 가진 것이 대다수 국민의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으로 개발의 문제가 바뀔 수 없는 거죠. 여러분만이라도 삶의 자리의 본질의 문제에 좀 더 고민하고 중요하게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최진성 : 월례포럼 네 번째 시간이 5월 26일에 있습니다. 이강현 감독의 <파산의 기술>을 같이 보고 얘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으니까 다음 달에도 와주시구요. 행사를 주최한 인디포럼이 매년 하는 영화제가 4월 29일에서 6월 5일까지 인디스페이스와 상상마당에서 하는데 많이 와주세요.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기사: 강민영
녹취: 장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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