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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만난 네 편의 한국 영화

필진 리뷰 2009.10.17 21:27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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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기


이번 부산에 와서 많은 영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이를 추려본다면, 한 가지 공통점으로 이 영화들을 묶어 볼 수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하반기에 우리와 만나게 될 중요한 한국 영화란 범주로 나는 이 영화들을 선택하였다. 따라서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영화를 보기 전, 나는 이 영화의 감독들이 분명히 한국 영화의 자장 안에서 이루어내야 할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사전 기대와 이 영화들을 보고 난 후, 이들이 이루어낸 것과 그렇지 못한 것 그리고 이외의 것들을 간단하게나마 소회하려고 한다. 영화를 자유롭게 보아오고 사유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영화인들을 만나는 스케줄이 많아졌다는 핑계로 영화에 관한 글을 도외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으로서 이 네 편의 영화를 한데 묶어서 자세히 비평하려는 시도 자체가 도리어 무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기에 대체로 프리뷰 형태로 간단하게나마 기술하려고 한다.

첫 번째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장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진을 기대한다. 장진의 영화보다는 장진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장진은 희미하다. 장진은 장진으로 남지 않고, 영화 캐릭터를 대신 내세웠다. 영화는 대통령이기에 앞서 한 정치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감독은 결코 정치적이지 않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 영화야 말로 정치적으로 가장 재밌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정치는 영화적인 소재보다는 현실적인 오락의 소재로 유희된다. 정치 혐오증은 이런 정치를 현실의 유희적인 오락거리로 남기기 위한 반향이고, 투표율이 떨어지는 현실은 이런 행위에 대한 일종의 보복이다. 나는 그래서 이 영화가 재밌다. 하지만 고로 이 영화는 대중적인 영화가 될 수 없다고 확신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중은 정치를 영화적인 오락거리로 환원시키기를 꺼려한다. 그것은 현실에 갇혀 비웃음거리의 일환으로 남아 있기를 강력하게 소망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대중들은 정치에서 멀어지는 희열을 느낀다. 영화가 그것을 가깝게 이어붙이면 붙일수록 대중들은 극렬한 혐오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 정치인에 대한 혐오가 아닌 정치에 대한 혐오감에 빠진 자신에 대한 혐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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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영화 [카페 느와르]

이번엔 정성일이다. 두 시간 칠 십 팔 분짜리 영화를 관람하는 일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것이 데뷔작이라면 그 걱정이 배가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한 정성일의 영화가 불편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기우는 첫 장면에서 바로 아주 부드럽게 녹아버렸다. 영화의 시작은 무거운 기운이 감돌지만, 화면의 비추어진 이미지만큼은 경쾌하다. 이것은 <극장전>이다. 화면의 장면은 바뀌고, 다시 다른 영화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렇게 시간은 두 시간 칠 십 팔 분을 지나쳤다. 영화는 끝도 없이 기존의 영화들을 콜라주 한다. 이것은 몽타주가 아니다. 정성일은 이를 분명히 콜라주 했다. 어떻게 보면 이건 그의 화법과 닮아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결국 정성일은 영화를 찍지 못하였다. 그는 영화로 영화에 대한 글을 쓴 것이나 다름없다. 이게 실망은 아니다. 내 가슴 한쪽에는 안도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정성일의 글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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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영화 [파주]

개인적으로 올 한 해 가장 중요한 한국 영화가 될 확률이 높다고 본다. 7년의 기다림을 무색하게 만드는 성장이다. 그녀에게 성장이란 표현이 어색하다면, 완성으로 고쳐 쓰자.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스스럼없이 자유스럽게 드나들던 그녀의 연출 화법은 이제 인간 외면의 공간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이 영화의 제목이 <파주>인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녀는 장소적 특히 도시의 공간을 인간 내면에 접목시키는 방식을 그 어느 누구보다 탁월하게 제시하는 능력을 갖췄다. 도시 공간적인 내러티브와 인간 내면의 붕괴를 심리적으로 교차하는 흐름은 이 영화가 가지는 백미이며, 이제까지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던 방식임이 분명하다. 도시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담론. 하지만 이보다 더 이상 뛰어 날 수 없는 영화적 완성도. 박찬옥은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의 위치로 당당히 한발자국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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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영화 [작은 연못]

나는 솔직히 노근리 사건에 대하여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사건이 다시 조명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작은 연못>에는 다소 회의적이다. 이 영화의 문제 제기 방법이나 영화의 윤리성을 탓하는 것도 아니다. 과연 이 영화의 시점은 누구의 것인지 묻고 싶다. 이 영화는 피해자들의 관점인가? 아니면 가해자들의 관점인가?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관점이 가지는 영화의 감상법 자체가 틀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상황 재현의 노림수에 빠져 이 둘을 혼동하고 있다. 시점숏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따지는게 아니다. 영화는 단순한 상황 재현극이 아니다. 그런 것은 이미 TV드라마에 넘쳐나고 있다.




진짜진짜 미안해

필진 칼럼 2009.01.13 11:26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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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새해를 맞은 지 십 여일이 지났음에도 글쓰기를 멈추고 있었다. 몇 개의 외고를 쓰느라 진이 빠진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른 것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보다는 책을 읽는데 더 열중했다고나 할까. 에릭 홉스봄과 앨런 와이즈먼의 저작을 밀린 숙제하듯 독파한 후 잡은 것이 1960~80년대를 종횡무진 활약했던 일본의 전방위문화예술가 데라야마 슈지의 책이었는데, 그의 책을 읽다보니 에드워드 양의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속 샤오장의 모습이 떠올랐고, 이내 1970년대 한국청춘영화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한 영화감독의 타계 소식이 전해졌다.

지금이야 흔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70.80년대만 해도 부부가 방송 연예프로에 출연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부부연예인이 지금처럼 많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명사의 아내들이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는 법이 없던 사회분위기 탓도 컸을 것이다. 기억해보면 그 시절 텔레비전에서 만날 수 있었던 부부명사라고는 문여송 감독과 방송작가 김이연 외에는 거의 없지 않았나 싶다.

문여송과 김이연이라. 늘상 ‘대한민국 계약커플 1호’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한국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라는 설명도 어김없이 따라다녔던 그들이었다. 선 굵은 곱슬머리에 둥근 뿔테 안경을 쓴 문여송 감독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똑 부러지는 말솜씨를 자랑했던 김이연 씨가 방송에 나올 때면 내 어머니는 “저 둘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둘이 여적 같이 사는 것을 보면 부부 사이는 아무도 모른다니까”라며 신기해하셨고, 옆에서 신문을 읽던 아버지는 “아폴로 박사(조경철)와 전계현도 잘만 살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며 혀를 차시곤 했다. 물론 두 분에게는 계약커플이라는 단어 자체가 신기하거나 이해하기 힘들었을 테고,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셨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시절이 있었다. 영화의 ‘映’자도 모른 채 그저 단체관람의 재미에 푹 빠져 지내던 나의 학창시절, 문여송 감독은 몇 편의 하이틴영화로 추억의 필모그래피를 확실하게 만들어준 사람이었다.

어젯밤 문여송 감독이 향년 7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청춘영화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트로이카(김응천, 석래명, 문여송)의 시대가 진짜로 막을 내린 셈이다. 이들이 만들던 청춘영화는 맥이 끊겨버린 지 이미 오래다. 청춘영화도 영화를 만들던 감독도, 그 영화에 열광하던 그 시절의 관객도, 무엇보다 ‘청춘’ 그 자체로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는 사회정서를 찾아보기 힘들다. 케사르의 말대로 「이렇게 세상의 모든 영광은 사라져」 가는 것일까? 30년이 넘도록 모른 척 잊고 지내다가 이제 서야 억지스럽게 지난 시절의 영화를 돌아보는 내 모습이라니. ‘진짜진짜 미안합니다’ 문여송 감독님, 부디 평화롭게 안식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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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건영

좀 더 집중할 순 없었을까?

한 인터뷰에서 작가 최인호는 “소설의 소재로 쓰라며 자기이야기를 들려주러 찾아오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파란만장하기 이를 데 없고 다른 이들은 절대 상상할 수 도 없는 인생이야기라면서. 하지만 막상 듣고 보면 그 정도는 누구나 한 번쯤 겪는 흔한 고생담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또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피아노를 배우러 온 아이의 부모는 하나 같이 자신들의 아이가 절대음감을 가졌다고 말한다. 하긴 초등학교시절만 해도 교실 뒷벽에는 내가 그린 그림이 떡하니 붙어있었으니까.

아무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뛰어난 재능을 가졌겠냐마는 대게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 재능이 별것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고 이를 이겨내면서 성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이야기하려고 하는 영화의 주인공 ‘수연’은 남달라 보인다. 그러니까 재능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으면서도 자신이 재능 없음을 인식하거나 인정할 줄 모를 뿐더러 오히려 콤플렉스덩어리로 가득 차있다는 것. 게다가 특별한 노력도 않고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않으며 오직 자기의 꿈을 상대에게 설득하고 지원하도록 강변하는데 만 급급한 인물이다. 언젠가는 유학을 갈 것이라고, 단지 남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끊임없이 최면을 걸며 하루를 소비해나가는 이 대책 없는 청춘. 이처럼 뭣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청춘이 열정 하나에 의지해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것,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재능임에도 스스로를 독려하며 이 험난한 세상과 부딪혀야 할 때 그 두려움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과연 그녀의 꿈은 이루어질까?

단편 <난 그런 사람 아니에요>로 알려진 이승영 감독은 장편 데뷔작 <여기보다 어딘가에>를 통해 바로 이러한 청춘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책임감도 확신도 없이 탕진하다시피 소비되는 일상을 읊조리듯 담백한 음악을 통해 매끈하게 묶어내고 있는 데, 때깔만 보자면 독립영화의 틀을 훌쩍 넘어설 정도로 만족스럽다. 또한 핸드헬드와 트래킹 사이의 적절한 선택은 몇몇 장면에서 탁월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외양에서 만족스런 만듦새를 보여주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주인공이 어떻게 세상과 맞서 자기의 꿈을 이뤄내는지 혹은 실패하는 지를 보여주는 과정일 터. 그러니까 성공과 실패에 대한 결과론적 탐구에 치중한다면 20대 청춘을 소재로 한 것이 무의미할 테고 원인과 배경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무게감에 짓눌려 독립영화의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보다 어딘가에>가 선택한 것은 어느 쪽도 아니다. 다시 말해 영국 유학에 목을 맨 영화 초반과는 달리 어느 샌가 주인공의 꿈은 현실에 경착륙해버리고 마는데, 이는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세 명의 캐릭터를 (너무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데 허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감독에게 던지는 질문 하나. 동호의 학교생활에 그토록 많은 시퀀스를 할애할 필요가 있었을까? 현의 동거녀를 두 번씩이나 등장시킨 이유는, 그의 이중성을 알리기 위해서였는가 아니면 수연의 절박함을 설명하기 위함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둘 다 껍데기만 남은 비루한 인물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인가? 이렇다보니 영화가 끝날 무렵이면 수연과 동호와 현이 어떤 사람이었고 이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명확한 반면 수연의 꿈은 온데 간데 사라져버리고 만다. 솔직히 말해 수연의 행위들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구석이 충분함에도,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그녀가 꿈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궁여지책을 알려주는 것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다.

영화에서 수연은 경제적 도움을 주지 못하는 부모를 떠나 홀로서기를 택하고 있는데, 이를 지속시키기 위해 그녀가 하는 일이라고는 자신을 좋아하는 동호의 옥탑 방에 얹혀살면서 친구에게 푼돈을 빌리는 것뿐이다. 이처럼 사소한 노력도 성취도 병행되지 않는 수연의 행동으로 인해 꿈이 멀어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때문에 유학을 꿈꾸고 음악인이 되기를 간절히 원함에도 재능은 고사하고 기본기조차 갖추지 못한, 게다가 이기적이면서 히스테리로 뭉쳐진 그녀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감독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다. 그러니까 번번이 패배하고 좌절하는 주인공의 꿈과 현실이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자문하도록 만듦으로써 동시대 젊은이들의 공감대를 얻어내려 한 시도가 엿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칫 무기력하고 나태한 청춘의 자화상을 드러내는 것 같아 아쉽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재능이 없음에도 죽도록 노력하면서 작은 성취를 맛보며 앞으로 나아가던 <아스라이>의 상호나 남루한 현실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그 무엇을 발견해가는 여정을 그린 <나의 노래는>의 희철과 비교해볼 때, 영화의 주인공 수연은 낙천주의자도 아니고 노력파도 아닌 단순한 몽상가에 지나지 않음이 발견된다는 말이다. 이는 소재가 가진 충만한 에너지를 십분 이용하지 못한 채 인물들의 문제를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찾으려한, 그러나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시종 자기합리화로 일관하는 수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난 그런 (재능 없는) 사람 아니에요’를 외치는 것 같아 안타까울 정도다.

만약 수연이라는 캐릭터에 좀 더 집중하면서 홀로 영화를 견인토록 했더라면 어땠을까? 예컨대 동호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현은 필요이상으로 음울하며, 수연을 둘러싼 중심인물들의 이야기에 곁가지처럼 끼어든 동호를 짝사랑하는 여학생과 현의 동거녀 설정은, 청춘의 꿈을 다루고자한 영화인지, 음악인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영화인지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매끄러운 화면과 중독성 가득한 소규모 아카시아밴드의 음악은 더 없이 좋았지만 여기에 치중하다보니 결기를 놓쳐버린 아쉬움. 한편으로 이러한 것들은 최근 독립장편영화에서 곧잘 발견되곤 하는데, 얻는 만큼 잃어가는 것들에 대하여 한 번쯤 되돌아 볼 때가 된 듯하다. 즉 상업영화 못지않은 품질과 독립영화정신 사이에서 한정적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 도래했다는 말이다.

글을 다 쓰고 나서야 다른 이들의 평을 읽어보았다. 대체로 영화에 대하여 호의적이었으나 구체적으로 왜, 무엇이 좋았다는 얘기는 없었다. 독립장편영화라는 것의 강조를 통해 면피하려는 태도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럴 때면 고민스럽기 짝이 없다. 젊은 감독의 장편데뷔작 그것도 불과 1억을 가지고 만든 독립영화 앞에 너무 무거운 숙제를 던져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라도 상호부조성 칭찬은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독립영화에서 1억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닐 뿐더러 영화는 감독의 작업이라는 점에서 영화에 보내는 응원과는 별개로 영화 자체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실망스러웠다기보다는, 너무 세밀하게 그려내려 했던 시도로 인해 더 잘 만들어질 수 있는 여지를 감독 스스로 봉쇄한 것 같아 더욱 아쉬운 영화 <여기보다 어딘가에>, 선택과 집중의 묘미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감독에게 남겨진 숙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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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임권택을 이야기할 때면 으레 많은 수식어가 붙곤 한다. 임권택은 1980년대 이후로 계속해서 작가로 명명되어온 감독으로, 그는 현재 쏟아져 나오는 다수의 역사 영화의 현 상황을 직접 체험해 걸어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임권택은 한국 역사와 한국 영화사를 아울러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산 증인’인 동시에 한국 영화에 대한 향수와 비판을 동시에 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감독이다.

임권택은 수 년 간의 연출부 생활을 바탕으로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라는 액션물을 통해 데뷔했다. <두만강아 잘 있거라> 이후 약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임권택은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1년 전이었던 2007년 봄, 꽃이 흐드러지는 계절에 임권택은 자신의 백 번째 영화 <천년학>을 완성했다. 임권택의 <천년학>은 그가 걸어왔던, 그리고 쌓아왔던 시간에 대한 가능성을 완곡하게 열어두는 장치인 동시에 또 다른 결말의 시작이었다. 한 평생을 사회와 혼돈 속에서 묵직하게 지켜온 임권택의 삶은 오로지 그의 영화에만 온건히 녹아있다. 때문에 임권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여기서 ‘이해’라는 말은 여전히 가당치 않은 말이지만), <천년학> 이전, 그리고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은 <취화선>과 <서편제>를 포함한 다른 영화들을 훑어보는 수고가 필요하다.

임권택의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시기로 구분된다. 시기로 따지면 1990년대 이전 영화들과 1990년대 이후 영화들이 그것인데, 보통 그를 대표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후자에 속하는 작품들이었다. 임권택은 데뷔 당시 다소 폐쇄적인 영화계의 틀을 겪어야 했으며, 이는 곧 감독과 제작사, 그리고 흥행 간의 고려를 통해 지원 유무를 결정하는 값을 낳았다.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통해 스크린에 비로소 감독으로 이름을 보태게 된 임권택은, 이후 상업 영화의 전선에서 많은 영화를 만들었다. 특히 <두만강아 잘 있거라> 이후 70년대로 들어서면서 임권택은 엄청난 다작을 했는데, 이는 당시 그가 제작자와 관객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흥행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확인시켜주는 예다. <두만강아 잘 있거라>와 같은 해에 발표된 <전쟁과 노인>, 그리고 그의 전쟁 영화 중 가장 수작으로 꼽히는 <낙동강은 흐르는가>를 포함한 한국 영화 산업의 붐도 바로 이 시기에 일어났다. 임권택의 초기 전쟁영화들은 대부분 같은 결말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쟁 영화는 대체로 소재의 오락성에 의해 관심을 받기 쉬운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임권택의 전쟁 영화는 동시대, 혹은 전 시대 감독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주로 한국 전쟁 초기의 상황에 초점을 맞춘 임권택의 70년대 영화들은, ‘소년’의 눈으로 읽힘을 받는 장면이 곳곳에 명확하게 쌓여있다. 그리고 곧 이것은 비극적 결말을 낳는다. 임권택의 73년작 <증언>은 전쟁 통을 겪은 감독 자신의 체험이 가장 짙게 반영된 작품이다. <증언> 역시 전쟁 초기의 혼란스럽고 악몽과 같은 상황을 서술하는데, 이 영화는 정부 슬하에 제작된 영화이지만 임권택은 단지 지원에서 그치지 않고 전쟁이라는 단어의 참혹한 경험을 알리는 데 치중한다. 전쟁 영화에서 임권택의 연출은 주로 사격과 진압을 포함한 전투 장면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특유의 서스펜스 영화적 분위기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낙동강은 흐르는가> 또한 임권택이 바라본 전쟁 당시의 직접 체험을 영화를 통해 간접으로 투영한다. 이들은 모두 박진감 넘치는 서사를 꾀하고 있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붕괴(<낙동강은 흐르는가>)와 주변 상황의 급격한 변화(<깃발 없는 기수>)를 토대로 철저하게 무너지는 양식을 취한다. 때문의 임권택의 초기 영화, 그 중 전쟁 영화는 폭탄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유혹적 상황에서 결국 파탄에 이르는, 다시 말해 형언할 수 없는 ‘긴박감’을 낳는다. 이는 한국 전쟁 영화에서 매우 드문 양상에 속하는 것이다.

70년대를 뛰어넘어 80년대로 들어서면서도 임권택은 전쟁에 대한 확고한 시선을 고수한다. 이것은 한국 전쟁 밑바닥에서 시작된 역사와 더불어 그곳에서 파생된 각종 범죄에 대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데, 85년작 <길소뜸>은 정면에서 바라보던 전쟁을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변화를 가져다준다. 시선을 현대로 돌려, 텔레비전의 영상을 통해 이산가족의 현실을 여성의 삶을 통해 풀어낸 <길소뜸>은 자식과 부모간의 근본적인 유대 관계를 건드린다. <길소뜸>의 화영은 역사가 쏟아버린 잔재를 끌어안고 최대한 감정을 자제한다. 화영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친자를 부인하는 장면에서 <길소뜸>의 점프 컷이 발생하는데, 이는 곧 <길소뜸>을 전후해 쌓아왔던 임권택의 전쟁사를 하나로 폭발시키는 과정의 마지막이다.

90년대로 넘어온 임권택은 그의 영화사에서 두 번째 시기를 맞는다. 90년대 이전의 연출이 임권택에게 있어 실험과 반복을 시도하게 했다면, 9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감정과 서사에 충실한다. 임권택은 전쟁, 그리고 역사 이야기를 통해 지속적으로 눌러 담아왔던 인간의 정서를 표현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의 출발점은 81년작 <만다라>와 91년작 <개벽>이다. 두 작품은 이후 임권택의 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도발적인 작품이다. <만다라>는 자신을 지우거나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길을 떠도는 로드무비다. <만다라>는 이후 <서편제>와 <취화선>, 그리고 <천년학>을 잇기 위해 존재하는 발판과도 같다. <만다라>의 지산 스님과 옥순은 시간을 매개로 간극을 형성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두 사람의 서사는 펠리니의 <길>과 상통되는 사건을 만드는데, 주목할 것은 지산과 옥순의 두 번째 만남에 있다. 옥순과 지산이 처음 만났을 때 욕망과 사랑의 결정체를 낳았다면, 그들의 다음 만남은 자연스레 추억이 전제된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지산은 옥순을 다시 만난 후에도 본가였던 종교로의 회귀를 꾀하지 않는다. <만다라>의 결말은 <개벽>의 최시형과 맞닿아 있다. <만다라>의 지산과 <개벽>의 최시형은 역사의 정 중앙을 걸어가는 동시에 도망과 안정점으로의 모색을 보여주지 않는다. <만다라>에서 이어진 애정에 대한 감정은 <개벽>의 결말과 맞닿는다. <개벽>은 역사 영화로서는 엄청난 서사와 깊은 사상을 입힌 농도 짙은 실극이라 하기 마땅하다. 그렇기에 <개벽>의 이야기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으며 오히려 알 수 없는 몰입도를 낳는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개벽>이 단순 동학운동의 처음과 끝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개벽> 이전의 임권택 영화들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로맨스의 서술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개벽>은 마지막인 최시형의 총살 장면, 온전한 샷 바이 샷이 아닌 최시형의 부인의 눈으로 봉기의 결말을 선언함으로 막을 내린다. <개벽>의 마지막 은 감정을 증폭시킨 채 어떠한 테크닉도 발하지 않은 순수한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이로 인해 완성되는 <개벽>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고 완벽한 영화다.

<개벽>이후 임권택은 역사의 공간에 서 <태백산맥>을 낳는다. <개벽>에서 화두로 작용했던 인간 본연의 사상, 그리고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모든 상황들은 <태백산맥>에서 정지된다. <태백산맥>은 <개벽> 이후 현대의 역사를 사는, 말하자면 ‘그 시대’에 존재했던 사람들을 위한 분노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태백산맥>의 서사가 임권택의 역사서중 가장 난해하고 목으로 넘기기 힘든 거친 것이었다면, <태백산맥>과 거의 동시에 제작된 <서편제>는 <만다라>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서편제>는 길의 종착점을 알 수 없는 임권택의 두 번째 로드무비로, 판소리를 매개로 한 유봉과 송화, 그리고 동호의 이야기를 그린다. <서편제>가 임권택의 미학을 완성시킨 것이라는 말에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서 작용한다. <서편제>는 <만다라>에서 참아 온 한국, 혹은 인간의 정서를 대폭 반영한다. 하지만 영화는 길을 따라 떠도는 세 가족의 모습을 직접 서술하지 않고 ‘소리’를 통해 ‘노래’한다. 진도 아리랑이 길게 울려 퍼지는 <서편제>의 롱테이크는 현실에 상처받은 한 가정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장면이다. <서편제>에는 아들과 아버지, 아버지와 딸이라는 부모 자식 간의 형용할 수 없는 정서가 녹아있다.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도 곧이 읽혀서 솎아낼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서사임은 분명하다. <서편제>는 그것을 ‘음악’을 통해 건드려 낸 것이다.

이후 임권택은 <축제>를 통해 가족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고, 동시에 가족을 묻는 방법을 표현한다. <축제>의 기억은 한 사람의 시선이 아닌 구성원 모두의 시각을 통해 완성되고, 이는 곧 장례로 이어진다. <축제>와 <창>에서 이어진 <춘향뎐>은 <서편제>와 동시로 임권택의 영화 중 가장 중요한 공간을 차지하는 영화다. <서편제>의 연장선은 <천년학>이 아닌 <춘향뎐>이다. 임권택의 <서편제>에서 시작된 ‘소리’에 대한 갈망은 <춘향뎐>에서 극대화된다. <춘향뎐>은 서사가 없다. 이것을 조금 더 돌려 말하자면, 임권택의 영화 속에서 지금까지 중요시 되어오던 이야기 자체가 <춘향뎐>에만 유독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권택은 인물을 이루는 환경에 눈을 돌린다. <춘향뎐>은 대사가 아닌 노래로 남는 영화다. 전문 배우가 아닌 신인을 대거 등용해 배우에 대한 파격을 감행한 영화는, 그로 인해 ‘춘향’과 ‘몽룡’의 현실성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춘향뎐>의 이미지와 소리는 다른 형식과 방식을 빌리지 않은 본연 그 자체로 존재한다.

<춘향뎐>이 한반도 안과 밖에서 외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이와 동시에 임권택의 서사 또한 완벽한 안정점(그렇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은)을 터울 짓게 된다. 임권택의 세 번째 로드무비인 <취화선>은 영화라는 한정적인 시간 안에 속할 수 있는 어떤 ‘인물’의 최대 값을 이미지로 불어넣은 것이다. <취화선>은 오원 장승업이라는 거친 화가의 궤도를 좇기 위해 몇 가지 방점과 전환점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아름다운 영화다. <취화선>은 2002년 칸느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사건을 발생시키며 동시에 한국에서 장기간 상영으로 전환된 영화이기도 하다. 이전의 작품들이 하나의 역사를 서술한 것이라면 <취화선>은 앞서 말한 <개벽>과 <서편제>, 그리고 <춘향뎐>의 사건을 하나로 뭉친 결과물이라 하겠다. <취화선> 이후에도 임권택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계속적인 진보는 <하류인생>의 태웅으로 전환되고 마침내 <천년학>으로 귀속된다. <서편제>에서 이야기 하지 못했던 남녀의 정은, 수 년이 지난 후 <천년학>에서 진정성을 달고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오른다. 이제 더 이상 동호는 송화를 그리워하는 것을 숨기지 않고, 송화는 동호의 손을 뿌리치지 않는다. <천년학>은 동호와 송화, 그리고 임권택 자신의 환상을 통해 ‘영화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짙은 정의를 내린다.




<춘향뎐>이후 연속성을 보이던 임권택의 영화들은 <천년학>을 전환점으로 삼고 회귀한다. 때문에 <천년학>의 시퀀스들은 철저하게 분할되지 않은 채 하나의 원을 이룬다. 임권택의 역사 속에 또 다른 획을 그은 <천년학>은, 그가 걸어온 길만큼이나 굴곡진 영화인 동시에 아련한 기억을 형상화하는 영화다. 임권택의 영화는 시간의 연속이라는 이론을 단적으로 정의내리는 것들이다. 위에서 열거했던 영화들 외에 임권택의, 이를테면 <티켓>이나 <아제아제 바라아제>, <짝코>, <족보>와 같은 작품들 모두 거듭되는 시간 속에 존재할 때 빛을 발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임권택을 더 이상 거장이라는 명칭으로 국한할 수 없다. 만약 한국에서 ‘옳은 영화’가 그립다면, 그 해답은 임권택의 영화들에 있을 것이다. 그의 영화를, 그것도 근작을 아직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감히 말해) 무료로 받는 엄청난 수혜에 가깝다. <하류인생>의 마지막 나래이션은 이렇다. "태웅은 이후에도 몇 년을 더 그 일에 종사하다가, 1975년 전업했다. 그의 인생이 맑아지는 조짐이 보였다." 임권택의 영화는 태웅의 내일을 알 수 없듯이 이미 스크린 밖의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백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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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구원투수를 자임한 충무로의 승부사 강우석 감독이 <강철중: 공공의 적 1-1>을 들고 다시 강호로 나왔다. 지난 2006년 <한반도>로 비평적 실패를 맛본 후 와신상담해온, "한국영화 침체와 거품의 책임이 시네마서비스에 있다"며 자신이 세운 회사에 칼끝을 겨냥했을 정도로 비장한 출사표를 던진 그였다. 그로부터 1주일, 실로 오랜 만에 한국영화가 박스오피스를 점유했다는 뉴스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평소의 신념이 있었음에도 흥행과 작품성을 동일시해온 일부영화인들의 아전인수식 논리에 반감을 가졌던 터라, 또 관객 수로 영화를 평가하려는 언론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겨온 터라 나까지 나서서 호들갑 떨 이유는 없겠으나 소위 '봐 줘야 할' 영화목록에 <강철중>이 있었음은 인정해야겠다. 요컨대 <강철중>은 단 한 가지 이유로 필자를 만족시켰으니, 다름 아닌 정재영과 그가 연기하는 이원술이라는 인물이 그것이다.

집단적 기억을 소환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경험과 절묘하게 조우시키는 것에서 강우석의 장기는 십분 발휘되곤 했다. <투캅스>에서 <공공의 적>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그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던 반면 <공공의 적>의 속편 격인 <강철중>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의 제목만 놓고 본다면 주인공은 꼴통형사 강철중이어야 하고, 실제로도 강철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강철중과 대극에 놓인 이원술이라는 캐릭터이다. 그러니까 정재영이 연기하는 새로운 공공의 적 이원술은 주인공을 능가하는 카리스마를 품어내며 스스로 외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인데, 이를테면 대극의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가 충동하는 영화에서 악당의 역할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공식에 지나치게 충실함으로써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장르영화들의 경우와는 달리, 이원술은 강철중과 경찰이라는 견제세력 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캐릭터임을 증명해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예로 <범죄의 재구성>에서 천호진이 연기한 '차 반장'과 <씬 시티>에서 미키 루크가 분한 거리의 파이터 '마브' 등이 외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로 꼽히지만 이 분야의 최고는 단연 <배트맨>의 '조커'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필자는 (강우석이 의도했건 안 했건) 주인공 강철중과는 별개로 이원술이라는 캐릭터를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연기한 정재영 또한 재삼 언급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영화에서 이원술에 대해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은 자신의 입으로 부르짖는 내면화된 그의 본질이다. "나는 칼질하는 깡패인데 세상은 나를 회장님이라고 부른다."며 보란 듯이 사자후를 토해내는 그의 모습은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다. 이때 본질을 숨긴 채 가공된 현실 위를 활보하는 이원술을 악마의 현신으로 탈바꿈시키는 영화적 장치는 의도적인 클로즈업과 독특한 화법이다. 즉 강철중과는 달리 (영화 포스터에도 나와 있듯이) 이원술의 지나치게 매끄러운 턱은 가까이서 보기 불편할 정도로 관객을 압도하고 있는데, 이는 거친 내면과 본래의 모습을 감추기 위한 장치이자 성공한 사업가로 보이기 위한 강박적 위장술이라 하겠다. 이처럼 이원술의 내면이 정재영의 얼굴을 빌려 완벽하게 재현될 때, 대극에 있는 강철중의 추레한 현실은 극대화되고 이것이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음이다. 이원술은 강철중의 존재 이유이자 기원(起源)인 셈이다. 무성영화의 스타들이 그랬듯이 배우가 얼굴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음을 기억한다면 <강철중>의 정재영 또한 이에 뒤지지 않은 얼굴 하나로 이원술을 연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쉽게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자 정재영이라는 배우의 진가를 재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또한 이원술은 신경질적인 얼굴만으로는 모자라다는 듯 독특한 화법으로 상대를 압도하고 예측불허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즉 어눌한 듯 무식한 듯 그러나 핵심만 잘라서 던지듯 내뱉는 정재영의 말투는 법보다 주먹, 말보다 칼이 앞서는 이원술을 완벽하게 재현해낸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문성근과의 독대와 경찰서로 찾아가 강신일 앞에서 뿜어내던 살기는 필자로 하여금 쉽사리 경험하지 못한 긴장감을 촉발시킬 정도였다.

장진 감독의 페르소나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로 일찌감치 인정받아온 정재영이지만 <거룩한 계보>와 <마이캡틴 김대출> <나의 결혼원정기> 등 그가 근작에서 맡은 캐릭터들은 다분히 인간적이고 세상사에 서툰, 악마적 이중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때문인지 <킬러들의 수다>나 <피도 눈물도 없이>의 정재영을 기억해볼 때 이제는 한 번쯤 냉혹한 인물을 연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던 차에 만난 이원술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강철중>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게 정재영의 연기만 놓고 본다면 이렇듯 생생하고 소름끼치는 그럼에도 악인으로 단정 짓기 힘든 캐릭터를 연출해낸 강우석의 능력은 칭찬받아 마땅할 것이다. 영화의 제목과는 달리 <공공의 적>이 '강철중'이란 안티히어로를 탄생시켰다면 <강철중>은 오히려 '이원술'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어쨌거나 틀에 박힌 설경구의 연기에 식상해질 즈음 찾아온 정재영이 세공해낸 이원술은 내가 <강철중>에서 얻은 유일한 소득이다.


(추신) 적지 않은 매체들이 강철중을 일컬어 '서민형 캐릭터'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물론 마케팅사의 보도 자료에 의거했거나 기자의 판단에 따라 기술되었을 테고, 후줄근한 옷과 덥수룩한 외모에 중산층과는 먼 경찰이란 직업을 감안하자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표현이기는 하다. 그러나 강철중이 전세방에 살고 전세보증금이 궁하다는 것만으로 서민형 캐릭터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어쩌면 이것은 신흥기업 회장 이원술과의 대구를 이루기 위한 의도적인 설정이라고 보여 지는데, 강철중 스스로가 실토했듯이 "뇌물도 받고 삥땅도 좀 친" 게다가 1편에서는 마약까지 빼돌린 부패한 경찰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서민'이라는 표현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다. 유사한 예로 '시골총각은 순박하고 어눌하며 건실하다'라던가 '장애인은 순수하고 착하다'는 식의 고정관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인물에 대한 도식화된 평가와 편견이 빚어낸 섣부른 단정은 비평적 사고에 장애가 될 수 도 있다는 점에서 유의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잣대는 시선의 확장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감독의 의도마저 오인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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