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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가 가치 있는 이유

필진 칼럼 2008.10.01 14:54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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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몇 해 전, 이윤기 감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후배로부터 “한 번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감독에게 보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는 그의 영화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한참이 지나 <아주 특별한 손님> 시사회에 참석한 직후 ‘이 사람, 영화를 쉬지 않고 만드네’라고 혼잣말을 되뇌었다. 그것은 놀라움 반 흡족함 반이 뒤엉킨 감정의 다른 표현이었다. 이윤기 영화에 대한 시각교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칸의 여왕 전도연과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하정우가 만났다는 사실 만으로도 세간의 화제를 불러 모았던, 네 번째 장편 <멋진 하루>가 공개되었다.


알려진 대로 이윤기는 장편데뷔작에서부터 줄곧 ‘소통’에 관하여 이야기해온 인물이다. 내상(內傷)입은 한 여자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가능성을 타진했던 <여자, 정혜>를 시작으로 <러브토크>와 <아주 특별한 손님>에 이르기까지 소통과 상처의 봉합은 언제나 이윤기의 관심사처럼 보였다. 그러나 소통을 중심테마로 잡은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내게 그의 영화는 답답함 그 자체였다. 또한 <여자, 정혜>에서 사용한 과도한 클로즈업과 <러브 토크>의 서사가 LA라는 공간적 배경과 별개로 펼쳐진다는 이유 때문에 이윤기의 영화를 탐탁지 않게 평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영화예술에 대한 욕망만큼 재능이 따라주지 못하는 감독이라고 여겼고 절묘한 캐스팅을 절망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는 말이다. 부연하자면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과 개연성 없는 상황전개가 그랬고 주인공의 미래를 유보시킨 결말 역시 납득하기 힘들었다. 대놓고 사랑하지도 못하고 이별의 슬픔에 목 놓아 울지도 못한 채 담담하게 바라보고 삭이는 사람들이 이윤기 영화의 인물들이었으니, 그것은 일상사를 지배하는 피곤함과 삶의 어두운 찌꺼기와 다를 바 없었다. 결국 나는 <여자, 정혜>에 대하여 ‘왜 자꾸만 가까이서 보라고 하느냐’고 푸념해댔고 <러브 토크>는 ‘백지로 날아온 LA발 그림엽서’라고 평가절하 해버리고 말았다. 사실이지 (나무랄 데 없는 연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정혜>의 김지수와 <러브 토크>의 박희순을 바라보는 데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녀의 트라우마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탓이고 그의 일상이 너무 피곤해보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윤기의 영화는 ‘썩 괜찮긴 하지만, 그렇다고 열광하기엔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럼에도 이윤기는 계속해서 영화를 찍었고, 무명에 가까운 한효주와 <아주 특별한 손님>를 만든데 이어 톱스타를 내세운 <멋진 하루>까지 그의 행보는 쉼 없이 이어졌다. 그에게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었던 것일까? 그 답은 예상외로 싱겁게 나왔으니, 이를 확인한 것은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였다. 한마디로 이윤기의 영화가 진화하고 있음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혁신적이거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의 변화를 꽤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쉽지만 가장 어려운 변화, 그러니까 감독이 줄곧 집착해온 화두에 대해 스스로 해법을 달리하려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목격되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감독에게 있어 화법의 변화란 내적세계관의 충돌을 딛고 일어섬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이제껏 견지해온 자기 영화의 정체성에 흠집이 생길지도 모르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윤기의 <아주 특별한 손님>을 ‘아주 특별한 영화’로 기억한다. 그 이유는 <아주 특별한 손님>을 통해 그가 ‘진짜’ 소통을 시도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얼굴과 다리를 훑던 카메라는 공간으로 이동했고 배우가 아닌 이야기에 집중했으며 삶의 진짜 모습을 주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주 특별한 손님>은 이전 작들에서 느낄 수 없는 진짜배기 삶을 이야기하는 첫 번째 영화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배우들이 생기를 되찾고 있다는 점은 주목하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멋진 하루>에 이르면 이전 영화의 인물들이 보여준 진지함의 과잉과 강박적 피곤함이 완전히 제거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절제미가 돋보인 전도연과 오버가 부담스럽지 않은 하정우의 연기는 시종 편안함을 제공하고 있다는 말이다.

<멋진 하루>는 한마디로 떼인 돈 받아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성실한 교범이자, 채권회수에 대처하는 채무자의 자세에 관한 유쾌한 고찰인 동시에 깔끔한 이별을 위한 연애지침서이다. 물론 혹자들이 평가하는 대로, 로맨스드라마이면서 로드무비이기도 하다. 영화는 헤어진 지 1년 즈음이 흐른 어느 날 재회한 옛 연인들의 행적을 따라간 단 하루 동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빌려준 350만을 받기 위해 옛 애인을 찾은 희수와 돈을 갚기 위해 다시 여자들에게 손을 벌리는 병운의 행적을 그린 이 영화에서, 이윤기는 소통에 대한 여전한 관심을 드러낸다. 다만 이전 영화들이 ‘소통’과 ‘봉합’을 인과관계로 다루려했던 데 반해, <멋진 하루>에서는 둘을 개별로 취급하고 있다는 차이점을 보인다. 그러니까 두 남녀가 하루를 함께 하는 동안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고 과거를 추억하며 소통을 이뤄내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화해 또는 봉합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소통의 기능변화는 ‘이별의 완성’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를테면 돈을 주고받는 것 이상의 변화를 불러오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희수와 병운은 헤어졌으되 완전히 이별한 것이 아니었다. 미결과제 즉 채권채무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병운에게 돈을 빌려준 것이 “하도 급하다고 하고, 또 미안한 마음”에서였다는 희수의 말대로라면, 분명 둘 사이에 정리되지 못한 그 무엇이 남아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돈을 주고받기 위한 둘의 행보가 사실은 완전한 이별을 향한 발걸음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드러나는 잊고 지낸 각자의 과거사는 현재와 미래까지 가늠하게 만들고, 이 과정을 지나면서 둘의 이별은 완성된다. 지하철역으로 들어간 병운을 걱정하던 희수의 표정에서, 이어 시음회 도우미와 농지기를 하는 병운을 보며 미소 짓던 그녀의 모습에서 둘이 재회할 것임을 예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른 여자들의 돈을 갚기 위해 병운이 다시 희수를 찾게 되던, 아니면 남은 돈을 받으려고 희수가 병운을 찾아 스페인까지 날아가던지 말이다. 이처럼 이윤기는 돈을 주고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그 과정에서 봉합되는 마음의 앙금임을, 현상보다 본질이 우선임을, 소통이 화해를 목적으로만 기능하지 않음을 <멋진 하루>를 통해 사실감 넘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내가 <멋진 하루>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엄밀히 말해 이윤기의 네 번째 영화를 지지하는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2004년 <여자, 정혜>를 부산국제영화제에 내놓은 이후 5년 사이 네 편의 영화를 만들고 모두 개봉시켰다는 점에서 가치를 부여할 만하다는 것이다. 장편연출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이 정도의 쉼 없는 행보를 보인 감독은 김기덕과 홍상수 정도를 꼽을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매년 1편의 영화를 만든다는 것. 그것은 감독을 평가할 수 있는 또 다른 지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스타성, 흥행가능성, 예술성 등등과는 다른 차원에서 말이다. 이는 (연작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 한국영화계의 수상한 풍토를 극복해왔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영화계는 신인감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반면, 중견 감독의 몫은 현저히 적은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지난 한 해 개봉한 107편의 영화 중 무려 48편이 신인감독의 데뷔작이었는데, 이는 전체 개봉작의 45%로 두 편 중 한 편이 신인감독의 손에 맡겨진다는 얘기다. 왜 신인감독을 선호하는가? 신인감독은 패기와 아이디어를 갖추고 있는 반면, 경험 부족으로 인해 연출료가 상대적으로 낮고 프로덕션 과정에서 제작자의 통제가 비교적 수월하다는 점 때문이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고집스런 중견감독보다 고분고분한 신인감독이 다루기 수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신인감독에 대한 의존도에 비해 정작 신인감독들의 ‘생존율’은 극히 낮은 편이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경쟁률을 뚫고 신인감독 타이틀을 얻는다고 해도, 2번째 작품을 만들기가 하늘의 별따기란 얘기다. 지난해 개봉한 상업 장편영화를 기준으로 할 때 데뷔작 이후 차기작을 내놓기까지 걸린 시간이, 평균 3.75년이었다는 점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환경에서 작가들이 설 땅이란 요원한 일일 터. 김기덕, 홍상수, 박찬욱 같은 이들이 직접 영화사를 차린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또 지난 일요일(28일) 크랭크 업한 <반두비>의 신동일 감독 역시 ‘비아신픽처스’라는 영화사를 만들어 제작에 임한 바 있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신인감독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는 한국영화산업의 위기와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즉 신인감독들의 경험 부족으로 인한 완성도의 하락과 제작사 중심의 프로덕션이, 한국영화의 ‘창의성 위기’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영화가 감독의 작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감독의 미적창의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풍토가 확대 될 때, 한국영화도 한 단계 도약하지 않을까 싶다.

한 때나마 과대평가 받았다고 여겼던 시절, 이윤기의 영화에서 내가 본 것은 오직 개별 작품의 완성도였다. 문제는 가능성은 논외로 한 채 단순히 완성도에 대한 비판에 집중했던 것이다. 그의 영화를 둘러싼 다양하고 무수한 담론 가능성을 간과해버렸다는 말이다. 그러나 <멋진 하루>는 나의 편견을 완전히 바꿔놓고도 남을 만큼, 그 제목만큼이나 멋진 영화였다. 이 영화를 통해 무심코 놓아버렸던 좋은 감독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점은 천만다행이라 하겠다. 나는 올해 한국영화 가운데 몇 안 되는 선택으로 <멋진 하루>를 기꺼이 포함시킬 생각이다. 내년에도 이윤기의 영화를 다시 만나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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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자정혜에서는 거리를 둔채 깊게 그녀의 심중으로 함께 따라갔는데 멋진 하루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하정우, 전도연이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관중을 압도하지 않았나 그래서 줄거리가 방해를 받은 건 아닌가 생각했다.

    2008.10.01 23:37
  2. 모과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자 정혜는 단조로운 일상의 그녀가 고모부에게 성폭행 단한 과거가 있기에 모든 것이 시들한 것이 잘 표현 되었습니다.
    황정민의 소심한 짝사랑도 잘 표현 됐지요. 그러나 역시 재미 보다는 의미 있는 영화였지요.
    [멋진하루]는 [추격자]의 하정우라는 배우의 연기를 보고..그 연기에 반해서 ,그리고 전도현의 모든 영화가 감동을 주었기에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봤습니다.
    영화는 완성도도 있고 내용도 훌륭했습니다.
    인간의 여러 군상들과 다른 삶의 방식들을 많이 구경 할수 있엇지요.
    영화가 아니면 나와 다른 범주의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알수가 있을 까요?

    요즘 대세가 잔인하거나, 즐거운 음악이 있거나, 웃기거나 해야 대박인데 늘 웃기고 들뜬 것을 보다거 한번쯤 [멋진 하루]같은 숨고르기 하면서 볼수 있는 영화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블러그의 글은 왜 이렇게 작게 보이나요?
    전도연에게도 [멋진 하루]는 역시 멋진 하루였을 겁니다. 대스타 전도연이 그렇게 궁상미흐르고 짜증나는 일을 연기아니면 어떻게 경험 할수 있겠어요?
    새로운 세계의 경험은 멋진 일이니까요.
    좋은 영화입니다.

    2008.10.02 18:39

[추격자] 살기위해, 내리쳐라

필진 리뷰 2008.02.22 14:42 Posted by woodyh98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고 싶으면 상대를 내리꽂아야 한다. 태생적으로 수직상승하기 글러먹은 놈이 하나 있고, 후천적으로 땅으로 떨어진 녀석이 하나있다. 중호(김윤석)는 전직 형사였지만 지금은 보도방 사장이다. 경찰로 국가의 녹을 받아먹을 당시, 중호는 검은 돈을 챙기면서 자기 배를 채웠고, 그 결과 경찰직에서 쫓겨났다. 중호는 후천적으로 땅에 떨어진 녀석이다. 더 이상 갈 곳도 없고, 하루 벌어먹고 살기 위해서는 여자들을 등쳐먹으며 밤에 쾌락을 찾는 남정네들의 지갑을 열어야만 한다. 태생적으로 땅에 떨어진 남자는 연쇄 살인범 영민(하정우)이다. 그는 발기가 되지 않아 성적 쾌감을 느껴보지 못한 남자다. 성기가 일어설 수 없듯이, 그의 원초적 쾌감은 수직상승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악의를 품고 여자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망치로 정을 내려쳐서 여자를 살해할 때 쾌감을 느끼는 영민. 얼추, 두 사람은 비슷하게 생겨먹었다. 골목을 기어다니며 돈을 긁어모으는 중호나, 여자들을 정으로 내리치며 성적 쾌감을 얻는 영민이나 하류인생이긴 마찬가지. 두 녀석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상대를 흘겨보며 붙었을 때는 유도나 레슬링이 연상된다. 애초에 둘 사이에는 물리적 거리가 제로에 가깝기에 <추격자>를 보면서 상대를 견제하면서 잽을 날리는 아웃복싱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중호와 영민은 상대의 호흡을 느껴가며 적을 죽이기 위해서 칼을 갈고 있다. 땀이 쏟아지며, 그 사이사이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레슬링에서 심판의 지시로 빠떼루 자세를 취한 것과 모양새가 비슷하다. 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땅에 밀착해야 하며, 승점을 따기 위해서는 적을 뒤집어 매트에 내리 꽂아야 한다. <추격자>는 인간이 극복하지 못한 중력의 법칙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중력의 법칙을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지구가 인간을 끌어당긴다면 인간은 하늘로 수직상승 할 수 없다. 영민의 발기부전, 중호의 타락한 모습. 여기에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건들 역시 추락하는 이미지 일색이다. 한 시민은 정치인의 얼굴에 배설물을 던져 경찰서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위신이 떨어진 정치인의 모양새. 경찰들은 배설물 투기 사건으로 향할 여론의 시선을 살인 사건으로 돌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권력 앞에 쪼그라든 경찰들의 정치적 행태는 추락한 관료사회의 모습이다. <추격자> 안에는 앞에서 열거한 인물들이 만들어 놓은 풍경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현실 정치의 권력 구조가 있으며, 권력 앞에서 꼬리치는 인간들이 있다. 이런 몇 가지 풍경을 먼 배경으로 하여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카메라는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땅과 수평을 유지하며 중호와 연민의 숨 가쁜 질주를 따라가기에 바쁘다. 달리다가 지친 영민과 중호의 육체를 대변하듯, 카메라의 포커스가 어그러지기도 한다. 즉 굳이 이 영화의 리얼리즘을 인물과 사건으로 논하기 이전에 카메라는 현장성을 보여준다.

2시간짜리 영화는 대략 24시간의 도망과 추격을 밀도 높게 보여준다. 미로처럼 엮인 골목길을 야심한 밤에 질주하는 두 남자의 모습은, 한국 영화에서 (필자 스스로 칭하길) ‘골목길 느와르(혹은 스릴러)’로 정면 승부하지 못했던 한국영화에 숨통을 틔어주고 있다. 특이한 것은 추격이 벌어지는 골목길과 반 지하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언덕진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 맥거핀처럼 등장하는 교회의 십자가 역시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롱샷으로 찍힌 마을의 모습은 서울에서 부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득히 멀고도 높다. 교회의 십자가는 어두운 밤 외롭게 그리고 밝게 빛난다. 마지막으로 살인에 쓰이는 망치와 골프채는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영민의 손에서 수직상승한 망치는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진다. 영민의 손에 살해당한 자는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추격자>안에서 살아가는 자나 죽은 자 모두 땅으로 내려가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형이상학적인 것들은) 하늘에 떠 있다.

중호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그에게도 인간의 악한 본성이 있다. 하지만 중호는 남의 간을 빼먹으며 지갑을 채울지언정, 남의 피와 살을 갉아먹는 일은 하지 못한다. 감기로 앓고 있는 미진에게 매정하게 전화를 걸어 여름에도 감기가 걸리냐며 핀잔을 주는 그는 인간미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인간이다. 영화 속 미진과 미진의 딸의 입을 빌리면 쓰레기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다. 공직의 힘을 빌려 깡패들에게 기생했던 사람이며, 지금은 변태들을 이용하고, 몸 밖에 가진 게 없는 여자들을 매매하며 살아간다. 중호가 하류인생으로 살아오면서 배운 건,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 법이다. 중호에게 미진은 재산의 일부였으며, 영민은 중호의 재산을 앗아간 (중호에겐) 더 극악한 녀석이다. 중호가 영민을 찾아다니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영민은 보도방 아가씨들을 불러서 살인을 저질렀으며, 이를 계기로 중호와 영민의 동선이 만나게 되고 충돌하게 된다. 좁은 골목길에서 우연히 중호의 차와 영민의 차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는 것도, 어찌보면 단순한 우연일 뿐이지만 사건으로 보자면 영화의 전개과정이다. 이 장면은 중호의 사유재산이 훼손되는 의미에서 사건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계기가 되어준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직감적으로 영민이 범죄자임을 알게 된 중호. 이제 중호와 영민은 지리멸렬한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 영민의 범죄는 성적 트라우마와 연관되어 있으며, 영민은 자기폐쇄적인 정신분열증 환자의 모습이다.

<추격자>는 중호와 영민을 통해서 선-악을 이분법하지 않는다. 중호에게도 악한 모습이 존재한다. 다만, 중호와 영민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지켜야할 재산과 대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사유재산을 잃은 중호의 분노는 영화 후반부가 되면 사라지게 된다. 영민은 자신이 미진을 살해했다고 경찰서에서 밝히지만, 중호는 영민이 여자들을 팔아먹은 인간이지 살인을 저지를 위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경찰에 넘겨진 영민을 뒤로하고, 중호는 자신의 재산인 미진을 찾으러 다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호는 미진의 숨겨놓은 딸을 만나게 된다. 미진의 딸은 중호의 인간미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사건에 집착하는 중호를 향해 한 경찰 동료는 “언제 인간될래?”라고 말을 한다. 중호가 사건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미진을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중호의 뇌리 속에서 미진의 딸이 스쳐지나가고, 딸아이의 모습위로 살아서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를 미진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김윤석이 연기한 중호라는 캐릭터는 후반부로 갈수록 지쳐간다. 세탁기에서 탈수해낸 인간마냥 그의 몸은 수분이 모두 빠진 것 마냥 맥없이 늘어진다. 하지만, 지칠대로 지친 중호가 자신의 목을 누르는 영민의 손아귀를 뿌리칠 수 있었던 불가사의한 힘은, 가시화되지 않은 그의 선한 본성 때문이다. 김윤석은 이빨을 깨물며 자신의 육체를 땅 바닥에 수차례 내리꽂는다. 넘어지고 쓰러지는 사이에 그의 육신은 흔들리고 뒤섞이면서 일종의 중화과정을 거친다. 거짓으로 살아온 인생. 거짓과 위선적인 삶을 통해 가시적으로 악해 보였던 중호의 내면과 외면이 마지막 남은 연민과 동정이라는 감정과 만났을 때,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분노가 폭발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어금니 깨무는 소리가 들리는 중호의 처절한 모습은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것 같다.



사건은 골목에서 벌어졌고, 도심에서 외진 곳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종로의 고층건물을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모든 것이 끝나고 병실의 잠든 미진의 딸의 손에 중호의 손이 포개어질 때 카메라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메트로폴리스는 많은 것을 감추고 은폐한다. 결국, 이 영화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것은 매스미디어에서 감추고 싶을 혹은 정치권력이 개입하고 싶지 않은 또는 소시민조차도 보고 싶지 않은 일이었음을 말해준다. 드러나지 않고, 드러나더라도 감추고 싶은 삶의 모습과 잔혹함. 도시는 늘 현대적인 미적 감각을 뽐낸다. 병실 창 밖으로 보이는 건 고층 빌딩아래의 모습이 아니다. 높은 곳에서는 아래쪽을 보지 못한다. 결국 많은 일들이 은폐되어왔고, 암묵적으로 은폐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영화는 서울의 도심 속 외진 곳에서 일어난 일을 땅과 가장 가깝게 찍은 영화이다. 기쁜 마음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에는 <추격자>가 아니라면 보지 못할 도시의 공기와 도시의 이야기가 끈질기게 살아있다. 감추려고 해도, 숨으려고 해도 살아있는 이야기를 감출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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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병준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훈님 글 정말 정말 잘 쓰십니다.
    땅을 향해 있다는 영화분석도 날카롭고요.
    영화 내공 정말 대단대단....

    인천에서 준이 드림.

    2008.02.23 01:36
  2. Grace  수정/삭제  댓글쓰기

    색다르고 명쾌한 해설..
    웬만하면 읽지 않는 영화 리뷰인데 잘 읽고 갑니다^^

    2008.02.23 03:18

[추격자]와 단편영화의 힘

필진 칼럼 2008.02.18 17:14 Posted by woodyh98


오랜 만에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영화, 나홍진 감독의 상업 장편 데뷔작 [추격자]를 보았다. “물건이 등장했다”는 기자시사회에서 흘러나온 입소문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영화는 관객의 바람을 온몸에 안고 쫓는 자와 이러한 기대감을 하나씩 깨뜨리며 쫓기는 자 사이의 추격전을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미진이 사투하는 모습과 엄중호 곁에 붙여놓은 그녀의 딸을 수시로 보여줌으로써 소외되기 쉬운 인물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데뷔작에서 이만한 성과를 거둔 전례가 그리 많던가.

돌아보면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나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 최동훈의 [범죄의 재구성] 정도가 만장일치에 가까운 평단의 극찬을 받으면서 데뷔했지만, 관객까지 사로잡은 작품은 [범죄의 재구성]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 점에서 하드고어에 가까운 스릴러 [추격자]가 보여주는 행보는 주목할 만 하다. 관람등급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으며 관람 후 만족도 또한 최고치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성급한 언론은 “한국영화의 희망” 이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한다.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나 전형적인 뒷북이다. 알려진 대로 나홍진 감독은 단편영화를 통해 기량을 인정받았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단편영화를 찍는 가능성 높은 신인일 뿐이었다. [완벽한 도미요리]와 [한]을 통해 갈고 닦은 실력의 결과는 그의 말대로 “후회 없이 쏟아 부운” [추격자]로 나타났다. 가히 단편영화의 힘이 상업 장편영화에서 고스란히 발휘되는 순간이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홍진의 등장은 딜레마에 빠진 한국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사건임에 틀림없다.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단편영화를 찍음으로써 영화감독에의 꿈을 시작한다. 그런데, 단편영화라는 것이 그리 만만하게 볼 대상이 아니다. 길어야 30분 미만인 시간 동안 감독 자신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가운데 압축과 터뜨림을 두루 도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작비랄 것도 없는 소자본으로 한편에 영화를 찍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오로지 필모그래피가 쌓일 뿐이니, 밤새 이어지는 술자리와 재능에 대한 상호부조성 칭찬만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스탭과 배우들에 대한 유일한 보상일 따름이다. 비록 어설프고 허술한 촬영현장이지만 미래의 대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찍은 영화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담보물이 되어 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김삼력 감독의 [아스라이]에서 주인공 상호는 자신의 후배가 “영화 좆도 못 만들면서 영화제 돌리지나 말지 쪽팔리게...상금 타먹으려고 영화 찍느냐”고 대들자, “그래도 찍었으면 돌려봐야지, 돈을 구해야 영화를 찍지, 그러려면 작품이라도 부지런히 돌려야지” 않겠냐고 말한다. 재능 없이 열정만 품고 살아온 영화지망생의 서글픈 탄식이지만 그나마 영화제라도 초청 받는 것이 얼마나 운 좋은 일인가. 김삼력 감독만 해도 10년 세월을 단편영화를 통해 내공을 닦으며 때를 기다린 끝에 비로소 상업 장편 [아스라이]를 찍을 수 있었다. 눈을 돌려 보면 주위에 이런 젊은이들이 꽤 많이 있다. 영화제마다 응모해도 몇 년 동안 한 번도 초청되지 않는 감독들이 부지기수다. 그래도 이들에게 (단편)영화는 삶의 의미이자 존재증명에 다름 아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단편영화에서 나름의 지명도와 재능을 보여주었던 감독들의 대다수가 상업영화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단편영화와 절연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제 앞가림에 여유가 없는 탓이기도 하고, 더러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옴니버스 작업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이마저도 유명세를 탄 이들에 한정된다. 상업 장편으로 데뷔한 감독이 단편영화 찍으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쉬운 대목이다. 차기작을 기다리는 동안 공부하던 시절로 돌아가 단편영화를 통해 초심을 다잡고 재충전하는 기회로 삼아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점에서 학생시절 인상 깊은 단편 [지리멸렬][백색인]과 [2001 이매진]을 연출했던 봉준호와 장준환이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에도 틈나는 대로 단편영화를 찍어온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3년 묵은 쑥을 찾는 사내가 있었다. 모친의 병구완을 위해서는 반드시 3년 된 쑥이라야 했다. 대체 누가 쑥을 3년씩이나 묵힌다는 말인가. 세상천지 어디에도 3년 된 쑥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3년이 흘렀고 모친은 임종했다. 이 어리석은 남자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3년 전에 쑥을 심었더라면 그는 모친을 살릴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3년 묵은 쑥을 찾을 생각만 했지 쑥을 심어 3년을 기다릴 생각은 안 했던 것이다.

어느 때보다 한국영화가 어렵다는 소리가 넘쳐나는 시절이다. 당장 살아남아야하니 자본의 선 순환구조를 위해 자금회수가 빠른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참신한 창작물보다 검증된 원본 있는 이야기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도 당연할 테다. 하지만 한국영화계가 대작에 한 눈 팔고 흥행의 단맛에 취해있는 동안, 매체들이 스타에 넋이 빠져 여배우의 쇄골 따위를 친절하게 전달하는 동안, 현장비평가들이 구색 맞추기로 독립영화를 언급하는 동안에도 단편영화 감독들은 (너무나 익숙한)경제적 어려움을 당연시 여기며 영화를 만들어 왔다. 나홍진은 이렇듯 척박한 토양이 배출해낸 단편영화의 힘을 상징하는 다른 이름일 따름이다. 충무로 제작자들이 독립영화제를 찾고 졸업영화제에 관심 갖는 것은 될성부른 나무를 찾기 위해서일 터이다. 이왕이면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제작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찾아낸 신인 중에 제 2, 제 3의 나홍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단언컨대 한국영화의 미래는 단편영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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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blog.divershigh.com BlogIcon SUPERCOOL.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문화든 기초가 탄탄해야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단편영화로 상업영화가 추구할수 없는 새로운 시도등으로 점점 문화는 탄탄해지고 다양해지며 강해질수 있는것 같습니다. 좋은글 잘 봤습니다.

    2008.02.18 17:29 신고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목덜미까지 차오르는 긴장감이었다. 배우는 검은 스크린 속으로 사라지고 이야기는 이미 끝났는데도 난 마치 그 현장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그렇게 만들었던 살인자와 추격자의 피말리는 전투를 그린 <추격자>. 사실 이 영화는 시사회 전까지 그닥 주목을 받지 못했다. '김윤석'과 '하정우'라는 연기 잘한다는 배우가 있지만 주연은 사실상 처음에 가깝고, 두편의 단편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한 감독 '나홍진' 또한 장편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순간 눈이 번쩍 뜨일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과연 신인감독의 작품이란 말인가? <추격자>는 신인이 만든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대단한' 스릴러의 표피를 가지고 있다. 마치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과도 맞먹을. 더불어 '김윤석'과 '하정우'의 연기는 어떠한가? <타짜>와 <용서받지 못한 자>등을 통해 주목할만한 입지를 다지긴 했지만 확실한 임팩트가 없었던 그들에게 이 작품은 최상의 선물처럼 보인다.

같은 목소리를 가진 살인자와 추격자

무엇보다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은 '캐스팅' 그 자체이다. 첫번째 이유는 물론 앞에서 언급했던것처럼 배우들이 너무나 연기를 잘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두가 공감할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굳이 처음으로 '캐스팅' 얘기를 꺼낸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다. '살인'에 관한 광적인 집착과 잔인한 장면 묘사가 충격을 주긴 하지만 그보다 공포스러웠던 것은 두 배우의 '목소리'였다. 기본적으로 김윤석과 하정우는 저음의 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더욱더 극적인 효과를 발휘하여 공포속으로 몰아가게끔 만든다. 그리고 울먹일 듯하지만 담담하게 보여지는 외로움의 감정들이 목소리에 묻어난다. 안마시술소를 운영하며 돈을 벌고 있지만 가족없이 혼자인 '엄중호'(김윤석), 태어났을때부터 혼자였던것처럼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조차 없게 굳게 자신의 자물쇠를 가지고 있는 '지영민'(하정우). 그들이 서로에게 말하는 장면은 대부분 목소리톤이 다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난 한사람이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나에겐 '공포감'으로 다가왔다. 한번 더 생각해보면 '살인자'와 그를 '쫓는자'가 실은 사회 정의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이다. 거울을 앞에 두고 자신을 쫓을 수 밖에 없는. 나는 왜 너의 목소리로 너를 부르는가?

전형성을 극복한 심층적인 이야기의 얼개

윤석이 미진의 딸이 있는 입원실에서 묵묵히 앉아있고 창문위로 보이는 먼 산을 보여주는 엔딩 신은 헐리웃 무비의 마지막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철학적으로 보면 중호가 왜 죽을 힘을 다해서 영민을 쫓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보여주며 미진의 딸을 통해서 자신의 흔적을 돌이켜보고 왜 사람의 목숨이 그토록 중요한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어쩌면 그로 인해 자신의 변화를 후에 체험하게 될지도 모르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 교훈적이고 상투적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솔직히 그런 전형적인 장면이 더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극복하고도 남는 '심층적인 이야기의 얼개'이다. 주변인물이 사라지고 중심인물들이 그로 인해 맞부딧히고 쫓고 쫓기는 이야기는 일부러 그 속에 곁가지 사건들을 심어 놓지 않고 하나의 사건을 끝까지 이끌고 간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획득하게끔 만든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자주 관객을 시험하는데, 도대체 중호가 찾고 있는 것이 '미진'인지 '영민'인지 아니면 그도 아닌 '돈'인지에 대해 혼돈스럽게 만들며, 영민의 살해 의도가 '성불구'에 관한 것 때문인지 아니면 본래 가지고 있던 악마적 속성 때문인지에 대해서 갈등하게 만든다. 감독은 영민의 살해의도에 대해서 일부러 여지를 심어두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무수히 많은 관객스스로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매춘부'를 상대하면서 느꼈을 '성불구자'로서의 존재에 대한 비참함. 그것은 심문 장면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한다면 '조카'의 머리를 정을 가지고 상처를 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할 것이며 자신을 귀찮게 하는 노부부를 그렇게도 쉽게 살해하는 것은 또 무슨 의도인가? 이렇게 <추격자>는 알 수 없는 의문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것이 통 답답하기 보다는 이상하게도 스릴러라는 장르랑 잘 맞아 떨어지는 장치로 느껴진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처단한 지영민

영민은 가시면류관의 흔적을 그가 죽이는 사람들에게 남긴다. 도구는 정이고 그 방법은 끔찍하다. 또한 교회 앞에 놓인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조각한 석재 조각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조각한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죽음을 당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땅에 묻히거나 어항속에 얼굴을 헌납한다. 예수를 처단한 것은 누구인가? 그 사람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었다. 그러면 지영민은 그런 존재인가? 사회에서 반드시 처벌 당해 마땅할. 어떠한 변명도 동정도 필요없는 존재.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은 예수를 죽인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확실히 찾아서 예수처럼 처단해야한다. 지영민도 그래서 반드시 사라져야할 존재이다. 눈뜨고 볼 수 없는 살인 사건은 경찰이나 형사가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이 작품또한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살인의 추억>은 그래서 분하고 억울한 영화였는데 이 영화 또한 그런 감정을 잊을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예수를 처단한 지영민처럼 우리에겐 그런 존재들이 실제 삶에서 적지 않다. 그래서 더 어지럽고 두려움에 떨어야할 우리의 모습을 <추격자>는 추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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