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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20 숨은 그림 찾기, 홍대문화와 한국영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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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몇 년간 뉴욕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삭막한 도시에서 자발적 외톨이가 되어가던 내게 외로움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무료함이었다. 천성이 나대거나 변죽이 좋지 못한 탓에 어두워지기가 무섭게 숙소로 들어가 하릴없이 밤 시간을 소비하였으니, 낙이라고는 TV를 켜놓고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화를 보는 일이 전부였다. 말도 어눌하고 지리도 어두운 처지에 무료함을 해소하기위한 몸부림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여겼던 까닭이다. 그러기를 몇 개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무료함을 참지 못해 겁도 없이 뉴욕의 밤거리를 쏘다녔는데, 마치 그것은 <택시 드라이버>의 불면증환자 트래비스가 뉴욕의 뒷골목을 배회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우울과 몽상에 젖어 한 참을 걷다가 낯선 곳에 다다랐음을 깨닫고는 부리나케 아파트로 돌아오곤 했다. 오래지않아 한국에서도 뉴욕의 한 구석과 빼닮아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LP를 틀어주던 재즈 바 ‘블루 노트’를 알게 된 것을 계기로,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발걸음을 한(데킬라와 카멜담배와 존 콜트레인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던) 홍대거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뉴욕의 풍경을 서울에서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별로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복제가 아닌 필사에 가까웠다. 상상력과 창의성이 실종된 ‘따라 하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얘기다. 정작 내가 놀랐던 이유는 문화의 권력지향성 때문이었다. 즉 홍대문화의 이면에 드리운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의 그림자를 보았던 것이다.

하나의 트렌드가 창궐하며 신드롬을 일으킬 때면, 이를 구실 삼은 한탕주의 문화정책과 맞물리면서 그것은 문화 권력으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문화와 권력의 이질적 결합은 언제나 이러한 수순을 밟으면서 이데올로기가 되곤 했다. 마찬가지로 홍대문화 역시 저항과 자유의 산실이라는 미명하에 언더그라운드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등에 업고는 자본주의와 합궁하여 거창한 담론의 주체가 되었다. 젊은이들의 안식처이자 예술가들의 피난처로 십 수 년 동안 각광받아 온 홍대가 그 자체로 거대한 기호의 총합으로 기능할 수 있었던 데는 세계화와 문화강국이라는 정치사회적 이슈도 한 몫 했다. 때문에 문화 혹은 대중문화가 지배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은 당연한 일일 터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대중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문화상품이고, 오로지 재미를 구하려는 소비자와 이를 빌미삼아 활개치는 자본의 득세가 빚어낸 오늘의 대중문화이다. 이것은 영화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무엇보다 스크린은 현실의 문제를 반영함으로써 존재하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까지, 정확히는 <쉬리>가 당도하기 전까지 한국영화는 할리우드를 모방하는 데 진력을 다해왔다. 한국영화도 할리우드를 (거의 똑같이) 따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영화 <쉬리>이후, 관객들은 속칭 한국형블록버스터의 범람을 목도하게 된다. 세계화의 부산물로써의 홍대와 청담동문화가 주류대중문화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던 동안 규모의 경제학이 영화산업으로 전이되어 만들어낸 기형적 성장모형은 흥행지상주의라는 괴물을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홍대도 변했고 한국영화도 변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영화의 침체만큼이나 홍대문화가 눈에 띄게 쇠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고나면 업소 간판이 바뀌는 것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그 많던 언더그라운드 클럽들은 몇몇만 명맥을 유지하기 급급한 실정이다. 이처럼 홍대문화의 쇠락에서 위기의 한국영화산업을 찾아내는 것은 대단한 일이 못된다. 소위 된다하는 카페나 클럽을 열기위해 줄지어 달려갔던 이들은 그 옛날 서부를 향했던 골드러시 행렬을 떠오르게 하고, 하나 둘씩 발을 빼는 모습에서 한국영화자본의 이탈이 오버 랩 되기 때문이다. 자본을 축적한 예술가가 홍대문화에 불을 다 지피기도 전에 예술에 문외한인 자본가의 탐욕이 침투해버린 탓이다. 다만 한국영화가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지금에도 홍대가 다양한 문화부산물들을 받아들이며 실험중이라는 점은 자못 흥미롭다.

생산자와 수용자가 대중문화라는 자장 안에 들어서는 순간 그것은 키치가 되고 컬트가 되며 또 스타일이 되기도 한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자본과 사적욕망의 결합이 주인처럼 버티고 있기 마련이다. 개별적 대중문화란 경제적 의미에서 완성된 상품이지만 문화적 의미에서는 끝없는 의미의 재창출이 시도되어야 할 미완의 그 무엇이다. 한국영화가 혼란의 시기를 맞은 이유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 상품으로서의 잉여가치에만 전력투구함으로써 문화 예술적 의미와 시대적 소임에 소홀히 한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경제적 의미가 퇴색해지기 시작한 홍대문화는 한국영화산업의 시금석이 되기 충분해 보인다. 그러니까 잉여가치의 하락을 맞았을지언정 문화적 의미를 재창출하려는 노력이 계속되는 한 홍대문화는 여전히 유효할 터이고, 어느 즈음엔가 한국영화계가 주목할 만한 지표가 될 수 도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현실과 꿈이 도무지 구분되지 않아 스크린 속으로 침잠하기를 밥 먹듯 한 적이 있다면, 하룻밤 동안이나마 화려한 뒷골목의 우울증을 맞보고 싶다면, 당장이라도 홍대로 나가볼 일이다. 어둠이 찾아들고 알아듣기 힘든 언어들과 메케한 땀 냄새와 화장품냄새가 한데 뒤엉켜 무국적 진공지대가 되어버린 밤의 뒷골목으로 말이다. 갖은 멋을 부리고는 방금 이곳에 도착한, 한눈에 보아도 작심하고 나온듯한 어설픈 소녀로부터 소위 홍대유전자를 타고난 듯한 스타일리시한 숙녀들의 아찔한 옷차림까지, 이정도 쯤이야 지겹도록 보아왔기에 아무 감흥 없이 흥정에만 몰두하는 장사치부터 말만한 계집애들의 봉곳한 가슴에 넋을 잃고는 힐끔힐끔 욕망을 곁눈질해대는 어쩌다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넥타이부대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군상들을 살펴볼 일이다. 어둠사이로 빚어지는 그들의 몸짓과 표정은 영화보다 액티브하고 애절하며 또 드라마틱하다. 그것은 영화의 또 다른 형상이다. 기의(記意)의 소비에서 기표(記表)의 소비로 뒤바뀐 영화적 이미지를 만날 수 있는 곳, 기표들의 유희가 넘실대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천국인 홍대를 지척에 둔 곳에 내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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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BB마인드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 얘길 하시는지...
    뉴욕-홍대-한국영화... 연결이 전혀 납득되지 않는군요.

    2008.10.2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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