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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함을 강요받는 시대다. 우리들은 자기 보호에 시달리고 있으며,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서 내것을 지키거나 혹은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열정이란 것이 의미롭기는 하지만, 자칫 열정의 소용돌이에 휘둘리다 보면 어느 순간 지금껏 쌓아온 인생의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는것. 지금의 시대는 이렇게 냉정함을 우리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란 동물은 욕심이 너무 많은 존재다. 냉정함속에 자신을 가리고 살지만, 실은 한번쯤 내질러 보고 싶은 욕구, 즉 열정의 목마름 또한 안고 살아간다. 아, 한번쯤 기회가 된다면 끝까지 달려가보고 싶다는 생각들. 시대가 강요하는 냉정함은 결국 개인들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열정에의 의지를 완벽하게 억누르지 못한다.

그러나, 열정에 빠져 삶을 송두리째 휘둘리든, 혹은 가까스로 이성의 힘을 빌어 냉정을 유지하던, 인생이란 것이 우리에게 해줄수 있는 것이 과연 있을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다. 라는 말처럼 그 무엇을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가더라도, 혹은 객관적 판단의 끈을 놓지 않고 냉정을 유지하든, 인생이란 것은 어떻게든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열정적으로 살아가든, 냉정하게 살아가든 삶의 주도권을 쥘 수 없다. 가장 강력한 승자는 '어떻게든 되어진다'는 인생의 느긋함일 뿐이므로.

영화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에는 이 인생의 느긋함이 들어있다. 비주류스포츠에 열정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 그들이 핸드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상의 현실적인 문제들과 빚어지는 마찰을 스포츠 영화의 드라마틱한 전개를 빌어 보여준다. 영화속 인물들의 작은 사연들. 개개인이 모여 이뤄내는 스포츠맨쉽. 흔히보기 어려운 스포츠 장면의 재현. 영화는 열정을 다하고 있다. 핸드볼과 핸드볼을 하는 선수들의 사연에 대해서 우리생의 최고의 순간이었다는 신파의 경지까지 열정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 영화의 열정에 현혹된다.

그러나, 우생순이 단순히 이런 열정만을 보여주었다면, 이 열정은 휴머니즘의 외피를 두른 신파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 우생순의 열정은 싸구려로 전락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영화속의 빛나는 열정들 사이로 보이는 냉정함때문이다.

우생순은 한 인물을 부각시키는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인물들의 사연을 쪼개고, 그것을 슬쩍슬쩍 들여다 보고, 그렇게 핸드볼이란 것으로 선수들을 엮어가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승리 혹은 패배의 클라이막스로 몰아치는 대신, 그 몰아치는 열정의 순간에 호흡을 가다듬고 냉정하게 인물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김정은과 문소리가 핸드볼 코트에서 서로 공을 던지며 대치되는 장면에서도, 그들에게 감정이입될 수 있는 클로즈업을 미룬채, 바스트 샷으로 인물들을 잡아낸다. 분명 클로즈업을 사용했더라면, 관객을 눈물바다로 만들수 있었을 장면을 그 순간의 열정을 잠시 접어둔채, 냉정을 찾고 있는 것이다.

과정이 중요하다? 혹은 결과가 중요하다? 글쎄, 실은 그 무엇이든 중요할 수 있고, 혹은 그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러닝타임 120분이 넘어가는 스포츠 영화를 한편 봤다. 비주류 스포츠를 하는 선수들의 희노애락에 관해 관객들은 조금씩 동화되어 가고, 영화의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그들이 안타깝게 놓친 승리. 즉 패배의 순간에 영화는 끝이난다. 아, 이렇게 선수들이 열심히 했구나. 라는 그들만의 과정에 박수를 칠 것인가? 혹은 그들이 남긴 결과에 안타까움을 보낼 것인가? 그들의 열정도 빛이 났고, 안타까운 패배가 남긴 드라마적 감동도 대단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열정과 냉정을 아우르는 느긋함이 있다. 굳이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는 것. 다만 어떻게된 되어질뿐이지 않을까?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이란 것은 말이다. 이토록 드라마틱한 이야기에서 느긋함을 끌어낼 수 있는 연출의 묘미에 놀라울 뿐이다. 매번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일 수도 있고, 혹은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 다만, 시간과 호흡하며 느긋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 인생의 무언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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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영화평의 저열함

필진 칼럼 2008. 1. 23. 11:55 Posted by woodyh98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세간의 평가를 살펴보면 예상과는 달리 분명하게 선이 그어진 호평과 혹평이 공존하는 형국이다. 어떤 영화라고 일방적 찬사가 있겠냐마는 최근 우연히 읽게 된 어느 인터넷 신문의 비판은 납득하기도 힘들거니와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비판이 아니라 작심하고 트집 잡아 제목 장사 한 번 해보겠다는 심산으로 쓰인 저급한 글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글을 통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최종심급을 논하거나 변론하려는 것이 아닌, 특정 영화를 논평함에 있어 오로지 글재주에 의존하여 철저하게 목표지향적인 글쓰기에 담긴 위험한 사례를 지적할 것이다.

우선 이런저런 경로로 읽은 이 영화와 관련한 여러 비판 중에 다수를 차지하는 내용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점과 빤한 결말을 위해 감동으로 치장했다는 점, 그리고 스포츠 영화치고는 너무 느리고 느슨하다는 것 등이었다. 그런데, 이제부터 필자가 문제 삼으려는 글은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었다. 즉, 리얼리티가 전혀 없는 왜곡 일색이라면서 “국가대표훈련, 관리시스템에 대한 고증이 부족하고 말도 안 되는 장면이 많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감독이 선수에게 존댓말을 쓰는 장면’ ‘감독과 선수가 크로스컨트리 경기를 하는 장면’ ‘감독 지시에 선수가 반박하는 장면’ 등인데, 이러한 리얼리티의 부재가 마치 관객의 수준에 못 미치는 형식미의 부재를 가져왔다는 식으로 단정 짓고 있다. 반면, 고증이 잘 되어 리얼리티가 살아난 영화로 [쉬리](1998)와 [신데렐라 맨 Cinderella Man](2005)을 내세우고 있으니, 한마디로 어이가 없을 뿐 아니라 일일이 반박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야한 논리 앞에 기가 막힐 수밖에.

[쉬리]야말로 마이클 만 Michael Mann의 [히트 Heat](1995)가 보여준 시가전을 고스란히 복제 하였으되, 마이클 만의 영화가 가진 디테일의 십분의 일도 못 따라가는 영화였다. 이를테면 총알이 소진되어 탄창을 갈아 끼우는 장면 하나만 놓고 보아도, 모델의 구경과 제원을 정확하게 습득하여 사용한 [히트]와 이것이 거의 일치하지 않는 [쉬리]를 비교하는 것부터가 우스꽝스럽다는 말이다. 또 [신데렐라 맨]은 어떤가. 비록 이 영화가 짐 브래독이라는 실제 선수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리얼리티 구현에는 성과를 거뒀는지 몰라도, 영화가 리얼리티만 살리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것이던가. 이 영화에 쏟아졌던 비판을 아는지 모르는지, 글쓴이는 오로지 자기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에 맞게 윤색하여 해괴한 논리를 내놓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리얼리티는 무엇인가? 영화를 되짚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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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결승전 후반, 공항에서 발길을 되돌린 한미숙은 패배 직전의 팀을 극적으로 구원하고 연장전으로 몰고 간다. 이때 교차편집으로 보여 지는 그녀의 움직임과 오버랩 되는 공항 장면들. 화면 너머에는 고통스런 삶을 내려놓고자 약을 먹은 남편 규철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이 지점에서, 한쪽의 희생을 통해 다른 한쪽을 소생시키는 식의 관습적 작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즉, 주인공 자신이나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상징적 또는 실질적 죽음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침으로써 이야기는 극적인 반전과 감동적 결말을 향해 순항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위적 작법의 과다, 과잉사용은 자칫 신파로 변질시켜놓기 십상이니 어떤 감독이라도 이러한 시퀀스 삽입을 쉽게 결정할 수 는 없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순례 감독의 영화에서 이러한 것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중산책]은 물론이고 [세 친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 어느 작품에도 이러한 작위성이 발견되지 않았건만, 어찌된 일인가. 규철의 자살시도와 한미숙의 결승전 복귀를 통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사명감이 가족보다 우선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임순례가 상업주의에 굴복한 증거인가? 천만에!

다시 조규철의 음독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짐작하건대, 조규철 역시 꽤 잘나가던 핸드볼 선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은퇴와 동시에 돈 관리에 실패하여 사기를 당하고 빚까지 떠안게 되면서 불행이 시작된다. 사실 세상물정 모르기로, 교사와 군인, 경찰과 운동선수가 첫 손에 꼽힌다. 한 우물만 파다보니 잇속차림을 잘 못하기 때문일 테다. 조규철 역시 오로지 핸드볼만 알고 살아온 인생이다 보니 세상에 나오는 순간 장님이 되었을 것이다.

요컨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선수들이 맘 놓고 뛸 팀 하나 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과 울분. 그러니까 인프라만 제대로 갖추었더라면, 선수층이 두터워 주전의 체력저하를 줄일 수만 있었더라면, 그까짓 유럽의 텃세쯤 넘어설 수 있었던 아쉬움. 바로! 엔딩 크레디트에서 보여 진 임영철 국가대표 감독의 목맨 장면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다시 말해 조규철의 음독장면이 단순히 극적효과를 위한 장치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리얼리티란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드러내는 그 자체이고, 성적지상주의의 스포츠 문화가 빚어낸 운동선수들의 어두운 이면이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조규철의 음독이며, 자살시도라는 극적인 장치로도 소생시키기 힘든 것이 한국 핸드볼의 현재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도대체 리얼리티의 부재로 인해 영화의 행간이 지워지거나 중심이 허물어진 장면이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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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영화 평을 읽을 때마다, 비판을 하지 않으면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라는 이상한 강박에 사로잡힌 글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저널리스트 뿐 아니라 개인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대체로 정확한 근거나 통계자료 없이 에둘러 일반화시켜버리는 비판 도구의 허술함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가령 문제의 글의 일부를 예로 들면 이런 식이다.

“주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형식미의 기본조건을 갖추어야 하고, 그 필수적 요소는 바로 철저한 고증이다.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운영시스템을 100% 재현해내면서 동시에 주제의식을 살릴 수 없었을까?”

언뜻 보면 충분히 일리 있어 보이는 주장이지만, 실은 영화의 맥을 완전히 잘못 짚은 것이다. 의사의 오진으로 인해 처방 받은 약이 몸에 들을 리 만무하듯, 이런 유의 비판은 영화나 관객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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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걱정스러운 일은 한국영화를 위한답시고 들이대는 이러한 글들이 인터넷 언론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되어 유포되고 가벼운 여론형성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남들이 호평하는 영화에 대한 비판을 대단한 감식안의 산물인양 우쭐대면서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경우, 글쓴이가 영화의 시작화면에 선명하게 박혀있는 자막을 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 2004 아테네 올림픽의 실화를 기초로 했으되, 실제와는 다른 것도 있다는 문구 말이다. 그럼에도 (영화에 담긴 이야기와 엔딩 크레디트에서 보여 준 임순례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빤히 알 만한 이가) 우격다짐으로 비판전선에 나섰다는 점은 적이 개탄스럽다. 게다가 영화의 제작과정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꿰뚫은 양 고증과 기획과정까지를 넘나드는 비판을 해대는 것은 인터넷 매체의 부작용 중 하나인 ‘이유 없이 비판하고, 욕먹는 기사로 이슈화하기’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무엇을 얻고자 함인가? 묻고 싶어진다.

필자라고 이 영화가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불만스런 부분이 많다고 해야겠다. 특히 임순례 감독답지 않은 몇몇 장면은(소개팅에서 실망한 상대의 차를 들이 받는 장면이나 규철이 안 감독에게 장난감과 돈을 건네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실망스러울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말 하려는 바를 훼손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점과 대형제작사와 손잡고 만든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일정부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거듭 말하건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 담긴 리얼리티는 단지 핸드볼 경기의 규칙과 선수들의 행동양식과 태릉선수촌과 국가대표 관리시스템 등의 재현 따위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마이너리티와 아줌마의 힘과 소외된 스포츠 영화라는 관용구를 글에 사용하면서 난데없이 리얼리티의 부재라니! 그렇다면 대체 무슨 재주로 공통적 메시지를 읽어냈다는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니 “고양이를 그렸는데 호랑이를 그리지 않았다고 화를 내면 곤란하다”고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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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arcus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평론가들은 어려운말 좀 섞으면서 비판만하면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나봅니다.
    실례로 영화평론하는 형님한테 그쪽 얘기들어보니 가관이더군요..영화는 까야 제맛이다
    라는 전제를 시작으로 글을 쓴다고 하더라구요. 특히 한국영화는요.
    근데 솔직히 리얼리티 스포츠 영화를 보고 싶으면 다큐멘터리나 인간극장을 봐야죠.
    극장갈필요 있을까요

    2008.01.23 18:05
  3. 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우행순을 별로 재밌게 보지 못했는데요.
    글쓴님이 "리얼리티의 부재"를 정말 느꼈기 때문입니다.
    무조건적인 비판이라 하셨지만, 전 영화 내내 집중할수 없었습니다.

    비인간적이던 감독이 하루아침 달라지는 점,
    쓸모없는 내용인데 굳이 끼어넣은 것들(글쓴이가 위에서 지적한 소개팅,역도부원들과의 마찰 등),
    그리고 연기력.. 김정은 문소리,김지영의 꺽꺽대는 과장된 연기는 저를 허무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핸드볼 연기인데 핸드볼 모션은 정말 눈물나도록 비참 그자체였습니다.
    그토록 실감안나는 운동 영화는 정말...
    선수들이 준비를 많이 했다길래 기대했더니만..ㅠㅠ
    선수연기를 하는 분들이 안되면 구도나 빠른 컷,흔들리는 촬영법 등.. 모든걸 동원해서라도
    커버할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색함만 그득 느꼈을뿐입니다.
    (제가 스포츠를 좋아해서 몇번이고 녹화장면을 봐서 그런걸수도..)

    아무튼 기대했던 만큼의..그리고 소재의 빛나는 가치만큼의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2%가 아닌 22%는 부족한 영화인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우행순의 비평 글들이 더 와닿더군요.

    2008.01.23 18:06
  4. 릴리슈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평론이란게 제생각에는 이렇습니다..
    일반인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영화속 감독이 주고자하는 의미를 관객에게 알려주고,
    또한 장면 장면 속의 의미를 설명해줌으로서 일반 관객에게 보다 자세한 정보를 주어
    영화를 관람하면서 더 많은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영화 평론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건 일반적인 거구요.. 영화의 성숙도를 평가하는 것또한 평론이겠지요..
    그러나, 그들이 가끔 웃기지도 않는 행동을 하는것은 자신의 지식의 우월감에 사로잡혀
    자신들만의 전문용어만 주루룩 나열하면서 자신이 감독의 위에 올라있는듯한 비웃는듯한
    말들만 늘어놓죠.....

    예전 고 정영일 선생이 말씀하신게 생각납니다... 영화"쉐인"의 가장 중요한 장면을 찾기위해 하루종일 극장에서 쉐인만 봤다고 7번째에서야 쉐인의 가장 중요한 장면을 찾았고, 그래서 이 영화가 진정 우리에게 주려한 의미를 알았다고.... 지금 영화평론가들은 영화를 몇번이나 보고 말하는걸까요? 보기나 할까요? 어떤 사람은 보지도 않고 쓴다고 하더군요...

    (쉐인의 가장 중요한 장면은 엔딩크래딧올라가면서 쉐인이 말에서 떨어져죽죠.. 그게 총잡이의 서부시대는 종료되고 정착민, 농민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라네요...)

    2008.01.23 19:02
  5. 에테메난키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판만 하는 영화평이 아니라, 편집자가 그런식으로 교정을 본것입니다. 논란거리가 있어야 신문이든 잡지든 사람들이 볼테니까요.
    그리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에서 말하는 혹평은 해외사례와 비교했을때 혹평 축에 끼지도 못합니다.
    영화판 ' 파이널 판타지 ' 가 개봉했을때 평론가 중 한사람은

    " 제작비의 98%가 캐릭터의 머리카락을 표현하는데 쓰였으며 나머지 2%는 배경묘사에, 그리고 시나리오엔 커피 한잔 가격 정도가 들어간 영화 "

    라고 표현했었고. ' 미녀 삼총사 2 맥시멈 스피드 ' 개봉 당시엔

    " 감독은 이 시대 가장 아름다운 세 여자를 데리고 돼지우리보다 못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

    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비평가는 영화가 아무리 재밌어 보여도 발전을 위한 문제점을 제시하기 위해 있는 사람이지, 관객들의 욕구충족을 위해 특정영화를 찬양하라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2008.01.23 20:40
  6. 평론가는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론가일 뿐입니다.
    윗분께서 거론하신 것처럼 자극적인 내용을 쓰는 평론가도 있죠.
    그사람이 잘나서가 아니라 글쓰는 방법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영화좀 볼줄 알고 글좀 쓰는 사람의 감상평에 무게를 둘 필요는 없는거 같아요.
    영화만 재미있으면 그만 아니겟어요? ^^

    2008.01.23 21:00
  7. 멋지십니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그런 저열한 비판을 하는놈들 보면 합당한 비판이라면 모르겠는데 무조건 한국영화는 안돼.. 한국은 안돼라는식의 이상한 정신질환을 가진 애들이 많죠.. 다른 선진국의 영화는 털끝만큼의 장점이라도 있으면 추켜세우기 일쑤구요.. 멋진 글.. 통쾌한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계속 좋은글 써주십시요.

    2008.01.23 21:01
  8. 동의합니다. 그러나...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판과정에서 영화 우생순에 관한 약간의 스포가 있네요.
    미리 약간의 스포가 있다고 말하는게 좋을 듯 합니다.

    2008.01.23 21:20
  9. 선배로서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반까지는 읽히는 글이군요.
    그런데 그 이후는 너무 부실합니다.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만한 논증이 나오다 마네요.
    히트와의 비견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신데렐라맨은 뭐하러 건드리다 만 것이며 우생시의 대중적 코드에 대한 지나친 비판을 비판하는 것도 뭐하러 그들의 입장만 옮겨놓고 마는 것입니까?.
    나머지는 전부 사정을 아는 사람들끼리 거두절미 하면서 막연하게 이야기하다가 결론을 내는 식이고요.
    이렇게 함부로 내뱉는 것에는 글쓴이야말로 은연중에 상업적으로 감안되어야 할 관습적 영화의 성격을 무시하는 태도가 깔려있는 것 아닐까요?.
    평자들에 대한 비판은 물론 개인 블로거들의 수준보다도 좋을게 없어보이는 수준입니다.
    님의 글에는 주제 파악 못하는 혈기가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나쁠 것 없는 문제의식에 대한 평가마저 본인 스스로가 오버하는 바람에 날려먹는 격인 것이지요.
    아무튼 앞으로 더욱 열심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2008.01.23 22:20
    • 음..  수정/삭제

      글쎄요. 님의 연세가 얼마나 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님이야 말로 '선배'라는 되도 않는 우월 의식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거야 말로 오버에 오만인거죠.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서적인 리얼리티를 무시한 어느 평자의 무지함에 대한 비판일텐데 정작 핵심적인 부분은 비껴가고 선배니, 주제 파악 못하는 혈기니 하는 자극적인 문구 동원해가며 언어의 칼날을 날리시는 것을 보니 님도 그다지 나을 건 없어 보입니다. 말은 장황하지만 그 속을 파고 들면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여느 악플들과 다를 게 하나 없는 덧글이군요. 아무튼 앞으로 더욱 열심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2008.01.24 00:42
  10. 미순순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그닥 재밌게 막 빠져들게 보진 못하겠더라구요..
    뭐 엄청난 노력이 보이지도 않고;; 원래 잘하는 사람이 그냥 나가서 잘하게 된거같던..
    그치만 저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는 알겠더군요..

    근데 저도 윗분말 동감 ㅋㅋ 신데렐라 맨은 뭔지는 모르겠으나;;
    읽는데 왜 그 얘기는 중간에 빠졌을까.. 싶은 ㅇㅅㅇ
    그치만 재밌게 잘 읽었어용 ㅎㅎ

    2008.01.23 22:32
  11. 야옹야옹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평론가의 역할이 그 영화에 대한 객관적인 글을 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자기 생각에 따라 글을 쓰는 것 뿐인데 어째서 욕을 하는건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그리고 평론가들에게는 그들만의 잣대와 논리라는게 있습니다. 아무리 잘나가는 초일류 기업이라도, 경영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뭔가 부족한 점이 있는 것 처럼요.. 그 사람들은 "이 영화 ~는 부족하지만 재미있었다"라고 감상문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 부족했고 ~해 보였다" 라고 본인생각에 잘못된 부분을 짚어주는 사람이에요.. 많은 분들이 평론가의 역할에 대해 별로 생각하고 계시지 않는거 같아요... 디워때도 불거졌던 문제지만-_-
    평론가들의 글을 읽고 괜히 흥분하고 욕하고 이럴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블로그, 평론 모두 자기 생각을 쓰는거 아닙니까.. 알아서 읽어보고 걸러낼껀 걸러내고 받아들일껀 받아들이면 되지 왜들 그렇게 흥분하면서 까대시는지.. 그건 평론가들이 관객을 깔보고 있다고 이야기 하는 거랑 좀 모순되지 않나요?? "하여간 평론가들이란.."이러는 관객이나 뭐가 다르다는건지 모르겠네요.
    쨌든 이 영화는 너무 보고 싶네요. 감독님의 와이키키브라더스를 엄청 재밌게 봤던지라 ㅋ

    2008.01.23 23:54
  12. 옛날부터 내려오는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스개 소리가 하나 있죠. "딱히 볼만한 영화가 떠오르지 않을 땐 영화평론가가 내린 각 영화의 별점을 보고 별점이 낮은 순서대로 보라. 그리고 평론가로부터 최악의 영화평을 받은 영화는 반드시 보라."라는.... 예전엔 정말 이걸 말 그대로 해석해 최악의 영화평을 받은 영화들을 우선으로 봤다는 ㅋ 물론 모르고 스쳐 지나갈뻔한 주옥같은 영화를 발견하는 계기도 되긴 했습니다만, 영화평 그대로의 영화도 있더군요. 지금에서야 느끼는 이말의 본뜻은 아마 평론가의 주관적 판단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자신의 소신대로 영화를 선택해라라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나라 만큼 권위에 종속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도 흔치 않아서 영화 선택에 있어서도 그 분야의 전문가를 자청, 또는 인정받는 평론가의 평가에 의존하는 관객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죠. 그러다 보니 평론가의 평가 자체에 큰 의미를 두는 경향이 있는 듯. 하지만 영화라는 장르가 교과서가 아니라 해석과 느낌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예술의 한 장르이며 평론가도 일반 관객에 비해 영화에 대해 조금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 그 본질은 일반 관객과 같은 주관적인 인간임을 인정한다면 평론가의 평은 참고만 하고 자신의 소신대로 영화를 보는데 그다지 지장은 없을 듯 하군요. 사실 개인적으로 이 글 제목만 보고 상업적 논리에 매몰되어 자신의 주관을 포기한다든지 어느 파, 주류, 비주류등 일종의 섹트를 설정해놓고 평론하는 일부 평론가의 문제가 나올걸고 기대했는데 단순히 평론가의 주관적인 평가 자체를 논하는 글이어서 약간 아쉽기는 하네요^^

    2008.01.24 00:11
  13. 루루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사실 실망스러운 영화였습니다..
    만약 4년전 아테네의 기억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정말 정말 재미 없는 영화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영화에서 주는 감동은 전혀 없었습니다.
    연기또한.. 안습이죠.. ㅜㅜ 특히 엄태웅은 감독연기를 해야할지 김정은과의 멜로라인을 끌어갈지 헤매고 있더라구요..
    진짜 하나하나 말하며 끝이 없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영화입니다.
    더 잘 만들었으면 600만은 갈 영화였는데.. 300만에서 그칠것 같아요..
    마지막 엔딩타이틀에 올라가는 선수들의 스틸컷이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2008.01.24 01:08
  14. Favicon of http://blog.naver.com/thetorne BlogIcon 인어소년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경우엔 영화는 아주 감동적으로 봤는데요 (별 4개 반) 우생순이 well-made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님께서 비판하시는 그런 영화평을 읽어보면서 "맞아, 나도 그런 부분 때문에 간간히 깬다고 생각했어." 라고 생각했구요. 개인적으로 돈을 지불하고 선택하는 만큼 늘 well-made 영화를 찾으려고 고심하는데요- 물론 그거야 단순한 취향의 문제일 뿐입니다 - 우생순의 경우에는 well-made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도 상당히 만족스럽더라구요. 마치 제 어머니가 엄청난 실력의 요리사는 아니지만 어머니 음식을 제일 좋아하는 것처럼요^^ 아마 님께서는 정말 황당한 영화평을 보시고 많이 답답해 하시는 것 같은데, 가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비평을 하는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좀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더라구요. 디워 사태처럼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2008.01.24 01:10
  15. 구라통신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님의 생각과 다릅니다... 칭찬만하면 거만해지기 마련인데.. 비평은 더욱 조심하게 됩니다.... 솔직히 극찬보다는 비평이 더욱 좋다고 생각합니다.... 비평을 견디지 못한 감독 스텝은 영화찍을 자격이없죠...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말 거만한거죠

    2008.01.24 01:12
  16. 확실히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영화평론가들이 그런면이 있죠 신문같은거 보면서 많이 느꼇구요. 영화평론가들이 쓰는 글들중에 잘만들었다라고 말하는 평론글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요. 저도 한때 영화평론가들이 쓰는 글과 부가되는 별점으로 영화를 많이 판단했었는데 어느순간부터는 그런글 하나도 안 믿게 되었습니다. 아마 저같은 분들이 많으실꺼에요 평론글 보고 영화 판단하시는분들. 물론 평론가들도 생각만 한다면 뭐라 할 논쟁은 안되지만 이런 평론글들의 상당수가 신문이나 매체에 실린다는거죠. 그럼으로써 남들이 보기에는 좋을수도 있는 영화가 한사람의 개인적인 잣대로 아주 쓰레기 졸작이 될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영화 하나 말아먹게되는건 쉽게 되죠. 글쓴분과 동감으로 명쾌한글 잘 읽고갑니다

    2008.01.24 01:25
  17. 으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쉬운 부분도 많앗지만 그래도 재밋엇다고 생각하고 본 영화였습니다.

    2008.01.24 01:32
  18. 적멸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분들은 오해하고 있는데, 블로거의 뜻은 '왜 우리 나라는 무조건 트집잡고, 제대로 조사도 안해본채 다 아는척 비평을 해대는걸까' 가 아닌가 싶군요.
    실제로 우리나라는 일단 비판하고 보는 면이 강해보입니다.
    재밌거나, 신선한 부분을 부각시키는건 '출발비디오여행' 에 맡겨버리고,
    영화잡지는 트집잡기만을 하고 있지요.

    그리고 관객들은
    영화 싸이트에서 20자 평으로 영화를 고르구요.



    결론은 병진들의 합창

    2008.01.24 03:54
  19. 이건아니지않습니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터넷에 찾아보니 고뉴스라는 곳에 변희재씨가 쓴 글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실명과 실제글을 인용하셔서 거론을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비겁한 글이네요,,
    님의 글 역시 읍소 그 이상은 아닙니다.
    네오이마주라는 훌륭한 인터넷[매체]에 실리기에는
    아주 게으른 기사라고도 할 수 있고요,,

    2008.01.24 07:09
  20. Favicon of http://blog.daum.net/jan4700 BlogIcon 터미네이터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 비평은 없었으면 한다.. 나는 재미있게 봤는데 좋지않은 영화평을 들었을때 감동이 반감되 버려요.. 아주 맥이 풀린다고나 할까? 어이 없기도 하고, 기분도 나쁘고..
    악평은 자제해 줬으면 하네요...
    안그러면 미래전사 터미네이터를 보낸다...

    http://blog.daum.net/jan4700
    제주배우

    2008.01.24 10:04
    • ㅋㅋㅋ  수정/삭제

      그럼 당신이 영화 비평 안보면 되잖어. 살다 살다 별 같잖은 소릴 다 보겠네. ㅋㅋㅋ

      2008.01.24 11:45
  21. 답답하니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만 보고 적습니다 제목이 하두 우스워서...낚시글인지... 어느님 말씀처럼 해외평론가는 더합니다 디워해외평론 봤습니까? 어떻게 800만이 이영화를 봤는지 모르겠다
    댁같은 사람때문에 디워가 논란이 불거진겁니다 평론을 그냥 넘기면 되는데.. 평론가 글에 욕하고 따지고,,, 감성적입니다 따지고 태클거는 직업인 사람에게 감성을 요구하나요?
    그러니깐 댁같은 사람때문에 이송희일 글이 나왔고.. 진중권은 매국노 취급당했습니다
    그리고 어이없어서 이명박이 우생순보고 눈물흘렸다는데 ... 우생순보면 이명박 생각나 짜증이납니다 답답하니다

    2008.01.24 10:23
    • 도화  수정/삭제

      동감합니다

      2008.01.24 10:39
    • 여보세요  수정/삭제

      비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거랑 어처구니 없이 단체로 실력행사 들어가서 생떼를 쓴거랑은 구분이 되어야지요. 그 놈의 디워는 참 아무 때나 튀어나오는군요. 이젠 좀 잊혀질 때도 되었건만.

      2008.01.24 11:49


오프닝과 에필로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 은 (영화 속) 핸드볼 큰잔치로 시작해서 (실제의) 아테네 올림픽으로 끝맺는다. 이 두 공간에는 세 명의 감독이 있다. 실업팀 송감독, 당시 대표팀 임영철 감독, 그리고 이 영화의 연출자 임순례 감독. 나는 이 영화에서 영화의 시작과 끝을 보는 것이, 그리고 거기에 있는 세 명의 감독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생순]은 임순례 감독의 전작과는 판이하게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 아니 이 영화에서 임 감독의 스타일은 많은 부분 휘발되었다. 그래서 위의 두 장면은 묘하게 기억에 남는다. 두 감독의 표정과 이 두 감독을 바라보는 한 감독의 시선.

핸드볼 큰잔치가 벌어지는 국내 어느 체육관. 듬성듬성 관중을 비춰주던 카메라는 벤치로 시선을 향한다. 후보선수들은 달아오른 표정과 목소리로 코트 위 선수들을 향해 기운을 내뿜는다. 그 사이에서 무표정한, 얼핏 보기에 어떤 상념에 잠긴 듯한 송 감독의 모습이 눈에 띤다. 송감독은 우승이라는 짜릿한 ‘순간’ 만큼은 선수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지만, 그 순간 너머 찾아오는 해체라는 명약관화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에필로그. 결승전이 끝난 후 당시 대표팀 임영철 감독의 인터뷰. 선수들과 국민들께 감사하고, 하지만 임 감독은 준우승의 짜릿한 순간 너머, 저 멀리 한국땅에서 이미 벌어졌고, 앞으로도 벌어질 명명백백한 현실에 말을 잇지 못한다. 그리고 크래딧이 올라간다.

이 두 감독의 '체념' 혹은 '말 줄임표'가 그 동안의 임순례 영화였다. [세친구] 는 세 청춘의 암흑같은 미래에 대해 체념에 가까운 목소리를 전달한다. 과연 그들이 앞으로 나갈 수 있기나 한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폭행으로 의가사 제대를 한 후 쓸쓸히 거리를 걷는 무소속을 비추는 부감으로 끝을 맺는다. 여기에서는 어떠한 희망도 찾아볼 수 없다.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 지난 해 보았던 [행복]의 영수와 [세친구]의 무소속. 이 두 영화의 마지막은 비슷한 장면으로 끝맺는데, 과연 누가 더 절망적일까. 그러니까 영화가 끝나고 앤딩 크래딧이 오를 때 새로 만드는 이야기, 혹은 시나리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반복이다. 그들은 밤무대에서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한다. 다른 대안이 어디 있겠느냐... 라며 와이키키밴드의 무대를 역시 부감으로 잡으며 영화는 끝맺는다. 그렇게 그동안의 임순례 영화는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생애 최악의 순간이라 할만한 장면을 처절하게 보여주는데 공을 들였다.




순간 혹은 순간 너머

그랬기에, 7년만에 돌아온 임순례 영화의 제목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처음 접했을 때 이질적인 느낌을 받은 건 당연했다. 흔히들 쓰는 반어의 수사인가. 임순례가 어떤 방식으로 최고의 순간을 그렸을지 궁금했다. 다소 위험한 대중관객 반응에 대한 가정. 관객들은 가공된 판타지로써의 상황. 장르적으로 말하자면 공포나 스릴러의 최악의 상황은 맘을 열어 즐기는 것 같다. 왜냐하면 2시간동안 그러한 최악의 대리경험으로 쾌락을 누리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관 바깥에서 늘 존재하는 어떤 불편한 순간을 영화관에서조차 보려하는 관객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임순례 감독은 [우생순]의 전략으로 이전 영화들에서 볼 수 있었던 최악의 순간들을- 이 영화에서 말하자면, 이혼, 불임, 소녀가장, 자살기도 등 - 단지 말로만 전달하거나 간단한 설명 혹은 장면으로 대체한다. 이전 영화들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살아야하지 않겠느냐. 의 과정은 대폭 간소화하고, 그 결과도 영화 바깥으로 지연시킨다.

우리가 정란과 수희 때문에 웃고, 올림픽 은메달의 환희와 안타까움을 함께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온전히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이 아테네를 떠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를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그런 상상을 떠올리는 건 관객의 자유다. 선택이란 말이다. 이전의 임순례 영화에서는 이건 선택이 아니었다. 어떤 불가피함이 있었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영화관을 나오며 그들이 직면해야 할 현실을 상상해야만 했다.

하지만 [우생순]의 무게는 태릉과 아테네 라는 두 공간 속 ‘순간’ 을 생애 최고로 만들기 위한 여정에 실렸다. [세친구] 는 지독한 영화였다. 이 영화에는 이런 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쩌면 그들에게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르는 학창시절을 졸업하고 스무살 성인이 된다. (영화는 졸업 이후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들 셋은 끝도 없이 방황하고, 상처받고, 하여튼 그렇게 남겨진다. 관객은 이 처절한 경험을 함께해야만 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에는 그래도 그런 '순간'이 회상 혹은 환타지로 보여진다. 하지만 그건 희망이 아니라 현실의 남루함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쓰인다. 이미 이 부분에 대해서 필자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낭만주의자의 꿈) 에 관한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 부분을 옮겨보자.

장면 하나. 충고보이스 시절, 그들은 동해바다를 저 멀리 와이키키 해변으로 대신 바라볼 거침없는 권리를 갖고 있다. 드넓은 와이키키 해변에, 하얀색 보트가 지나가고, 야자수 나무 아래로 금발의 비키니 미녀들이 보이고... 그렇게 ‘충고 보이스’ 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개명한다. 대여섯 위의 대학생들과 맞장 뜰 정도로 함께 있으면 두려울 것 없었던 그들은 거리낌 없이 벌거벗고 바다로 뛰어간다. 다시 카메라는 시선을 돌려 노래방 기기 화면에는 비키니를 입은 금발의 여인을 비춰준다. 10년도 한참 지나 해후상봉한 친구들, 금발의 여인 위로 지나는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부른다. 장면 둘. 밴드 생활을 같이 했던 친구의 죽음으로 심각한 쇼크를 받은 성우, 그는 노래주점에서 성고문에 가까운 일을 겪는다. 나체쇼를 즐기던 사장님들은 성우에게도 옷을 벗을 것을 요구하고 성우는 결국 나체로 노래를 부른다. 노래방 기기 속의 비키니 차림의 금발의 미녀는 해변에서 달리고 있다. 이때, 바로 위에서 언급한 충고보이스 시절, 그 때 그 장면이 디졸브된다. 플레시백 효과를 쓴 이 대비되는 두 장면은 단연 이 영화의 백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플레시백’ 을 단순한 과거 사실의 나열, 혹은 그들의 회상이 아니라 그들의 ‘환상’이라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강산이 한번 바뀐 후에 겨우 만나게 된 옛 친구들은 , 으레 학창시절 모임이 그렇듯이 옛날을 떠올린다. 그리고 현실에서 일탈하여 과거로의 행복했다고 믿는 그 순간들을 지속하려 한다. 자, 여기서 다시 두 번째 장면으로 넘어갈 때, 우리는 환상을 바라보는 주체가 어떻게 변하는지 주목해야 한다. 환상의 공간에 쉽게 동화되어 주체적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보던 성우는 영화 종반부의 대비되는 장면 속에서 환상 속 그들과 동화될 수 없는 타자로 거리를 유지한 채 그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첫 번째 장면에서 ‘비키니 아가씨’와 ‘청년 브라더스들’ 과 그것을 바라보는 ‘장년 브라더스들’ 은 추억을 매개삼아 삼중 인화로 ‘심리적 디졸브’로 엮어질 수 있다. 하지만 두번째 장면에서 ‘비키니 아가씨’ 와 ‘청년 브라더스들’ 과 그것을 바라보는 성우는 ‘심리적 디졸브’ 로 엮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브라더스 중 한명이 죽었기 때문이다. 성우는 지금 이곳, 발개벗은 사장님 옆에 있다. 그가 서있는 곳은 여기지(수안보) 거기가(환상 속 학창시절) 아니다.

이처럼 [세친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아예 ‘거기’ 라는 공간을 없애버리거나, '거기'보다 '여기'에 주목한다. 하지만 [우생순]의 전략은 여기보다 ‘거기’에 방점을 찍는데 있다. 이런 식으로 어떤 영화의 상업적 전략에 대해 논하는 건 매우 재미없는 일이다. 다만 혹자가 말하는 임순례의 영화가 점점 희망적으로 변한다. 에는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세친구]에서 [우생순]까지 영화는 점점 희망 혹은 꿈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의 영화에는 일관되게 어찌할 수 없는 체념의 정서가 흐르고 있다. 한 가지 무모한 가정. 당신이 지금의 현실에서 어느 실업팀의 핸드볼 감독, 혹은 대표팀 감독이 된다고 해보자. 희망을 쉽게 얘기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 영화에서 그들의 연대, 화합, 우애 등을 통해 희망의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그들이 아테네를 떠나, 태릉을 떠나 이미 영화관 밖으로 나와 버린 우리를 뒤로 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임순례 감독의 최종 질문은 결국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오프닝과 에필로그를 놓치면 안 되는 이유다.



승부 던지기, 대면의 순간

우리가 이 영화에서 그녀들의 움직임, 그 역동적인 몸짓에 반했다고 하는 건 어떤 스펙타클 차원의 스포츠로써 느끼는 감상이 아니다. [우생순]보다 더 역동적인고 실제에 가까운 몸짓을 보여준 스포츠 영화는 무수히 많다. 그런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액션의 쾌감이 이 영화에는 부족하다. 다만 우리가 그들의 코트 바깥에서의 모습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몸짓이 우리의 가슴에 맺힌 것이다. 그래서 [우생순]의 승부던지기는 - 비록 실제를 바탕으로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찍어야만 했겠지만, 그보다는 - 필연적인 선택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축구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승부차기에서 오는 그 압박감이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고독한 실존. 혹은 실존의 위기. 존재 대 존재의 맞섬. 이것은 어느 낭떠러지에 서 있는 인간 실존의 위태로움과 닮아있다.(실제로 초등학교 축구대회 결승에서는 선수보호 차원에서 승부차기가 아닌 추첨의 방식으로 승부 방식이 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나는 한미숙의 마지막 승부던지기가 실패로 끝났을 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릎을 치고 알았다. 승부던지기가 실패로 끝나고, '아, 금메달은 날아갔다.' 이건 당시 티비를 지켜보았던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느낀 공통된 사실, 반작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실패를 전제로 한 영화다. 즉 우리가 이 장면을 통해 느끼는 정서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 중계의 반복이 될 수 없다. 미숙에게 승부던지기의 실패는, (가상의) 승부의 끝. 다시 코트 밖의 진짜 승부와 대면해야 한다는 그런 끔찍한 자각을 가장 먼저 불러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이 영화를 아줌마들의 영화라고 많이 얘기한다. 그들의 힘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영화라고 한다. 물론 백프로 동의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자. 이 빌어먹을 대한민국 사회는, 아줌마들의 악착같은 생명력으로만 돌파가능한 것인가. 그렇게 항상 정신 바짝 차리고 기합 들어간 삶을 살아야만 하여튼 버틸 수 있는 것인가. 아, 나같이 비리비리한 남자에겐 그들이 위대해보이고, 한편으론 든든하지만, 그 사실이 슬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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