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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행복>의 허진호 감독, 그의 멜로는 전진한다


"어떻게 저렇게 사람이 변할까. 사람이 변하잖아요. 어느 순간, 냉정해질 수도 있고. 그 다음에 또 놀러 가자고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그 느낌이 좋았어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사랑할 때처럼 인간의 감정 변화가 급격할 때가 또 있을까.


조근조근 신중하게 말을 건네는 허진호 감독을 한 발짝 떨어져보니 그의 영화 스타일이 자연스레 이해된다. 왜 그가 멜로 영화를 고집하는지, 사람의 변화하는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드는지.


한석규·심은하의 <8월의 크리스마스>, 유지태·이영애의 <봄날은 간다>, 배용준·손예진의 <외출>. 모두 허진호 감독이 인장이 깊숙이 박힌 멜로 영화들이다.


1998년 <8월의 크리스마스>로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고루 받고 데뷔한 지 10년. 그 허진호 감독이 황정민·임수정과 작업한 <행복>을 들고 나왔다.


도대체 사람이란 존재는 왜들 그럴까


술과 담배·여자에 찌든 남자 영수(황정민)가 망가진 간 때문에 요양원을 찾는다. 거기서 폐가 아파 8년간 요양원 생활을 해 온 여자 은희(임수정)을 만난다. 사랑에 빠지고 동거에 들어가는 두 사람. 이어 연애의 쓴맛 단맛을 모두 보여줘 온 허진호 감독다운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행복>은 원래 전작인 <외출>보다 먼저 떠오른 기획이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두 영화의 순서가 바뀌었다. "그저 나이를 더 먹었다는 정도?"로 변화를 설명하지만 그 사이 허진호 감독은 결혼을 하고 네 번째 작품의 편집을 맞췄다. 다시금 죽음에 가까이 간 기승전결 뚜렷한 이야기를 들고 나온 이유가 궁금해졌다.


- 데뷔작을 빼고는 공교롭게도 다 가을 개봉이에요. 모두 멜로 장르라 그럴까요.


"그러고 보니 그런데,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시간 경과가 있는 영화들을 하다 보니까. 9~11월까지 찍어서 2월이나 5월에 개봉하는 게 맞는데 이번엔 좀 더 늦어졌네요."


- 전작들이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면 이번 <행복>은 이야기에서 시작됐다고 들었어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몸이 아프고 가진 것 없는 두 사람이 만나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그러다가 병이 나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던 것 같네요."


- 전작 <외출>은 허진호 작품세계의 변화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었는데요.


"이야기의 선택이 달랐던 거 같고요. <외출>은 두 사람의 심리적인 부문에 초점을 맞춘 반면 이번 이야기는 제 영화 중에 사람도 제일 많이 나오고 요양원이란 공간이 생기면서 따뜻한 기운도 느껴지고 거기서 웃음도 주고요. 이 쪽에서의 행복한 생활과 도시로 떠나간 후에의 대비되는 효과가 있었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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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요양원 장면들이 유머도 있고 정감있게 느껴집니다. 감독님 영화에서는 시골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도 흥미로워요.


"시골이라(웃음). 이번엔 완전 시골이고(웃음),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경우는 군산이니까 지방이고요."


- 네, 시골 말고 지방(웃음). 뭐랄까, 농담을 섞자면 지방 선호사상?(웃음)


"제가 지방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촬영하기가 참 좋아요. 서울에선 계속 출퇴근하느라 집중도가 떨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지방에서는 계속 영화 생각에 집중할 수밖에 없거든요.


이번 <행복>은 아픈 사람들이 외딴 곳에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좀 더 전원적이랄까요. 의도적으로 이 쪽의 생활·공간, 우리가 흔히 시골 가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 말은 분명히 살아가면서 부족하고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런 얘기를 하는 거겠죠. 현실적으로 봤을 땐 그것 또한 힘들다는 것도 다 알고 있고. 그런 어떤 평온함 삶과 이 쪽에서의 부딪히는 삶의 대비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 확실히 양쪽의 삶의 대비가 두드러져요. 특히 관객들 중 다수도 도시에 살고 있을 테니. 어떤 통속적인 이상향이라기보다 아프다는 구체적인 설정 탓에 더 공감이 갔던 것 같고요.

"요양원이란 공간이 어떻게 보면 (도시에서) 치료를 받다가 실패한 사람들이거나 현실적으로 치료받을 돈이 없거나 규칙적인 생활의 변화를 통해서 치료하는 곳이잖아요. 처음엔 굉장히 어두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취재를 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건 (그 사람들이) 밝더라고요. 병에 대해서 자체적으로 인식도 하고, 또 잊어버리기도 하는 그런 공간이었어요."


- 전작들을 보면 항상 죽음이 어른거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정원(한석규)이나 <외출>도 그렇고, <봄날은 간다>에서는 할머니의 죽음이 있었고요. 이번 캐릭터들은 병도 있고 죽음에 한 발짝 다가서 있는 인물이라 더 직설적으로 느껴져요.

"은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물이라 죽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그것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인생을 더 충실하고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사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더 현명하게 될 수 있는 거고."


- 허진호 영화의 특징은 연애의 쓴맛, 단맛을 다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현실적이라 더 좋아하는 관객들도 있고, 쓴맛은 보기 싫고 '아, 너무 아프다' 하면서 싫어하는 관객들도 있고요.


"<행복>은 원래 '둘이 만나서 행복하게 산다'라는 걸로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한 사람이 병이 나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슬픔도 밝게 찍고 싶었고 둘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은 밝게 그리고 싶었어요. 둘이 만나는 과정들은 웃음을 주고 따뜻하게 그리면서 결국 행복하게 산다는 걸로 끝내고 싶었는데, 다시 몸이 나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서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취재하면서도 실제 영수와 은희 같은 케이스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분명히 한 번 경험을 했고 죽을 수도 있지만 또다시 넘어가는 건 뭔가, 왜 그럴까? 사람이 원래 그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 번 더 반복을 줬죠. 그 반복에 있어서 이 행복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나란 얘기를 해 보고 싶었어요."


- <행복>은 전작인 <외출>보다 분명 친절해졌다는 느낌이 강한데요.


"<외출>은 당시 공간도 한정되어 있었고 생략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행복>은 생략보다는 뭐랄까요, 설명들이 필요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좀 친절하게 갈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행복>은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이니까 설명이 필요하리라 생각했죠."


- 후반부를 보면 은희를 떠난 영수에게 벌을 내린다 싶을 정도로 쓸쓸한 느낌이 나는데요.

"네,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영수가 미워서 좀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게 다시 망가지게 한 가장 큰 이유고. 원래는 전혀 망가지지 않는 결말이었는데, 아까도 얘기했듯이 행동을 다시 반복하고 또 후회하면서 어떻게 보면 자학하는 게 있지 않을까. 감독이 응징한 게 아니라 영수 본인도 그 상처를 가지고는 잘살지 못했을 거다."


"<행복>은 연기자들의 몫이 큰 영화"


'삼촌과 조카 사이 아냐?' '황정민과 임수정이 베드신을?'. <행복>의 개봉 소식이 들려오면서 네티즌들이 보였던 반응들이다. 남성 관객들의 황정민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끝이 없었고 그러는 사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만 갔다. 게다가 멜로의 계절 가을이 아닌가.


<행복>은 항상 남녀 주인공의 앙상블을 중시해 온 허진호 감독의 작품답게 황정민과 임수정의 익숙하면서 전혀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나쁜 남자' 영수와 '당찬 여자' 은희의 사랑 속에 황정민과 임수정은 완전히 몰입한 듯 보인다. 그 중간에서 세심한 배려와 대화로 연기를 이끌어 낸 허진호 감독의 속내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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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영수 캐릭터는 <봄날은 간다>의 은수(이영애)와 대구를 이룬다는 느낌도 얼핏 들던데요.


"글쎄요, 은수와의 대구는 아닌 것 같은데(웃음). 캐릭터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웃음). 그럴 수도 있지만 전 또 다른 인물 같아요. 예를 들면 <봄날은 간다>에서는 어떻게 보면 사랑이 식어가잖아요. 식어가면서 느슨해지고 일상화되고 그러면서 한 사람은 변하지 않는 그런 이야기고. 이 사람은 왜 변할까 하는. 반면 <행복>은 정확하게 떠나가는 거에요. 전 영수가 떠나가는 순간에도 은희를 사랑했다고 생각해요, 그 사랑이 변한 것이 아니라. 물론 변하지 않겠다는 새빨간 거짓말도 있지만(웃음).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변했다는 느낌보다는 어떻게 보면 잘못된 선택이랄까?"


- 카메라와 인물과의 거리를 보면 전작들과 비교해서 굉장히 좁혀졌단 생각이 들거든요. 행복한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 건가요?

"가까이 가서 보고 싶었어요. 특히 행복한 부분에서 그런 모습이 많이 나오는데요. 행복해 하는 모습과 느낌들, '왜 뽀뽀를 했는데 또 뽀뽀하고 싶지' 라는 것이 말이 안 되는 대사인데 느낌은 전달되잖아요. 전 은희다운 대사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 느낌들이나 '너 아프니까 내가 죽을 것 같다'는 영수의 모습들? 그 느낌들을 좀 더 가까이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 좀 다른 얘기를 해 보자면 전작들 경우 남자 주인공의 직업에서 사진이나 소리·무대라는 어떤 매개체가 있었다면 <행복>은 죽음이나 요양원에 집중한 것 같아요. 


"이번에도 직업은 고민했는데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어요. 직업으로 어떤 얘기를 하기보다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 있잖아요. 가라오케 같은 거 경영하면서 월급사장이 됐든 클럽도 다니면서. 인물을 설정하면서 가라오케 사장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아요."


- 그런데 영수는 전작의 소심형 남자들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어요.

"O형이 활달한 성격이죠? 황정민이란 배우가 굉장히 활발하고 동적인 친구에요. 인물이 전작에서는 굉장히 정적인 느낌이었다면 동적으로 바뀐 것에는 황정민이란 배우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런 부분들이 찍으면서도 재미있었고 좀 더 황정민에 가깝게 간 것 같아요." 


- 일부에서는 은희 캐릭터가 남성의 판타지가 개입된 인물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더라고요. 반면 여성의 심리를 잘 그려낸다는 평가도 있고요.


"항상 그랬어요. <8월의 크리스마스> 때도 그랬고. 제가 적극적인 여자를 좋아해서 그럴까요(웃음)? 저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모여 나눈 얘기들과 실재 인물들로 캐릭터를 가져오고 그걸 대사로 썼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요? 사실 여자 심리 잘 몰라요(웃음)."


- 임수정씨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때와 달리 촬영기간 동안 굉장히 가라앉아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행복>은 연기자들의 몫이 커요. 각자 영수가 되고 은희가 된 부분이 있거든요. 편집을 하면서도 저 역을 임수정이 아니었으면 누가 했을까, 그냥 임수정이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아픈 병을 가지고 있고, 그런 상태에서 어떤 밝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누구일까 생각을 해 봤을 때 그건 바로 임수정이었던 것 같아요. 인물에 깊게 들어갔기 때문에 현장에서도 은희의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실제로 배우들이 굉장히 친했고 서로 또 잘 아는 사이였어요. 진짜 둘이 사귀는 거 아니냐 라고 스탭들이 농담을 했을 정도니까. 근데 헤어지는 장면을 찍을 때 실제로 황정민이란 배우가 임수정에게 말도 잘 안 붙일 정도였어요. (배우들이) 정말 좋았던 거 같아요."


- 영화 속에서 인상적으로 쓰인 한대수씨의 노래 '행복의 나라'는 참 좋다 싶으면서도 좀 튄다 하는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는데요.


"시작부터 생각했던 노래에요. 제가 참 좋아하고 넣고 싶었고. '행복의 나라' 자체가 가사나 느낌은 경쾌하지만 그 안에 슬픔이 있어요. 그런 감성을 옛날부터 좋아했고요. 실제로 한대수 선생을 만나서 물어보니까 자기가 열여덟 살이던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참 힘들 때 만들었고 이민자의 슬픔이 담겨 있구나 싶었죠."


"언제까지라도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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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뷔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로 화제의 감독이 된 지 10년이나 됐어요. 그동안 어떤 점이 가장 달라진 것 같나요? 개인적으로 혹은 외적으로.

"그전에도 그랬지만 관객들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또, 그 때도 영화 만들기는 쉽지 않았고 영화는 항상 어렵게 만들어지는 거고. 어떻게 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대중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이런 고민은 전에나 지금에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시장 상황이 바뀌었지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나 제작자들은 영화 정신이랄까요? 그런 마인드는 항상 가지고 있는 것 같고요."


- 곽경택 감독은 방송에 나와서 흥행이 좋냐, 상이 좋으냐란 질문에 '빚이 많아서 상금이 제일 좋다'라고 농담을 하던데요. 감독님은 어떤가요?


"그럼요. 관객이 많이 들고 흥행이 잘됐다는 건 모든 감독들이 원하는 거죠. 왜냐하면 영화에 들어간 자본의 문제도 있는 거고, 영화라는 게 결국 많은 사람들을 보여 주려고 하는 작업이니까요. 제가 판단을 하는 건 아닌 것 같고요. 제가 하려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재미있게 볼까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 그런 점에서 전작 <외출>은 조금 아쉬웠겠어요?


"이번엔 좀 소통하게 도와주세요(웃음)."


허진호 감독은 차기작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김훈의 단편 소설 <화장>을 각색 중이다.


아내를 뇌종양으로 먼저 떠나보낸 화장품 회사 중역인 남자가 아내를 화장하면서 중간 중간 회사의 젊은 여직원을 떠올리는 짤막한 이야기다.


죽음·감정·관계 등 허진호 감독의 전작들에 익숙한 코드들이 언뜻 떠오른다. <행복>에서와 마찬가지로 허진호 감독은 죽음에 관한 성찰을 보여줄 셈이지만 주인공의 남자의 외양은 분명 또 다른 변화를 예측하게 한다.


사랑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 화두를 일상적인 시선으로 녹아내온 '멜로 영화의 작가주의' 감독의 작품세계는 지금도 전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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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differenttastes.tistory.com BlogIcon 신어지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기작으로 <화장>을 준비 중이시라니. 역시나 하면서도 맙소사 하게 되는군요. ^^

    2007.10.10 11:43 신고
  2. Favicon of http://kr.blog.yahoo.com/itoshii00 BlogIcon 무플환영  수정/삭제  댓글쓰기

    임수정과의 러브모드... 이럴땐 정말 배우가 하고싶어요. 머 아무나 시켜주진 않지만... ^^
    당장이라도 극장가서 영화 보고 난 뒤 다시 이 글을 읽고싶어 지네요. ^^

    2007.10.10 16:11
  3. Favicon of https://lyhaz7.tistory.com BlogIcon 길위에서있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2007.10.10 17:07 신고
  4.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 또 눈물 나와 ㅠㅠ

    2007.10.10 18:01
  5.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 너무 마음 아펐어요 ..즐거운인생이랑, 행복 두편 같은날 봤는데.. 마음 동요가 심했어요 ㅋㅋ

    2007.10.10 18:02
  6. 우웅  수정/삭제  댓글쓰기

    ..................
    전왜 그닥
    슬프지안앗져;;
    그래도 잼잇엇어요~~

    2007.10.10 18:08
  7. 정말..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었어요.. 눈물 줄줄 나더라구요
    수정언니 연기 너무 잘해요~

    2007.10.10 19:01
  8. 흠..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닥 ,,,, 밍~~~~~~~~ 밍~했던 ,,,,

    2007.10.10 21:23
  9. 나두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각보다 안슬프고;;
    별루던데...
    울긴했지만;ㅅ;

    2007.10.10 22:12
  10. Favicon of https://bbcoen.tistory.com BlogIcon BB코엔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어요^^ 제가 감독님이 의도한바대로 영화를 잘 이해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흐뭇하네요 ㅋㅋ;; 트랙백 겁니다^^

    2007.10.11 11:05 신고
  11. 똘똘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구헌날 조폭에 멜로, 불치병 솔직히 볼게없다. 스크린쿼터 폐지해라

    2007.10.11 11:10

환락에 찌든 남자, 영수는 자신의 세계 안에서 환멸을 느끼고(그와 동시에 자연스레 발병한 간경변으로 인해) 시골 요양원에 내려가게 되고 그곳에서 8년째 머물며 사람들을 돌보며 동시에 힘겨운 투병생활 중인 은희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곧이은 은희의 요구로 그들은 그곳을 나와 단둘이 살게 되지만 곧바로 사소한 이유들로 갈등을 일으킨다. 계속 쌓여가는 갈등과 다시금 찾아든 도시의 유혹에 점점 영수는 은희와 현재의 생활에 실증을 느끼고 결국 그녀를 떠난다. 병든 몸을 이끌고 홀로 남겨진 은희는 어떻게 될까? 그러나 영화는 시골에 혼자 남게 된 은희를 보여주지 않고 다시 방종한 일상으로 돌아온 영수의 세계에 카메라를 비춘다. 그는 다시 돌아온 그곳에서 행복할까?


허진호의 네번째 영화 <행복>은 그가 다루어 왔던 익숙한 세계, 연애가 시작되면서 으레 걷게 되는 어떤 수순을 보여준다. 낯선 곳에서의 출발, 새로운 사랑, 사소한 갈등, 갈등이 불러일으킨 잠재적 불안으로 인한 새로운 환경과 사랑을 포기하기에 이르는 하나의 결단, 그리고 뒤늦은 후회. 하지만 나는 그저 무책임하게 이 영화의 스포일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했지만 이건 뭔가 아주 위험한 방식으로 관객과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연애담에는 이상하리만치의 어떤 속도감이 있다(이 영화의 영화적 스타일을 말하는 게 아니다). 멜로드라마에 기대하거나 보여 지는 이야기와 장면, 그리고 그것이 진행방식이 너무도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이것이 너무나도 뻔히 드러남에서 오는 어떤 불안이 영화를 보는 내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불안감 사이에는 여지없이 영수의 환영의 자리가 들어온다.


판타지를 판타지라고 말해버리는 무모함

그는 요양원이 있는 시골 버스정류장에 내리자마자, 건너편 수퍼마켓 앞에 앉아있는 은희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영수를 보자마자 알 수 없는 설렘을 드러낸다(그녀는 이때 그를 등뒤로 하고 거울을 보며 얼굴을 매만지는데 이 모습을 이후 두 사람이 처음으로 잠자리를 같이하게 되기 직전 다시 한번 보여준다). 그가 도착한 시골의 평화로운 요양원은 확실히 그가 이제까지 살아온 도시의 환경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공간이다. 모두들 새로 온 그를 환대하며 지나치리만큼 살갑게 반응한다. 이 곳에 요양온 사람들은 각자 병을 치유할 수 있으리란 믿음하나로 자신들의 몸이 언제 완쾌가 될지 모르는 불행한 일상이지만 그곳 모두는 별다른 근심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신경질적이면서도 자신의 병세에 비관적인 유일한 사람이 있다. 영수와 한 방을 쓰게 된 폐암걸린 중년남자는 처음 영수와 방을 함께 쓰는 순간부터, 그에게 알 수 없는 히스테리를 부린다(담배를 빌리는 척하면서 담배를 건네받자 담배를 부러뜨리며 "담배는 독약이야"라며 그를 몰아세운다). 그리고 몇 번의 등장 이후 중년남자는 그 방 화장실에서 목을 매고 갑자기 자살해버린다. 그런데 이상한건 그 이후이다. 영수와 은희사이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다가 그 남자가 죽어버리자 갑자기 관계가 발전하더니 사랑을 하고 관계를 가진다. 더군다나 관계를 가지는 계기가 늦은 밤, 혼자서 뜯게질(?)을 하고 있는 영수를 은희가 창밖에서 보다가 그를 놀래 키고 대뜸하는 소리가 "여기 되게 귀신 많거든요"라며 놀린 뒤, 영수는 장난어린 말투로 무서우니까 같이 있자 말한다. 얼마 전 누군가 자살한 방. 그리고 그 방에서 귀신에 대한 농담으로 오늘밤 함께 잠자리를 하자는 우회의 속삭임. 더군다나 함께 방을 쓰는 사람이 죽음으로 영수가 혼자 쓰게 됨으로써 그들이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하나의 계기(왜 2인 1실의 방에 다른 환자는 들어오지 않는가? 영수가 이 요양원에 들어온 이후 이곳을 찾는 새로운 환자는 왜 없는가?).

그리고 이 사실을 안 다른 환자들과 그곳 사람들이 이 두 사람의 사랑에 보내오는 만장일치의 축복.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어떠한 불안이나 근심이 자리할 틈이없는 세계. 여기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너무도 쉽게 이 세계가 영수의 판타지라고 승락해 버리는 무모함이 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곳을 떠나 둘만의 신혼집 비슷한 걸 차린다. 그런데 영화에서 표현되어지는 그들이 신혼집을 차리고 정확히 다음날, 처음으로 사소한 말다툼으로 인해 갈등이 일어난다. 영수가 읍내로 장을 보고 온 사이 소낙비가 내리고 은희는 영수에게 먹일 약초 풀을 비를 홀딱 맞으면서 캐고 오고 집으로 돌아온 영수는 이것을 알고 그녀를 꾸짖는다. "넌 조금만 감기걸려도 어떻게 될지 니가 더 잘 알잖아!, 애가 멍청한거니? 궁상맞은거니?" 그러자 은희는 힘없이 대꾸한다. "말 조심해" 그런데 영화 속의 영수는 순간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병세는 영수의 그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하루에도 몇 번 호흡기에 의지해야하는 상황, 언제 숨이 멎을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 또 다른 현실의 문제들을 깨달은 영수는 이 환영의 세계에서 빠져나야만 한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은희의 씬

그런데 영수가 요양원에 있을 때에는 찾아오지 않았던 친구들이 그의 시골집으로 찾아온다. 물론 영수가 돈이 궁한 나머지 친구에게 연락해 찾아온 것이지만 그 친구는 하필이면 예전에 영수의 애인과 함께 영수집에 찾아온다. 그리고 그녀가 서울로 한번 올라는 말에 서울로 잠깐동안 돌아가고, 다시 돌아간 서울에서 그는 더 이상 시골에서의 영희와의 생활을 원치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 시골로 내려가 은희에게 혜어지자고 말한다, 혹은 헤어지자는 말을 먼저 은희가 말하도록 설득시킨다. 순간, 이후 이들이 헤어지고 각자의 삶을 살아갈 때 영화를 보는 당신은 이 이별이 너무나 쉽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물론 모든 연애가 그렇지 않냐고 말할 테지만 알다시피 그녀는 몸이 많이 아픈 여자다. 더군다나 가족은커녕, 주위에 그녀를 돌봐 줄만한 이는 그 누구도 없다. 그렇다고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가는 것 또한 여의치 않을 것이다(원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떠난 그녀를 영수가 버린 사실을 그곳 사람들이 수근거릴 게 뻔한 사실이다. 더불어 사람들은 그런 영수를 비난 할 것이다). 나는 영수의 (비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그런 결정과 그에 따른 비교적 쉽게 이루어진 이별 사이에 어떠한 잉여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과 관련된 은희의 단독적인 두개의 씬이 존재한다.



첫번째는 영수가 잠깐 서울로 돌아와 있는 동안 전 애인의 집에서 다시 시골 집으로 내려가는 것에 대해서 하루 내내 고민하는 동안 교차로 시골에서의 혼자 남은 은희를 보여 줄때이다. 영수는 전 애인이 일로 나가있고 없는 동안 그녀의 집에서 종일 고민하고 있으며, 저녁이 되서야 전 애인이 집으로 돌아온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에 전 애인은 왜 받지 않냐고 묻자, 그는 그냥 둘러 넘긴다. 그리고 다음 숏은 낮에 수도가에서 설거지를 하는 은희를 보여준다. 그리고 수도꼭지가 터져 은희가 힘겨워하는 장면이다. 이어서 바로 그날 저녁에 영수에게 언제 돌아 오냐고 (전화를 받지 않는)그의 핸드폰에 음성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그녀를 보여준다. 그들은 지금 서로 다른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전화를 받지 않는 영수의 숏에서 바로 수화기를 들고 있는 은희를 보여줘야 했지만 허진호는 구태여 낮에 고장난 수도꼭지를 붙잡고 전전긍긍하다가 울상이 된 그녀의 모습을 먼저 보여준 다음 밤 장면으로 넘어갔다(그때 하필이면 터진 수도꼭지. 생각보라 집안에서 이런 일들을 처리하는 건 대개 남자들의 몫이다). 이 편집은 말이 안되지만 어쩌면 은희의 숏으로 넘어가기 전에, 전화벨 소리를 듣고 그 전화를 받을지 말지 갈등하는 사이 영수는 혼자 시골집에 남겨진 은희의 일상을 떠올린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영수의 밤에서 은희의 밤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문득, 영수의 빈자리로 힘들어 하고 있는 그녀의 낮을 생각하는 내면의 외재화가 끼어들 때 그것은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를 위한 숏이 아니라 디제시스안에 있는 영수에게 보여주기 위한 말그대로 잉여의 숏, 혹은 씬. 그런 다음 다시 시골로 내려간 영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희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왜냐하면 그들이 헤어져야 이 이야기는 성립이 된다).


두 번째는 은희가 헤어지자는 영수의 설득을 받아들이는 과정의 장면이다. 전날 영수의 헤어지자는 말에 은희는 울고불고 매달리며 자신이 더 잘하겠다고 그에게 사정하지만 이미 소용이 없다. 다음날 지쳐서 나란히 누워있는 두 사람. 그때 영수가 잠든 사이 은희는 깨어있고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숏에서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밖에 홀로 나와 있는 은희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는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다. 심장이 40%만 기능하는, 조금만 오래 걸어도 숨이 차는 그녀가 연인의 변심에 대한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뛰는 것이다. 그녀는 정말 죽을려고 했을까? 그런데 이 씬에서 한 숏은 이 영화에서 매우 생소한 방식으로 찍었다. 그녀가 집을 나와 바깥에 있는 설정 숏다음에 정면 숏을 이어지더니 이 앵글에서 그녀가 뛰자 갑자기 카메라도 같이 움직이며 후진 트래킹을 한다(그런 다음 이 영화의 본래 형식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롱숏에서 뛰어가는 그녀를 패닝한 다음 약간 왼쪽에서 픽스로 그녀가 뛰다 쓰러져 울부짖는 걸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몇 안 되는 드문 카메라 움직임이 등장하지만 이때의 움직임은 (이 영화에서)비교적 가장 역동적이며 드러나도록 촬영되었다. 카메라의 이동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인물의 정면 숏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그녀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본다. 사실 그녀의 정면 숏은 그 전에도 나온다. 놀이공원에서 기구를 타는 영수를 바라보는 그녀를 정면 바스트로 보여주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때의 그녀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위쪽 너머를 보고 있다. 갑작스럽게 정면으로 쳐다보는 주인공과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카메라의 움직임. 이때 그녀는 단순히 정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뒤편 밖의 그 누구를 응시하고 있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마음의 고통, 뒤이은 자살적 행위, 이때 은희의 시선이 바깥 누군가와 마주한 듯한 이 이상한 전시의 효과. 혹은 그 착시가 불러일으키는 누구가를 향한 그녀의 애타는 마음.

여기에 덧붙여서, 이 씬이 끝나면 다음 장면에서 은희는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무심하게 영수의 가방을 싸고 있다. 이제 서야 깨어난! 영수는 태도가 바뀐 은희에게 말한다. "미안해.." 그러자 은희는 "미안하면 나랑 살거야?" 끝내 대답하지 못하는 영수는 은희와 시골집을 등지고 그렇게 떠난다. 이때 그의 모습을 그들의 집과 함께 익스트림 롱숏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오프스크린으로 들리는 은희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영수가 프레임 오른 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거의 앞쪽까지 어느 정도 걸어 왔을 때 비로소 컷이 되고 그의 클로즈업으로 바뀌는데 오프스크린의 은희 울음소리는 그 크기가 줄지도 않은 채 그대로 들려진다. 그러니까 롱숏이었 때 그녀의 울음소리는 공간적 객관성을 갖게 되지만 숏의 사이즈가 바뀌어 클로즈업이었을 때에는 마치 영수에게만 그 소리가 들리는(혹은 아무리 듣지 않을려고 해도 들리게 되는) 심리적 주관성으로 전환이 된다. 그 순간, 그 어떤 표정도 짓지 않는 그의 얼굴을 오랫동안 보여줄때 마치 그가 서둘러 이 세계 밖으로 나가려는 듯한 어떠한 안간힘이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녀의 울음소리는 이 숏이 지속되는 한 영원히 들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지옥으로의 영겁회귀의 이야기

그런 다음 영화는 오랫동안 암전된 뒤 수개월 후 다시 서울로 돌아와 은희와의 일들을 모두 잊은 듯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고 있는 영수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의 생활은 순탄치가 않다. 더욱 더 방종한 삶을 살아가던 그는 친구와 의절하고 전 애인과는 완전히 관계가 끝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재발한 간경변으로 결국 (이번엔 정말로)병원에 입원해 말 그대로 나락에 끝자락에서 힘겹게 버티고 서있다. 영수가 그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수소문 끝에 찾아온 요양원 원장은 그를 은희가 있는 병원으로 데려가고 그들의 재회는 은희의 죽음으로 짧게 끝나고 만다.

그제 서야 자신의 삶과 그녀를 버린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게 되는 영수는 마치 이 모든 걸 다시 시작하려는 듯 은희와의 행복했던 나날을 보낸 요양원으로 돌아간다. 헌신적인 연인을 버리고 환락 세계로 돌아간 남자에게 보란 듯이 찾아온 불행(그는 이 환락의 세계 안에 안주해 있으면서도 전 애인에게 "넌 이렇게 사는 게 즐겁냐?"라고 묻는다). 그리고 그런 그를 다시 만났지만 여전히 따뜻한 미소를 보내주는 여자. 그런데 그 미소는 뭔가 석연치 않다. 얼마 안 있으면 곧 죽을 사람. 자신을 내팽겨친 남자의 처참한 몰골. 이때 그녀의 미소의 의미가 그를 다시 만났다는 것의 긍정이 아니라 마치, 그의 불행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자의 미소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그러니까 관객에게 서울로 다시 돌아간 영수의 삶을 보여줄때 그것이 자신을 버린 남자의 불행을 생각하는 은희의 환상이라면 어떻게 할 텐가.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라고 생각한다.



영수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 뒤 그의 생활을 영화가 보여줄 때 나는 이상하게도 영수의 주관적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라는 느낌을 받지 못 하였다. 그가 은희를 떠남으로써 마치 예정이라도 된 듯이 그의 불행을 영화가 차례로 보여줄때 그것이 누구가의 의해 펼쳐내 보여진다라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영수가 자신의 비릿한 삶의 현실을 거울에 비춰지는 자신의 얼굴을 통해 자각하는 장면에서도 그의 주관적 시점에 의해 그가 보는 자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가 45도 각도의 이동숏으로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는 영수를 거울 속 그의 얼굴과 함께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 왜 허진호는 이미 영화시작 앞에 자신의 세계에서 끝장 다본 남자를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하는가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지옥으로의 영겁회귀. 사실 그는 서울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갔어도 되었다. 그런데 그는 굳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어떻게 보면)불행을 자초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본래자리에 지키고 있는 사람들(친구와 전 애인)은 전혀 바뀐 게 없는데 왜 그는 그 세계가 자신의 빈자리로 바뀌어졌다고 착각하는가? 그리고 그는 왜 그곳에서 철저하게 망가지는가? 그러니까 두 사람이 헤어진 이후 영화는 어떤 서사적 잉여안에 영수를 자꾸만 가두려고 하고, 이때 그들이 헤어진 이후의 서사와 그들이 다시 만난 이후의 서사 사이의 물리적인 시간의 지연, 생략 혹은 건너뛰기를 초래한다.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은 바로 이 영화의 배경인 계절의 순차적 방식이다.
 
분명 그들이 헤어지는 부분의 계절은 늦가을 혹은 초겨울이다. 그리고 영화는 다음해로 점핑하여 도시에서 생활하는 영수를 보여 줄때 서울의 계절은 여름이고, 다시 가을을 건너뛰어 그들이 병실에서 재회하는 때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만일 우리가 영화에서 영수가 다시 돌아간 서울에서의 시퀸스를 제거한다면 마지막 그들의 만나는 씬은 그냥 영수가 시골집에서 나오고 몇 일 뒤에 나오는 씬으로 붙여도 무방하다고 보면 어떻겠는가(여기서 영수의 얼굴을 엉망이지만 그가 입고 있는 옷은 그 앞에 영수가 잠깐 서울로 갔다가 시골로 돌아왔을 때 입었던 옷과 같은 옷이라는 걸 기억해 주길 바란다).


절망적인 마지막 숏

그렇게 놓고 보면 이상하게 서사 바깥에서 독립적으로 있는, 서울로 다시 돌아온 영수는 혼자 참으로 혹독한 여름을 난 셈이다. 은희와 행복했던 그 햇살 가득한 여름과는 다른 잔인한 햇살이 가득 찬. 그리고 그 햇살에 그는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병원 건물 앞에서 쭈그려 앉아있는 영수).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영수는 요양원 원장을 다시 만나게 된다. 카메라는 미디움-롱 사이즈의 투숏 안에 그들을 잡고 있는데 이때 화면 안의 음영이 이 두 사람의 공간을 정확하게 반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니까 곧이어 그녀가 은희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데려다주는 씬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이 숏이 서사 바깥에 있는 영수를 다시 서사 안으로 개입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면 어떡하겠는가. 요양원에서 은희와의 생활이 영수의 환영이라면 그 대구로 다시 서울로 돌아온 영수의 상황이라면. 마치 디제시스 밖에서 영수와 은희, 서로가 상대방의 세계를 바라보고 그것이 환영이라고 말하며 위태로운 경계 긋기를 이어갈 때 그 사이에서 애처롭게 멜로드라마의 구조를 이어가는 그들을 우리는 바라보아야 한다.

그때 이제껏 영화를 보고 있었던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나? 결국 관객이 이 통속적인 이야기를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를 놓고 벌이는 허진호가 제안하는 게임의 방식에 관객은 자꾸만 무료해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영수는 다시 요양원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미 그녀가 죽고 없는 그 곳은 세상과 동떨어진 금욕과 감금의 공간이다. 마치 마지막 결말만 놓고 보면 리베트와 올리베이라의 근작들이 떠올려 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비약인 것이 이건 그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시키기 위한 허진호의 영화이다. 타락한 남자가 지고지순한 사랑을 저버린 비통한 사연. 그가 정말 낯선 곳에서 다시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사랑할 수 있을까? 정말 (관객으로 하여금 평등하게 하기위해)영화는 이 마지막으로 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눈바람이 날리고 어두운 구름을 배경으로 한 요양원으로 영수가 들어가는 모습이 이 영화의 마지막 숏이다. 참으로 절망적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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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마음으로 느끼는 그 무엇

필진 리뷰 2007.09.28 15:09 Posted by woodyh98
2007.09.26


술과 여자로 인해 방탕한 생활을 하던 영수는 자신의 사업이 망하면서 심한 간경변까지 앓게 된다. 이로 인해 사귀던 애인하고도 헤어지자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유학을 간다고 속이고는 한 시골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다. 자포자기 같은 심정의 영수는 폐 기능 이상 환자면서 요양원의 살림꾼 노릇을 하는 은희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요양원 사람들과 은희로부터 점점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영수. 결국은 자신의 방탕한 생활을 접고 은희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하지만...

소수의 단점이 다수의 장점을 덮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소수의 장점이 다수의 단점을 덮는 영화도 있다. 허진호 감독의 신작 [행복]은 후자에 가까운 영화다. 엄밀히 말해서 이 영화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영화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단점은 지나친 이분법적 사고라고 할 것인데, 즉 화려한 도시의 문화와 소박한 시골 풍경의 대비, 자본이 넘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대비 등이 그것이다. 이 둘 중에 무엇이 더 소중하냐 라고 묻는 다면 그것은 진부한 물음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나눔의 근거가 되는 남자 주인공의 삶이 극단으로 비쳐지면서 진부하고 통속적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런 만큼 여자 주인공의 삶이 지고 지순하고 순종적인 면이 강해 보이는 것도 이런 단순한 이분법적 상황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취향이나 혹은 영화의 이야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있음직한 요양원과 요양원을 둘러싼 산과 들, 두 주인공이 살게 되는 시골집을 둘러싼 자연들이 그리 광활하거나 혹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 인물들에 집중하고 싶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영화가 큰 스크린에서 보여진다는 것과. [봄날은 간다]에서 보여주었던 갈대밭의 풍경을 생각한다면 다소 아쉬운 부분.

다만, 이들 등장 인물들의 설정들, 그러니까 여 주인공 은희는 폐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이며 남 주인공 영수 역시 심한 간경변 상태다. 그들이 머무는 공간 즉 시골의 요양원의 사람들은 폐암, 심부전증등 심한 병에 걸린 사람들이며 이런 그들이 보여주는 지극히 낙천적인 생활태도-그렇게 삶을 더 살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찰나의 행복감을 맛 볼 수 있는(몰래 술을 마신다거나 혹은 담배를 피운다거나 자기 전에 라면을 끓여 먹는다거나) 행동은 감독이 진정한 행복의 가치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와 닿는다.

즉 어떤 행동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아닌 순수하게 마음으로 느낄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 이것이 남녀 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려서 서로 사랑하다 죽는 이른바 억지 눈물을 강요하는 삼류 드라마와의 차별점이며, 동시에 행복이란 삶을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감독의 전언이다. 여기에 황정민과 임수정의 뛰어난 연기는 영화에 현실적인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중요한 요소. 특히 임수정의 연기는 유망주에서 벗어나 괄목할 만한 모습을 보여준 다는 점에서 기대 이상이라 할 만하다. 그녀의 연기로 인해 다소 신파적이고 지고지순한 은희의 캐릭터가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현실감을 획득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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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6.23 01:57

멜로 서사로 회귀한 허진호

필진 리뷰 2007.09.14 11:41 Posted by woodyh98
2007.09.13


[화양연화]의 차우는 앙코르와트 사원 구멍에 무언가를 말한 후 진흙으로 막는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밥은 샬롯에게 귓속말로 말하고 샬롯은 웃는다.
그러나 [외출]의 마지막, 인수와 서영은 차 안에서 서로 소통하고 공감한다.


들어가는 말.

요컨대 허진호 감독의 세 번째 작품 [외출]은 허진호식 사랑의 전범을 뒤집는 영화다. 그는 이전 작품들, 즉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는 죽음을 앞둔 남자에게 새로운 사랑의 탄생을 선사하면서 완성되지 않은 사랑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알려주었고 [봄날은 간다]에서는 시간을 개입시키면서 사랑의 담론을 탈신화화 작업으로 풀어내는 놀라운 기운을 보여줬다. 그러나 [외출]은 한마디로 끔찍한 작품이다.

영화는 전반에 걸쳐 왕가위의 [화양연화_ In The Mood For Love]와 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_ Lost In Translation] 두 작품 중간에 다리를 걸친 어정쩡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좀더 냉혹하게 말하자면, [외출]은 [화양연화]의 형식을 답습하고 변형시키는데 만 몰두한 영화라고 규정지을 수밖에 없다. 아마도 감독은 마지막 까지 고민했을지 모른다.

인수와 서영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어쩌면 이 부분만 [화양연화]로부터 자유로웠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따라서 이 비평은 [외출]이 어떤 방식으로 [화양연화]의 관습과 형식을 답습했고 어떻게 변형시켰는지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또한, 오는 10월에 개봉 예정인 허진호의 신작 [행복]과의 만남을 앞둔 시점에서 전작의 오류를 복기해보려는 목적이 있기도 하다.



 

하나. 낯선 장소

[외출]은 교통사고를 당한 불륜남녀의 배우자가 병원에서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자는 조명감독 인수(배용준 분)이고 여자는 평범한 주부인 서영(손예진 분)이다. (영화에서는 분명 서영이 자신의 입으로 살림을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영화사이트마다 그녀의 직업을 중학교 교사로 표기하고 있음은 황당한 일이다.) 그 둘은 삼척이라는, 병원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만나게 된다. 또한 피해자의 장례식이 있는 낯선 마을에도 함께 하고 있다.

[화양연화]속 차우(양조위 분)와 리첸(장만옥 분) 역시 각각 낯선 공간으로 이사를 오면서 둘의 관계가 시작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것만으로 두 영화의 친연성을 말하는 주장하는 것은 억지일 것이다. 공간이란 사람의 감정을 낯설게도 하고 익숙하게도 만든다. 비록 처음만난 사이일지라도 공간이 주는 의미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낯선 공간에서 만난 남녀를 지배하고 그들을 환기시키는 것은 그들이 놓여진 공간이 갖는 상징성이다.

두 영화 속 주인공이 낯선 장소에서 서로를 만난다는 것을 동질성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후에 펼쳐지는 내러티브 방식까지 감안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화양연화]의 남녀와 [외출]의 남녀는 동일한 방식으로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면서 스토리를 끌어간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카메라와 미장센, 음악까지 모두 한 패가 되어 협조하고 담합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두 영화 모두 소통불능과 거리두기를 낯선 공간 안에 집어넣음으로써 사랑의 서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둘. 소통의 부재

리첸과 차우는 각각 자신들의 배우자와 소통의 부재를 겪는 사람들이다. 영화 속 그들의 배우자는 목소리만 들려지거나 뒷모습으로 표현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외출]의 두 남녀 역시 배우자와의 오랜 시간 소통불능을 겪어온 사람들이다.

인수와 인영의 배우자들은 서로 문자메시지를 통해 교류해왔고, 대학서클에서부터 소통해온 관계였다. 그들은 사고 이전부터 수 없이 만나 밀회를 즐겨왔을 것이다. 영화는 이들의 밀회장면을 찍은 모습만 보여줄 뿐, 인수와 서영이 각자의 배우자와 행복했던 시절의 어떤 단편도 플래시백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이 배우자와 오랜 시간동안 소통의 불능을 겪어왔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소통의 불능은 거리두기로 이어진다. [화양연화]에서 리첸과 차우는 상대 배우자의 역할을 연기하면서 감정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외출]의 인수와 서영 역시 한 동안을 감정의 절제를 통해서 수위조절을 하려 애쓴다. 병원과 모텔에서 수 없이 마주치지만 눈인사를 주고받는 정도에서 그칠 뿐이다.

그러나 이글거리는 욕망은 애초에 예견된 대로 변곡점의 등장만을 기다리는 듯 하다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서영은 횟집에서 본색을 드러내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 그냥 사귈래요?” “복수하게요” 이렇듯 [화양연화]가 욕망을 연기하고 앙코르와트에 진흙으로 막았던데 반해 [외출]은 욕망을 연기하지 않고 당당하게 현재화시킨다는 차별화를 통해서 결말을 미리 암시하고 있다.


셋. 미장센 또는 벽

[화양연화]에서의 미장센은 등장인물을 한쪽 공간에 배치시키는 의도적인 프레임 안에 있었다. 다시 말해서 등장인물 뒤에는 벽이 있었다는 말이다. 벽을 배경으로 한 미장센으로 인해 인물들의 고독은 더욱 깊게 다가왔고 이때 벽은 소통하기 힘든 대상의 은유로 사용되었다. 마찬가지로 [외출]에서도 비슷한 미장센을 다시 만나게 된다. 인수와 서영이 처음 만나는 장면을 보면 그들은 수술실 벽을 배경으로 나란히 앉아있다.

또한 식물인간인 채로 누워있는 각기 배우자들 병상에 앉아 있는 장면이 거듭나오고, 일반병동으로 옮겨진 이후에도 계속된다. 또한 피해자에게 조문을 다녀오던 날, 서영은 들판을 바라보며 통곡한다. 인수 역시 한쪽 곁에 서있을 뿐이다. 낯설고 생경한 땅, 삼척이 주는 모든 기운들은 그들을 더욱 고립되고 소통불능의 상태로 몰고 가고 있다. 벽과 말 못하는 중환자와 낯선 땅이 주는 의미는 동일하게 사용된다. [화양연화]가 이러한 미장센을 통해 욕망의 연기를 가져왔다면, [외출]은 정반대로 기능하고 있다. 즉, 소통불능의 절박한 상황에서 간절한 소통의 욕망을 환기시키면서 둘의 관계를 급진전하도록 개입하는 장치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넷. 카메라 기법

[외출]이 [화양연화]의 영화작법을 차용한 흔적이 가장 농후하게 나타나는 것은 카메라 기법이다. [화양연화]에서 카메라는 편심초점_ Shallow Focus를 (두 명의 등장인물이 있는 경우 한쪽은 분명한 클로즈업을 사용하고 한쪽은 흐리게 처리하는 방식) 번갈아 사용하면서 소통의 부재와 욕망을 표현했다. 또한 남녀가 나란히 있는 장면에서도 수평적 위치를 고수하는 카메라는 인물의 심리를 대리하면서 완전한 소통의 불가능을 환기시켰다.

[외출]에서 카메라 역시 편심초점을 사용하면서 그들의 소통부재를 표현하고 있다. 인수와 서영이 가까워지기 이전까지는 계속 편심초점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들이 욕망을 실현한 이후에는 오히려 수평위치에서 촬영된 장면이 대부분이다. 이것 역시 그들의 불안한 심리상태에서 오는 불완전한 소통을 읽게 만드는 카메라 연출방식이다.


다섯. 욕망의 연기(延期)와 사랑의 서사

[화양연화]에서 리첸과 차우는 호텔 2046호에서 함께 무협소설을 쓰며 삶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결국 그들은 욕망을 연기하고 사랑의 서사를 탈신화화 시켜버린다. 기존 사랑의 서사가 무엇인가.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장애물을 만나지만 이를 극복하고 사랑을 완성하는 관습을 통해서 영화는 사랑의 서사를 낭만적이고 극적으로 그려왔다. 대체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멜로드라마는 이러한 서사적 관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왕가위를 비롯한 몇몇 감독들은 사랑서사의 탈 신화 작업을 계속해왔다. 이것은 허진호의 이전 작품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었다. 즉 완성되지 않는 사랑, 장애에 막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주인공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영화는 사랑이 변할 수 있음을 환기시켜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완성되지 못한 사랑은 좌절된 사랑이 아닌, 연기된 사랑으로 해석될 수 있음도 일깨워주었다. 그러하기에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말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는 대사는 참으로 어리석은 소년의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그것은 낭만적 사랑의 신화를 믿는 순진한 청년의 질문이다. 한국영화 속 어린남자는 여자에게 부담스런 존재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당대의 사랑은 변한다. 변하기 때문에, 절정에 순간, 손에서 미끄러지기 때문에 더욱 매혹적인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떨어지는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운명을 가진 이들은 사랑의 변심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사랑이 목마르다고 외치고 있다.


여섯. 신화로의 회귀 규명과 배용준

그러나 [외출]에서 허진호는 전작에서 보여준 탈신화화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마지막까지 고집하던 방식을 영화 엔딩에 이르면 슬그머니 내려놓으면서 항복을 하고 만다. 그렇다면 사랑의 담론을 풀어내는 방식이 탈 신화에서 신화서사로 회귀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감독만이 알 수 있는 일이겠으나, 명백한 것은 주인공인 배용준을 배제하고 이 숙제를 풀기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배용준이라는 연기자는 영화와는 썩 적합지 않은 인물이다. 대사와 동선에서 영화배우보다는 탤런트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는 배우라기보다는 스타에 가까운 인물이다. 게다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부드럽고 달콤한 미소와는 거리가 먼 내면의 연기가 필요했던 이 영화에서, 사랑과 증오와 분노와 욕망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기에는 각인된 그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물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하는 흔적은 곳곳에 보이지만 오히려 감정의 과잉을 낳으면서 내러티브가 엉성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또한 이유 없이 롱 테이크로 처리해야 하는 장면이 많아지면서 단발로 튀어나오는 어정쩡한 대사의 반복은 감정의 연결고리가 끊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지나치게 긴 호흡을 감당하기에는 배용준과 손예진의 연기력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아니 애초에 캐스팅미스라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게다가 많지 않은 대사들 중 결정적 대사들을 의미 없는 장면에서 심각하게 쏟아냄으로써 스스로 스포일러를 유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서울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이 강변을 걷던 장면을 보자. 여기서 서영은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라고 말하면서 마치 둘의 관계가 씁쓸하게 끝날 것처럼 암시하지만, 봄이 오고 화분을 산 그녀는 인수에게 화초를 건네는 장면에서 “이거 죽이면 안 돼요” 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이 인수에게 있음을 전달함과 동시에 둘의 관계가 허망하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만들고 있다.

아마도 배용준의 팬들은 인수가 두 번 씩이나 같은 아픔을 겪게 되길 원치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인수와 서영이 최종승자가 되어 서영의 말대로 달콤한 복수극에 성공하기를 원했을 수 도 있다. 하지만 95%를 지배한 드라마구조를 한 순간에 뒤집는 엔딩 신은 어떤 이유로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것이 허진호식 사랑의 담론이라면 더욱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외출]은 강원도 삼척이라는 바닷가의 외진 병원과 모텔을 오가면서 변두리가 보여주는 느낌을 담아내고 있다. 불륜의 배우자를 둔 남녀의 사랑을 표현함에 있어 첫사랑의 떨림 같은 순수함을 배가시키기 위해서였다면 오히려 도회지보다는 변두리의 정경이 설득력 있을 수 있다. 그러나 80년대의 재현방식을 통해서 21세기 코드를 풀어내려 했다는 것은 전혀 허진호 답지 않거니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영화의 배경은 갓등이 있는 오래된 모텔의 객실, 메모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1980년대 인테리어 방식을 차용한 ‘자전거도둑’이라는 카페, 죽서루 근방의 횟집 등이 주 무대이지만 그들의 화법은 80년대 대학미팅에서 오가던 대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묻고 대답하고 다시 같은 질문을 상대에게 묻는 반복질문 방식을 도입하면서 마치 사랑에 눈뜬 초심자처럼 인물들을 포장시켜 놓는 것이다. 체로키 지프로 이동하고 핸드폰으로 소통하는 시대를 사는 그들에게 가슴 떨리는 사랑을 빙자한 어설픈 화법은 영화를 완전히 망쳐버리고 말았다. 차라리 대사가 없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영화이다. 분명, 대사가 불필요한 영화였다.

나가는 말.

낭만적 사랑이던 불륜의 사랑이던 금기된 사랑이던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허진호는 [봄날은 간다]를 통해서 ‘낭만적 사랑은 허구’라고 외쳤다. 그런 그가, 전작의 상처를 이기고 새로운 외출을 시도한 [외출]속 주인공을 통해서 ‘이런 사랑도 있다’라고 설파한다.


 봄 눈
      정 호 승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다른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지 말라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절벽 위를 무릎으로 걸어가지 말라
봄눈이 내리는 날
내 그대의 따뜻한 집이 되리니
그대 가슴의 무덤을 열고
봄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리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였다고
올해도 봄눈으로 내리는 나의 사랑아


하지만 이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을 애써 정당화하려는 우를 범해버렸다. 어차피 극복될 수밖에 없는 장애요소로 인수의 장인을 등장시키고, 아내를 병상에서 일으켜 세우며 서영의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낸다. 게다가 영화의 영어제목(April snow)처럼 4월에 눈을 내리게 하더니, 그 둘을 다시 강원도행 지프 속으로 밀어 넣는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됐다. 장애와 난관을 극복하고 사랑의 완성을 이루기에는 그들의 처한 현실이 너무도 절박했고 소통의 필요성과 욕망의 해갈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것은 거의 없었다. 둘만 잘 하면 그만인 환경 아니었던가. [외출]은 갖은 카메라 기법을 동원해 한껏 긴 호흡으로 감정의 순간을 포착하려 애쓴 것 말고는 도무지 생각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배용준에게 치중된 장면 위로 의미 없는 대사가 흩날리는 ‘이발소 그림’ 같은 영화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허진호 감독의 차기작품을 기대하는 것은 [봄날은 간다]에서 보여준 사랑의 담론이 한 귀퉁이서나마 여전히 가쁜 숨을 내뱉고 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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