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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부치는 잡담 하나

필진 리뷰 2009.10.17 21:19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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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부산국제영화제의 피크였던 지난 주말 저녁, 나는 뒤늦게야 부산에 도착했다. 돈 좀 아껴보겠다고 탔던 버스는 장장 6시간을 달려 새벽 세 시경 해운대 앞바다에 나를 뱉어놓았고, 북적거리는 해운대를 뒤지고 뒤져 겨우 찾아낸 숙소에 거의 뻗다시피 누워버렸다. 애초에 사람 많은 주말을 피하고, 사람 없는 평일을 이용해 보고 싶은 영화는 다 보자는 심상으로 내려왔던 부산이기에 그런 수고쯤은 참을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는 모두 평일에 몰려 있었고, 어떤 영화들은 상영 일정이 두 세 번씩 겹쳐 잡혀있기도 했다. 표를 하나도 구하지 못해 게스트/프레스 스크리닝으로만 영화를 봐야했던 일요일을 보내고,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적한 평일이 찾아왔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영화로 인해 보상받으면 다시 의기충전 으쌰으쌰 할 수 있는 것이 영화제의 묘미지만, 부산에 내려와 몇 편의 영화들을 보았던 지난 주말은 나에게 거의 수련의 나날이었다. 내려오기 전부터 좋지 않았던 몸 상태는 제쳐두고, 내가 선택했던 영화들이 나를 힘 빠지고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부산에 내려온 첫 날 상영작이었던 <심볼>, <킥 오프>, <안녕 할아버지>는 모두 비등비등하게(그중 압권은 <심볼>이었지만) 지루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탈진할 수준이었던 하루를 보내고 그 다음날 다시 몇 편의 영화들을 봤다. 영화제에 가게 되면 으레 정말 궁금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봉 예정인 한국영화들은 보지 않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한국영화 몇 편에 관한 솔깃한 소식이 들려와도 귀를 닫고 참아냈다. 내가 두 손 모아 기대하고 기대했던 상영은 모조리 화요일에 몰려 있었기에 지루하고 복잡스러웠던 상영 일정을 모두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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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부산에서의 사흘째 아침, 그러니까 바로 13일인 '오늘'이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제 예매해둔 상영 시간표를 보니 마음이 절로 흐뭇해졌다. 첫 상영인 고란 파스칼리에비치의 <허니문>에 이어 미카엘 하네케의 <하얀 리본>, 그리고 라야 마틴의 <인디펜던시아>, 마지막은 차이밍량의 새 영화 <페이스>로 짜여 져 있는 더 할 수 없이 아름다운 시간표. 룰루랄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첫 영화를 보고, 미카엘 하네케의 맹신자인 나를 영화제 훨씬 전부터 설레게 만들었던 하네케의 신작 <하얀 리본>을 보고 난 후, 오후 다섯 시에 있을 다음 상영을 기다리며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애초에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인지, 생각보다 하네케의 영화는 무미건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이만하면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것 또한 하네케에 대한 맹목적 사랑에 불과한 것일까. 조금씩 엄습해오는 공포감과 광기에 대한 묘사는 탁월했지만, 결말로 갈수록 그 불안한 기운이 폭발적인 작용을 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얀 리본>을 졸지 않고 보기 위해 거의 세 시간동안 트리플 에스프레소를 손에 들고 홀짝 거렸던 탓일까, 윗배 아랫배 할 것 없이 찾아오는 복통에 얼굴이 일그러지지만, 정신만은 말짱하다. '부산에 내려가서 <하얀 리본>을 보지 못하면 해운대 앞바다에서 장렬하게 전사하리'라 생각했던 영화를 말끔하게 해치워서인지,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하지만 아직 정신을 놓아버릴 수는 없다. 라야 마틴에 이어, 내가 하네케에게 느끼는 맹목적 사랑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애정을 과시하는 감독인 차이밍량의 신작이 마지막 상영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오늘은 이래저래 심심한 영화들에 치였던 그간 일정에 대한 보상과 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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