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할하틀리'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1.21 [네이키드] 오프닝 시퀀스와 엔딩을 곱씹으며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연하

이 영화는 대체 뭔가. 너는 대체 누구니. 반쯤 미친 채 끊임없이 분노하고 비꼬며 입을 놀리는 남자 주인공 조니와 그를 따라가는 영화, [네이키드]를 보며 계속 되물었던 생각들이다. 영화에서는 내 물음과 비슷하게, 여러 인물들이 서로에게 묻는다. 너 여기서 뭐하니. 런던에 왜 왔니. 이런 일을 왜 하니. 결국 내 질문도, 그들의 질문도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하고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가 걸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 애매하게 나와 성적인 분위기와 폭력적인 섹스장면 구성에만 역할을 하고 사라져버리는 몇 명의 여성들 때문에 불편한 지점도 있다. 하지만, 감독 마이크 리가 너무도 힘 있게 연출해낸 시네마틱한 장면들과 영화 전체에서 느껴지는 멜랑콜리한 정서는 분명 [네이키드]의 멋진 성취이고 주목해야 할 부분이며, 나로 하여금 [네이키드]를 곱씹게 한다.

영화는 어두운 밤 맨체스터의 뒷골목에서 시작한다. 멀리서 남녀가 비명을 지르며 섹스를 하고 있고, 카메라는 미친 듯이 그들을 향해 돌진해 간다. 스크린에 제작사와 영화사 이름이 살며시 뜨고 사라지자마자 이어지는 이 충격적인 카메라 무빙은 단숨에 '[네이키드], 보통이 아니겠는걸.' 하는 예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남자는 여자를 벽에 밀어 붙인 채 반강제적인 섹스를 하고 있다. 여자가 욕설을 날린 후 도망치자 남자는 홱 돌아서 뛰어가고, 또 다시 카메라도 그를 따라 뛴다. 남자는 차를 훔쳐 타고 도망치듯 떠난다. 런던으로 향하는 도로의 몽타주가 이어지고, "NAKED" 타이틀이 검은 바탕에 흰 거친 글씨체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펼쳐진다. 이후 런던에 도착한 남자를 허름한 집들이 이어선 길목에 홀로 세워둔 채, 카메라는 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풍경과 남자를 함께 잡으며 무빙한다. 이 오프닝 시퀀스의 놀라운 리듬감을 잊을 수 없다. 아무런 동기나 설명 없이 단숨에 관객을 사로잡으며 앞으로 펼쳐질 영화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아니, 초대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돌진하듯 거칠게 달려가는 영화에 우리는 끌려가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과 조응한다. 며칠 동안을 부랑자로 런던 거리를 헤매다 옛 애인 루이즈가 사는 집으로 돌아온 조니는 그녀와 함께 맨체스터로 돌아가기로 한 약속을 저버리고, 집 안의 돈을 움켜쥐고 다시 집을 나온다. 카메라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처음 들어섰던 거리를 절뚝거리며 빠져나가는 조니의 앞모습을 담으며 무빙한다. 안정과 약속을 뒤로 하고 다시 골목을 걸어가는 남자의 얼굴과 절뚝거림으로 문을 닫는 영화는 절망적이고 스산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프닝 시퀀스와 엔딩만으로는 [네이키드]라는 영화를 반의 반도 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말로는 도저히 다 묘사할 수 없는 배우들의 끝없는 대사와 연기, 마치 세기말 풍경을 연상케 하는 런던의 뒷골목 장면들과 같은 여러 요소들이 합쳐져 영화는 강렬한 자기만의 세계와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영화 속 인물들의 구체적인 배경이나 행동 이유에 대해 끝까지 알 수 없지만, 분위기에 이끌려 점차 그들의 삶의 고단함과 분노에 동화된다.

영화를 보면서, (재작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했었던) 미국 독립영화의 기수 할 하틀리의 초기 연출작 [심플맨]과 일정 부분 닮아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두 영화 모두 1990년대 초반에 나온 영화들이며, 그 시기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혼란과 절망적인 기운을 담아내고 있다. [심플맨]이 좀 더 형식적으로 진보적이며 정치적인 반면, [네이키드]는 좀 더 본능적이고 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영화는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고 있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상영작이다. 아직도 두 번의 상영이 더 남았고, 오프닝 시퀀스는 꼭 극장에서 봐야 진가를 느낄 수 있다. 할 하틀리의 [심플맨]을 본 관객이라면 1990년대 초반의 현실을 묘하게 비틀어 담아낸 두 영화를 비교하며 감상해보기를 추천한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158,706
  • 116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