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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가족 영화로 읽기 금지!

필진 리뷰 2009.05.21 13:25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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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기


불가능한 하층민 계급 연대를 통해 보여준 비극론


<똥파리>의 주요 인물들을 하층민이라고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것에 대하서 논란의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가령, 가난하지만 희망차게 살아가는 인물을 하층민이란 계급적인 잣대로 구분 짓는 것에 대하여 다소 문제의 소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똥파리>의 경우 이 영화의 구조 자체가 하층민 계급의 구조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으므로 영화의 등장인물들을 하층민으로 직시하는 것은 오히려 감독의 의도에 부합되는 시각이 될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가족영화로 보는 불필요한 시각에 강하게 반대한다. <가족의 탄생>같은 대안 가족 형식의 모양새를 결말 부분에서 보여주지만, <똥파리>는 엄연히 계급 구조에 의거한 비극적인 파토스(pathos : 페이소스)를 추구하는 사회 계급론으로 귀결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가족 영화로 오해받기 쉬운 이유가 대안 가족을 이루면서 희망적 메시지를 찾고 있다는 결말 부분 때문인데, 이 영화의 진짜 결말은 바로 이 희망적으로 보이는 장면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는 마지막 엔딩 시퀀스이다. 여기서 이 영화는 계속적으로 회자하고 있는 문제의식을 정면으로 조명한다. 이 영화가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는 부분은 하층민 계급의 연대가 불가능하다는 지점에 있다. 그것이 설령 피로 맺어진 강력한 혈연이더라도 하층민이 이 사회에서 좀 더 나은 삶을 갈구하기 위해서는 같은 하층민을 깔아뭉개고 올라 설 수밖에 없다는 비극적인 요소를 계속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을 복기해보자. 개업식에서 빠져나온 연희(김꽃비 역)가 마주치는 것은 과거 자신의 어머니가 했던 거리 행상을 철거하고 있는 용역 직원의 모습인데, 결국 그 용역 직원이 자신의 오빠인 영재(이환 역)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그 둘이 서로를 마주보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장면이 마지막에 배치된 것은 결국 그런 희망적인 부분 -만식이 하층민을 통해 세를 불려가던 사채업을 접고 고기집을 개업하여 핏줄과 상관없이 어떤 유대적인 관계로 묶인 이들과 화목하고 단란한 집단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장면- 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그런 사회 구조적인 비극의 부분에 천착할 수밖에 없다는 환경 자체를 보여준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영화는 가족이라는 테두리보다는 어떤 사회적 문제에 집중한다. 여기서 가족은 영화의 주요한 테마가 아니라, 집단 공동체로 묶여 경제적인 요소를 공유할 수밖에 없는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노리는 부분은 이런 하층민적인 연대를 탈출하기 위해서 다시 하층민을 착취해야 하는 가장 밑바닥 계층의 비극적인 구조이다. 그러니까 다시 이 영화의 관계를 재정립해보자면, 영화의 주인공인 상훈(양익준 역)의 아버지와 어머니 관계는 부부 관계를 전제한 -여기서 부부 관계는 결국 경제적 공동체로서의 하층민 연관 고리를 전제 한다- 착취/피착취 간의 관계이며, 여주인공의 연희와 그녀의 오빠인 영재의 관계 역시 남매 관계로 경제적 하층민 연관 고리를 전제로 한 착취와 피착취의 구조로 읽어야 하는 것이 맞다. 이 밖에 여러 인물 관계 속에서도 이러한 관계를 읽어 낼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상훈과 만식이 하고 있는 용역업과 고리대금업의 성격이다. 그들은 하층민 계급을 착취하여 자신의 사업을 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의 계속적으로 만식이 상훈에게 “같은 편끼리 때리지 말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런 부분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드는 대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은 중산층이나 상류층 인물이 단 한 차례도 제대로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는 모두 하층민에 해당하는 인물들 간의 삶의 분투만이 기록되어져 있다. 결국 이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포괄적인 제약은 하층민이 이 지랄 맞은 환경을 벗어나기 위한 대립적인 대상으로 중산층과 상류층 사회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뜻하며, 결국 그들이 싸워야 할 대상으로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는 하층민간의 계급 내 갈등으로 결부 되어질 수 없음을 시사한다. 영화는 오로지 하층민 계급 내부안의 착취/피착취 구조 형태에 대해서만 골몰하며, 시작부터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이 부분에만 역점을 둔다. 이것은 이 영화가 만들어내고 있는 비극의 정서를 발생시키는 파토스의 근본적인 조건이다.


비극에 관하여 가장 고명한 저서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는 비극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비극은 인간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생활과 행복과 불행을 모방한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은 행동 가운데 있으며 비극의 목적도 일종의 행동이지 성질은 아니다. 인간의 성질은 성격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행/불행은 행동에 의해서 결정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문예출판사 천병희 역 52페이지에서 발췌) 그러니까 여기서 <똥파리>의 등장인물이 하층민으로 제한 된 것. 그것 자체가 비극적인 설정은 아니지만, 하층민간에 서로 착취를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이 비극적인 설정은 행동을 통해 이를 비극으로 변화시키기에 이른다.


다시 한 번 『시학』을 인용하여 보자. 이번엔 비극의 행위에 대한 분석이다. 「........이와 같은 사건에 있어서는 당사자들은 필연적으로 서로 친구이거나, 적이거나 또는 그 어느 것도 아닌 사이일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들이 서로 적대 관계에 있을 때는 피해자의 고통을 제외하고는 그 행동에 있어서나 의도에 있어서나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이 점은 당사자들이 친구도 적도 아닌 경우에고 마찬가지다. 그러나 비극적 사건이 친근자(親近者)들 사이에서 일어난다면, 예컨대 살인이나 기타 이와 유사한 행위를 형제가 형제에게, 혹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혹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혹은 아들이 어머니에게 행하거나 기도한다면 이와 같은 상황이야말로 시인이 추구해야 할 상황이다.」


이 영화가 만약 하층민과 상류 사회 간의 대립으로 형성된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이 불러일으킬 연민은 한 층 더 감소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똥파리>는 결국 하층민 간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하고 그들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게 함으로써 보는 우리로 하여금 아주 심각한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비극의 기본적인 문법에 아주 충실하고 있다.




이 영화를 가족영화로 보는 것을 일부러 경계하는데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이다. 이 영화의 비극적인 파토스는 가족 영화로 인식 될 경우 희석되기 아주 쉽다. 여기서 가족이 표상하는 것은 경제적인 하층민 계급을 의미 할 뿐, 굳이 다시 가족이 가지는 정서적인 연대로의 복기를 뜻하지는 않는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결국 핵심은 같은 편, 같은 입장, 심지어 피를 나눈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는 이 비참한 구조에 있다. 그것을 가족으로 감쌀 경우 영화는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게 된다. 가족 간의 관계로 이를 재정립 해봤자 결국 하층민 계급 속 서로 다른 가족 간의 착취와 피착취의 문제로 이어질 뿐이지 문제의식 자체는 별반 틀려지지 않는다.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는 이러한 모순적인 구조에 분노를 폭발한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그는 이런 울화에 대한 직접적인 행동을 취한다. 그는 착취자로 해당되는 가해자 남성과 피착취 자에 해당되는 피해자 여성에게도 동시에 분노한다. 이 둘은 서로 연대 가능한 연인임에도 불구하고 한쪽이 한쪽을 착취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빠져 있다. 감독이자 영화의 남자주인공인 그는 양쪽 모두에게 화를 내고, 폭력을 행사한다. 이것은 가해와 피해의 상반된 관계가 아닌 잘못된 착취 구조에 관한 일침이다. 감독 양익준은 이러한 비극적인 사회 구조 모순을 제한된 등장인물과 이들의 행동을 통하여 제법 호소력 있게 말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나는 이 영화를 가족 영화로 보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양익준이 말한 것을 보기 위해서 가족이라는 조건을 경제적 공동체 그 이상으로 확대 해석해 읽고, 더 나아가 정서적인 유대를 바탕으로 한 대안 가족으로의 복구로 읽는 것은 더욱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영화가 보여준 불가능한 하층민 계급 연대가 보여준 비극을 대안 가족 간의 연대로 비극을 완전히 거꾸로 읽게 만드는 오류를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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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인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아주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05.23 22:56
    • sdvsdv  수정/삭제

      좋은 포스트 잘봤습니다.
      영화.드라마.쇼프로.음악 다운받으세요 ㅋ
      무료니까 댓글 짤리기전에 오세요 ㅋ
      www.entos.co.kr

      2009.06.19 16:46
  2. 비니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근데 영재는 연희의 오빠가 아니라 동생인데요^^;

    2009.05.25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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