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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2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 10주년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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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더욱 날선 목소리를 요청하며

9월 18일은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이 땅에 세워진지 10년째 되는 날이다. 요즘처럼 자고나면 세상이 바뀌는 시대에 십년 세월이라니, 얼마나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오늘의 독립영화협회를 일구어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연일 도착한 안내문을 보면 창립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기획이 준비되어 있는데, 독립영화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3개의 포럼과 10주년 기념식과 <파업전야> DVD발매 기념상영 등, 영화단체이자 시민사회단체로서 독립영화협회의 발걸음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을 행사로 가득하다.

지난 10년간 기억도 못할 많은 일들이 독립영화계를 스쳐 지나갔을 테지만, 독립영화인들의 오랜 숙원인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개관은 10년 한국독립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특별한 사건으로 기록될 듯하다. 식자들마다 한국영화의 미래가 독립단편영화에 달려있다는 말은 쉴 새 없이 해대왔지만 정작 현실은 이와 동떨어져있어 적은 제작비로 힘겹게 완성시켜도 홍보는 고사하고 상영할 극장을 찾아 나서기도 벅찰 노릇이고, 설사 힘들게 상영관을 잡았다 해도 마케팅의 부재로 찾는 관객이 소수인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인디스페이스는 독립영화의 안정적인 상영 뿐 아니라 지속적인 홍보를 통한 관객과의 거리 좁히기를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전용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독립영화협회 10주년을 맞은 지금에도 ‘독립영화의 현재가 한국영화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단편영화 제작을 통해 기술을 익히고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나간다는 점만 놓고 봐도 그렇다. 문제는 상영공간과 배급라인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라오기 마련인 법. 독립영화의 발전과 저변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만큼이나 관객의 호응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돌아보면, 장산곶매, 서울독립영화집단 등을 주축으로 8.90년대 만들어진 <판놀이 아리랑> <강의 남쪽> <상계동 올림픽>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등의 영화들은, (비록 시대적 요청이었다고는 하나) 그 소재가 민주화로 증폭된 사회계층간의 갈등과 소외된 삶에 편중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낯선 영상과 메시지의 중압감에 부담스러워했던 당시의 관객들은 독립영화에 대한 편견을 가졌을 런지도 모른다. 물론 독립영화가 어둡고 음습한 외진 곳의 삶을 조명해만할 이유는 없다. 거꾸로 가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다짐이 투쟁적 영상을 만든다고 해서 굳건해지는 것도 아닐 터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자. 자유당과 공화당을 거쳐 민정당으로 이어진 독재군사정권 하에서 한국영화산업은 국가정책의 발 빠른 메신저 역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를테면 반공. 계몽. 건전이라는 명찰을 단채 정권의 홍보대사로 격하되기 일쑤였으니, 그 시절 다수의 영화들은 통치자의 대국민 영상편지에 다름 아니었다는 말이다. 때문에 격동의 시대를 뚫고 탄생한 한국독립영화는 태생적으로 영화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까 자본은 물론이고 정치적 목적으로부터의 독립과 부조리한 사회시스템에 항거하지 않고서는 만들 수 도 상영될 수 도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시대의 관객이 이러한 태생적 연원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그것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독립영화에의 애정을 과시한답시고 소재와 형식을 상업영화와 비교해 섣불리 재단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립영화에 관한한 독보적 비평가 중 한사람인 김이환은, 자신의 첫 번째 독립영화인 송혜진의 <안다고 말하지 마라>를 보며 얻은 경험을 교훈삼아 쓴 글에서  「가끔 사람들이 독립영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게 될까? 그 기준은 또 얼마나 자주 변할까? 그러니, 함부로 안다고 말하지 말자」고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다. 소중히 새겨야할 대목이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볼 만한 독립영화는 도처에 산재해 있다. 독립영화 전용관뿐 아니라, 인터넷 영화 사이트나 포털 사이트에서도 독립영화를 만날 수 있다. N 포털 사이트의 경우는 독립영화관이 별도로 개설되어 있고 무료관람이 가능하다. 열정과 성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독립영화를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그러나 인프라의 확충만으로 독립영화에의 관심을 증폭시킬 수는 없다. 대중이 관심을 갖고 보고자 할 때, 극장을 찾아 나서며 적극적으로 동조할 때서야 독립영화의 위상이 달라지고 관객과의 만남이 잦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번의 관람과 두 번의 관심이 더해져야 한다.

영화는 가히 21세기 문화산업의 총아로 군림하고 있다. 여기서 방점은 산업에 찍혀야 한다. 환금성 높은 것만이 상품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후기자본주의시대에 독립영화라고 예외일 수 는 없는 노릇이다. 즉 철저히 자본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작동하는 산업의 자장 안에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독립영화감독들과 인터뷰를 해보면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오래오래 계속 영화를 찍고 싶다”는 바람이 그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오래도록 영화를 찍자면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가족의 주머니에서 나오든 친구 친지에게 읍소해 제공 받든, 아니면 감독과 스태프가 아르바이트로 조달하든 돈이 있어야 영화를 찍을 것 아니냐는 말이다. 영화 속 한 장면을 보자. 김삼력의 <아스라이>에서 주인공 상호는 “상금 타먹으려고 영화 찍느냐”고 대드는 후배에게 “그래도 찍었으면 돌려봐야지, 돈을 구해야 영화를 찍지, 그러려면 작품이라도 부지런히 돌려야지” 않겠냐고 말한다. 사람에 따라서 느낌이 다를 수 있겠으나 독립영화인의 현실적 고민이 담겨있는 이 장면에서 나는 오히려 김삼력의 솔직한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자본의 독립만큼 중요한 것은 자본의 자립이다. 제도의 장벽과 대작영화의 극장독점이라는 공정성 문제가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 감독들은 자신의 작품을 자본화 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터득해야 한다. 바야흐로, 창작예술이라는 1차원적 사고에서 벗어나 산업적 논리를 대입시키려는 2차원적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지난 시간 동안의 독립영화가 투철한 모험정신으로 세상과 맞서 사회적 모순과 문제를 진단하고 스크린에 상정시켜놓은 반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명쾌한 답변까지 이어지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현실에 집착하면 상상력이 결핍되기 십상이고 상상력이 앞서면 현실과의 괴리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시대의 대안가족에 대하여 곰살스럽게 펼쳐 보인 안슬기의 <다섯은 너무 많아>가 (개인적으로 더 없이 좋았음에도) 더 전진하지 못하고 멈춘 그 지점을 김태용의 <가족의 탄생>이 과감하게 돌파했다는 사실은, 독립영화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놓치지 말되 풍부한 상상력과 따뜻한 인간미도 두루 스크린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독립영화의 편견과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실종된 목소리는 무책임한 선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영화의 다양한 기능성, 그러니까 영화의 사회적 책무에 버금가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속성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는 독립영화라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용인될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므로 독립영화도 재미있어야 한다. 볼거리를 제공하고 그 속에 영민하게 메시지를 담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독립영화가 더 날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믿는다.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날선 목소리를 독립영화에서마저 들을 수 없다면 진실의 외침이 설자리는 어디라는 말인가. 최근 몇 년간 독립영화는 비전향 장기수, 외국인 노동자, 청년실업, 기지촌, 일탈을 꿈꾸는 가족사, 무미건조한 일상 등, 소재의 다양성과 내러티브의 확장성을 시도하면서 디지털 시대에 걸 맞는 깔끔한 영상과 재미로 관객과 한층 가까워지고 있다. 독립영화의 대중성 확보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지금이야 말로 <파업전야>의 결기를 독립영화가 다시 이어받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오래전 선배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지켜낸 소중한 필름과 그 속에 담긴 뜨거운 시대정신 말이다. 그러니 역사의 시계바늘이 거꾸로 도는 것을 막기 위한 초석이 되고, 독립영화를 지켜온 많은 땀방울에 부끄럽지 않도록 세상을 향해 더 통렬하고 시원한 직격탄을 날려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 10주년을 맞아 만들어진 <파업전야> DVD에 담긴 상징이야말로 그 시대로의 회귀를 거부한다는 몸짓이요 영화를 통한 실천적 모험정신을 놓지 않겠다는 새로운 다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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