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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피카디리 극장 앞에서

필진 칼럼 2008.12.02 17:02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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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균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에 담긴 서울의 풍경이 그렇게도 인상적이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쉽게도 나의 게으름 탓에 [멋진 하루]를 보진 못했지만 영화 속에 담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시의 미학적인 모습이란 그 상상만으로도 나를 즐겁게 한다. 미리 털어 놓자면 내가 사는 곳은 서울이 아니다. 지역번호도 02번을 쓰고 있는, ‘거의 서울이나 마찬가지인 도시’ 라고 늘 떠들고 다니는 광명시가 나의 정확한 주거지이며 서울은 내가 생계를 위해 다니는 회사가 있는 곳이고 친구들을 만날 때, 혹은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해 주로 찾는 장소일 뿐이다. 그러니까 살짝 비틀어 말하자면 서울은 내게 있어 생계와 대인관계, 그리고 문화 생활을 위해 만원 지하철에 부대끼며 찾아야 하는 도시이고 집이 있는 광명시야 말로 모든 일과가 끝난 후의 휴식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어딘지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도시. 태어난 그 순간부터 맴돌아온 곳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대한 나의 인식은 그다지 좋은 것만은 되지 못한다. 인구, 행정, 교육, 문화 등 너무도 많은 것이 집중되어 과부하에 걸려 버린 도시, 아등바등 살아야만 간신히 버텨낼 수 있는 갑갑한 도시. 서울이란 내게 그런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 속에 담긴 이 도시의 풍경은 한번쯤 돌아볼만한 가치가 있다. 하루의 태반을 보내면서도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일상의 숨어있는 1인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한국 영화 속 도시의 풍경에 아쉬움을 느꼈다면 그 이유는 도시가 단순한 배경 그 이상의 역할을 해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내가 숨어 있는 영화들을 제대로 찾아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항상 마주 대하고 있는 도시 공간의 재조명이 그만큼 더 어려운 일이라는 반증도 될 수 있을 터. 꿩 대신 닭이라고, 아쉬운 데로 해외의 다른 영화들, 그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곱씹으며 어서 이처럼 일상적인 고독의 두께가 묻어 나오는 도시의 모습을 한국영화 속에서도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만나게 된 영화가 바로 [접속]이다. 난 이 영화를 1997년 가을, 군복무 중에 휴가를 나와 찾아간 피카디리 극장에서 보았다. 때마침 한석규와 전도연이 연기하는 동현과 수현도 피카디리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극장 입구 앞에 나란히 서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눈 앞에 펼쳐진 너무도 익숙한 풍경. 그래, 그들이 머물다 간 곳에 지금 내가 와 있다. 그들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간 그곳을 나 또한 지나고 있다. 물론 수개월만의 바깥 나들이가 주는 남다른 감회 탓도 있었을 것이다. 시원한 가을바람에 막연히 감상적이 되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 “너란 녀석이 원래 좀 그래” 라고 말해도 달리 반박할 도리는 없다. 그래도, 영화 속에서 익숙한 풍경이 펼쳐지는 것을 바라 보는 일은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다.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마냥 머나먼 별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것,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가 내 주변 어디에선가 실재하는 이야기이고 더 나아가 곧 나에게도 생길지 모를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스크린 속 서울의 풍경을 보며 느낀 동질감의 실체가 아니었을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접속]이란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도 벌써 11년 전의 일이고 당시 [접속]이 기록한 흥행 스코어도 이젠 별로 대단할 것이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사람은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향수를 달래기 위함일 수도 있고 지난 과거의 흔적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1997년 가을의 종로거리는 10개월 정도 남은 제대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던 어느 까까머리 육군상병의 모습을 품고 있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순 없어도 그 시절의 감정들을 환기시켜주는 것이야말로 이 각박한 세상에서 도시가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위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터. 하지만 11년 전 내가 느꼈던 그 동질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어슴푸레한 불빛이 비추던 피카디리 극장과 동현이 수현을 내려다 보던 케익, 커피, 아이스크림 전문점 C.C.I의 풍경은 [접속]이라는 영화 속에서만 다시 볼 수 있는 유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시류에 발 맞춰 가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들 한다. 추억이 밥 먹여 주는 것 아니라고도 이야기들을 한다. 그런 시대의 흐름에 보폭을 맞추듯 피카디리 극장도 멀티플렉스로 재개관 되어서 마치 미래도시의 건축물 같은 각진 모양새를 한 채 자리하고 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던, 그 이름마저도 예술적인 피카소 극장은 폐관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서울 시내에서 마지막 남은 음악감상실이라고도 하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어느 호프집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다른 상점들이 들어서버렸다.


C.C.I에서 쉐이리로 이름을 바꾼 그곳은 아직 그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듯 영화 [접속]의 포스터와 간략한 설명을 첨부해 놓았지만 지금 그곳을 오가는 이들 중 [접속]이라는 영화를 제대로 보았거나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동네 비디오샵들이 줄줄이 문 닫은 마당에 케이블 방송에서도 잘 틀어주지 않는 영화를 DVD 구입까지 해가며 볼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냔 말이지. 그래, 개발과 부가 가치 창출을 위해서라면 단관 극장의 흔적 따윈 망설임 없이 지워버려야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복합상영관에 종합상가 만들겠다고 다시 지어 올린 건물의 상가들이 갈 때마다 휑 하기가 그지 없으니 이 또한 어처구니 없을 따름이다. 그것은 결국 더 크고 화려해진 외관을 앞세워 시선을 잡아 끌 순 있어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구석구석을 살펴볼 느긋함까지는 주지 못하는 각박한 공간일 뿐이다. 그래서 금융권 회사를 다니면서도 지극히 경제 개념이 희박한 괴상한 인종인 나는 잠시 이런 생각을 해본다. 결국엔 마음이 따뜻해져야 지갑도 열리게 되는 것일 거라고 말이다. 뭔가 좀 푸근하고 천천히 돌아보고 싶은 여유가 생겨야 지갑 열고 돈 쓸 생각도 날 텐데, 오랜 세월 호흡하며 정이 들어버린 많은 것들을 갈아 엎은 자리 위에 신축 및 증축 작업을 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곳에서는 덩달아 조바심만 들 것 같다. 쉼 없이 앞만 보며 내달리기를 재촉하는 차디찬 공간에서 붕어빵 하나라도 제대로 사먹고 싶은 마음이 들겠느냔 말이다. 얼마 전 회사 동생 녀석이 근처의 중국집이 그렇게 장사가 잘 되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으니 관광객들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외국 관광객들이 국회의사당 보고 난 뒤 그 중국집 들러 자장면 먹는 것이 관광 코스 중의 하나라던가. 서울에 갈 곳이 그렇게도 없었나? 왜 한국사람들도 볼 때마다 짜증내는 곳에 외국 관광객들을 데려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차라리 한국 오는 비행기 안에서 [접속] 틀어주고 바로 이 곳이 비행기에서 봤던 그 영화에 나온 장소였다며 종로에 데리고 오는 편이 여행의 운치를 훨씬 잘 살리는 것일텐데. 피맛골과 인사동도 가까우니 딸랑 건물 하나 보고 줄지어 자장면 먹으러 가는 것 보다야 더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피카디리 극장도, 피맛골도, 이미 변했거나 변하게 되거나 혹은 사라지게 될 것들이다. 전통이라는 것이 반드시 수천 수백 년 전부터 대물림 되어온 유물만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수년 전부터 존재해왔던 것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존재해나갈 것들, 그 모든 것들이 다 전통이며 문화가 될 수 있다. 다만 그것들의 가치를 우리들 스스로가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학교 수업 시간을 통해, 또 노래 가사를 통해 반만년 역사를 그토록 강조해 왔으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지난 시간의 흔적을 보존 하는 일에 다들 무심하다. 어쩌면 이 땅에서 전통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의 장식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멀티플렉스로 재개관한 극장들의 내부에 부착된 고전 영화들의 포스터와 사진들은 그저 이곳이 극장임을 알려주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기능도 수행하지 않는다. 그간 쌓여온 시간의 흔적을 증명해주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있어도 서서히 사라져 간다.


바뀌어 버린 지금의 모습에 정을 붙이고 또 그 모습이 스크린에 담긴 것을 바라보며 공감대를 느낀다 하더라도 다시 11년이 흐른 뒤에 그것이 유효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몸은 지금 이 곳에 머물지라도 마음은 추억을 되새길 장소 하나 갖지 못한 채, 이미 소멸되어버린 시간 속을 떠돌아다니는 것이 21세기의 시대정신은 아닐 텐데, 참 아쉽다. 지난 부산 국제영화제 기간 중에 [가면라이더 퍼스트]를 보았다. 일본 전대물에 대한 호기심도 예전 같지 않고 영화가 보여준 시각효과도 헐리웃 수퍼히어로물의 그것에 비할 바는 못되었으나 저런 부차적인 요소들을 뛰어넘어 내 머리 속에 남다른 인상을 각인 시킬만한 무엇인가가 [가면라이더 퍼스트]에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 시리즈가 투박한 곤충마스크로 대변되는 특유의 개성을 유지해오며 수십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고전까진 아니더라도 이 또한 오랜 시간에 걸쳐 축조된 문화 유산이자 전통이라고 할 수 있을 터. 아버지 세대가 보았던 [가면라이더]를 그 자식 세대가 새로운 시리즈로 또 보게 되니 이 정도면 시공을 초월하는 교감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 하다.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촌스럽다, 낡았다는 말 따위로는 절대로 훼손시킬 수 없는 문화의 가치일 것이다. 다만 세대를 넘나드는 일본의 곤충마스크에 대한 열광과는 달리 종로 한복판에서 설렘과 외로움 속에 누군가를 기다리던 순간들의 정취는 10년을 못 넘긴 채 허물어지고 말았으니 그것이 못내 안타까울 따름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서울도 괜찮은 도시라는데, 정작 화창한 날에는 갑갑하고 쓸쓸하기 그지 없다. 어쩌면 그것은 마음 둘 곳을 하나씩 잃어가고 있는 현대의 유목민들이 토해내는 한숨들이 도시 곳곳을 메아리처럼 울려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그 때 그 시절, 그 공간 속의 감정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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