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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05 <바보> 김정권 감독 "차태현, 이 꽉 깨물었다"


네티즌들의 기대를 모았던 <바보>가 개봉 첫 주 4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순항중이다.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의 평가와 달리 관객들에게 후한 점수를 받으며 롱런의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강풀의 원작 만화와의 숱한 비교에 시달렸지만 결국 이야기와 바보 승룡이(차태현)이란 캐릭터의 힘에 관객들은 점수를 준 것이다.

그래서 김정권 감독을 만나봤다. 인터뷰는 일찌감치 잡혔지만 뚜껑을 열어보고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 본 뒤, 속내를 들어보고 싶었다. 기대보다는 “약간은 아쉽다”는 김정권 감독은 2년 만의 개봉 뒤 빡빡한 무대인사 일정이 그리 힘들지 만은 않아 보였다. 그건 상업 영화  감독으로서 관객들의 사랑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리라.

바보 승룡이가 첫사랑 지호(하지원)과 동생 지인(박하선)이, 그리고 친구 상수(박희순)과 그의 애인 희영(박그리나)를 변화시키는 이야기 <바보>는 그의 전작 <동감>과 <화성으로 간 사나이>(이하 <화성>)의 아련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다. 멜로 전문 감독을 꿈꾸는 김정권 감독이 털어놓은 <바보>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 그리고 한국 영화판의 현주소에 대한 솔직한 심경은 이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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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인터뷰가 늦었는데 강풀 작가랑 배우들도 만났거든요. 또 개봉 결과도 궁금했고요.
김: 그럼 성적 나쁘면 인터뷰 안 하려고 그랬구나?(웃음).

하: 오늘 성적이 좋던데요. 40만 조금 넘었더라고요. 근데 <추격자>가 워낙 세서.
김: 집계 안 된 거까지 43만이에요. <추격자>는 워낙 1년에 한, 두 편 나오는 영화니까요.

하: 스코어 보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김: 워낙 원작 자체가 사랑을 받았지만 우리 기대보다는 솔직히 못해요. 하지만 작년 한국영화 110편중에 그나마 본전 찾은 게 10편밖에 안되니까 우리는 (개봉 첫 주에) 무난하게 넘긴 거 같긴 하고 감사한 거죠.

하: 손익분기점은 150만 정도 인가요? 
김: 네. 그 정도 될 거 같아요. 사실 3월 달에 큰 작품이 없지만 <추격자>는 계속 잘 될 거 같고요. 사실 평론가들에게는 좋은 평을 못 들어서 아쉬워요. 리뷰를 보면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 같이 작품의 본질적인 면을 건드리기보다 (원작과의) 퍼즐 맞추기, 숨은그림찾기처럼 왜곡이 되다 보니 조금 속상해요. 걱정도 많이 했어요. 관객들 또한 그렇게 본다면 자칫 잘못하면 10만도 안 드는 거 아니냐며. 그나마 다행입니다(웃음).

하: 하지원씨가 무대 인사를 열심히 돌았다는 기사도 봤어요. 또 차태현씨가 워낙 홍보는 열심히 하는 배우잖아요.
김: 자기가 열심히 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태현이 영화고 그리고 <엽기적인 그녀> 말고 <바보> 10번째 작품인데 그동안 많이 소진된 면이 있었죠. 저부터도 이미지상으로 나쁘지 않은데 비슷한 영화만 해온다는 식상함이 있었어요. 또 자기 스스로 위기라고 생각하고 이빨 꽉 깨물고 연기를 했어요. 기존과 다른 변신, 변화가 있어서 스스로도 만족하는 거 같아요. 또 관객들 만났을 때 영화 재미없으면 관객들은 그냥 나가버리거든요. 많이들 호응해 주니까 고무돼 있는 거 같긴 해요. 100명이 다 좋아할 수 없지만 10명 중에 8명 정도는 만족하는 거 같아요. 사실 <바보>라는 영화에 기대를 많이 안 한 거 같긴 해요. 개봉이 너무 늦어지고 <아파트>에 데인 관객들도 있고.

하: 10명 중에 8이면 포털 사이트에 관객 평점이랑 비슷하네요. 8.5 정도 나왔던데.
김: 그러게 좀 넘는데요(일동 웃음). (영화사 직원을 보며)우리 알바 쓴 거 아냐?

하: 요즘은 알바를 쓴다 하더라도 대세에 지장을 주지는 못하는 거 같아요. 재미있는 영화는 관객들이 먼저 알아보니까요. 그나저나 개봉이 늦어져서 속 많이 끓였죠? <바보>의 개봉 지연은 영화계의 미스터리였거든요.
김: 그렇죠, 뭐. 솔직하게 말하자면 돈이 없었던 거죠. 준비하던 영화가 있었는데 와이어투와이어란 제작사에서 ‘이런 만화가 있으니 한 번 봐 주십시오’라며 섭외가 왔어요. 처음엔 거절했는데 <바보>를 보면서 창피할 정도로 많이 울었어요. 또 전작인 <화성>이 전국 12만 정도에서 끝날 정도로 안 돼서 당시의 그 패닉 상태, 공허한 마음에서 보니까 배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감독이 내정되어 있느냐고 전화를 걸었어요. 유명한 감독을 포함해 몇몇 거론되고 있었는데 그 분들보다 제가 충분히 잘 하겠더라고요. 원작의 묘미나 맛도 잘 살릴 수 있겠다 싶어서 좀 매달렸죠. ‘나한테 달라, 잘 해 보겠다’

하: 그때 시나리오 초고는 완성된 상태였나요?
김: 다른 작가가 초고를 마무리한 상태였는데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진 않았어요.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였거든요. 그래서 솔직히 화가 많이 났죠. 원작은 남녀간의 멜로보다 가족이야기였는데…… 가장 큰 중심은 승룡이가 가장 소중한 동생한테 미움을 받으면서도 결국에는 끝까지 동생을 위하고 살았던 것인데 그런 느낌이 없는 거예요. 또 지호 경우도 승룡이와의 일을 겪고 힘을 얻어서 마지막에 피아노를 치는 거잖아요. 근데 초고에는 고모의 권유로 피아노 학원에 나가서 피아노를 치게 돼요. 그럼 이야기가 되겠냐 말이죠. 그래서 화가 나서 첫날 첫 미팅 자리에서 많이 싸웠어요. 술자리에서 작가와도 다투고 강풀은 옆에 취해있고. 강풀은 “형님이 알아서 하세요, 제 손은 떠났고 어차피 영화 만들 사람은 감독이니까”라고 했죠.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작가에게 제가 만화에서 느꼈던 걸 다 얘기 드린 뒤에 의기투합이 됐어요. 원작에 충실하자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어요.

하: 그래도 만화에서 지금까지의 시나리오가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을 텐데요.
김: 반면 심지어 만화와 대사까지 똑같다는 말들이 있어요. 아니 강풀 그 분이 <괴물2> 시나리오까지 쓰는 분이잖아요(웃음). 다들 기대하는 상황인데다 단순히 만화가라고 할 수 없고. 또 만화 속 지인이나 반복되는 승룡이의 대사보다 더 좋은 게 있다면 누가 좀 제시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것만 가지고 1년을 고민을 했어요. 저도 <동감>부터 남이 안 하는 것, 판타지 같은 거 좋아했거든요. 상투적인 거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이고. <아파트> 안병기 감독 경우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욕심이 있었을 거예요. 사실 우리 회사도 원작을 산 게 있어요. <세 자매 탐정단>이라고 일본의 국민 작가가 쓴 작품인데 ‘고단샤’라는 출판사가 판권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일본 출판업계 1등 출판사인데 작가들 매니지먼트를 해요. 판권만 비싸게 파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작가를 지키기 위해서 매니지먼트를 하는 거죠. 우리도 이제 소설이나 만화 원작을 토대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분명히 알고 그런 시스템부터 갖춰야 해요.

하: 간담회때 차태현씨가 DVD의 디렉터스 컷 얘기도 하던데 아쉬운 부분이 있을 법해요.
김: 분명 아쉬운 부분이 있죠. 상수와 희영이와의 관계들, 상수가 승룡이를 위해서 한 행돌을 찍어 놨는데 분명 감독 버전에는 넣어야죠. 원작에서 봤던 느낌들, 그러나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장면들을 넣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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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얼마 전에 박희순 씨 인터뷰했었는데 큰 선물이 되겠는데요(웃음). 박희순씨 성격상 대 놓고 얘기도 못했을 거 같은데.
김: 불만이 많죠? 전화도 안 받던데요?(웃음) 그래도 이야기는 또 다 해요. 은근히 재미있는 사람이라.

하: 상수 부분이 분명 시나리오 상에 있었지만 편집에서 삭제했다면 나름 어떤 원칙이 있었을 텐데요.
김: 네, 그럼요. 일단 이 영화의 본질을 말씀드리면 어떻게 보면 장애인 이야기잖아요. <바보>도 강풀 작가도 얘기했다시피 리얼리티하고는 거리감이 있어요. 승룡이가 연탄가스를 마신 장애인이지만 그렇게 보지 않았고 강 작가도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를 했으면 차태현이란 배우도 안 맞고 제가 연출 하지 않아도 됐을 거예요. 그런 시선은 일치했죠. 일단 팀 버튼의 <가위손>을 예로 들을 게요. 조니 뎁이 연기한 가위손 에드워드도 비정상적이고 외롭고 착한 사람인데 우연히 마을에 내려왔다 사람들의 오해 때문에 자기가 살던 외로운 성으로 다시 돌아가잖아요. 그래도 마을에서의 좋은 추억만 간직하고 미워하고 그러지 않고요. 또 눈을 내려주면서 세상에 빛과 따뜻함을 주잖아요. 우리 승룡이가 <가위손>의 에드워드처럼 보이면 어떨까. 격리시켜야 될 사람도 아니고 따뜻하고 순박해서 손해보고 살지만 승룡이의 진정성과 진실만큼은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하: 그래서 승룡이에게 더 집중을 했나요?
김: 참 좋은 이야기가 많아요. 희영이의 빨간 구두 이야기, 토성 할아버지도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이고 상수도 크고요. 다 필요해서 찍어놨지만 재미가 없어서 편집한 건 아니에요. 부분 부분은 참 좋은데 이야기가 너무 분산되고 방대하다보니까 구심점이 없는 거예요. 편집 본을 다 보니 서너 편의 영화가 중구난방으로 엮인 것 같은 희한한 느낌이라 심각하게 회의를 했어요. “만화로는 재미있고 영화적인 모티브들이 좋아서 판권을 사 가는데 집으로 전화가 온다, 이걸 어떡하느냐면서”라는 말이 와 닿았죠. 원작에 충실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원작 그대로 갈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승룡이와 동생, 가족에 대한 사랑 쪽으로 결정을 한 거죠. 동생이 몰랐었던 오해들이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와 닿는 걸로. 전 오빠, 동생 있는 사람들은 다 봤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절대 싸우지 않을 거예요(웃음). 

하: “아플 땐 바세린, 배고플 땐 토스트”란 대사는 <말아톤>의 초원이가 떠올랐어요. ‘바보’ 승룡이를 어떻게 그리느냐에 대한 수위 조절도 관건이었을 것 같은데요.
강: 캐릭터를 잡는데 있어서 차태현이란 배우가 갖는 이미지가 독이 될 수 있다고 느꼈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영화의 성패는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차태현에 달렸다 생각했죠. 다른 후보 분들도 물론 있었지만 역시 공격적인 배우들이 잘 해요. ‘내가 한 번 해봐야지’ 하는 배우들은 자세부터가 다르거든요. 크랭크인 전에 비슷한 모델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수도권에 있는 웬만한 요양원이나 복지시설을 다 찾아 다녔어요. 연탄가스 중독자도 많지 않고 더 격리를 시키길래 비슷한 사람들의 특징만 인터뷰를 찍어 왔죠. 차태현씨가 연기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말아톤>이나 <맨발의 기봉이>는 실제 모델이 있지만 우린 모델이 없으니까 연출자로서 가이드 해주기도 애매하잖아요. 그래서 차태현도 전적으로 원작에 의지했던 거 같아요. 전형적인 장애인을 연기하는 건 절대 아니라고 했으니까요. “감독님 저 영화 열 편하면서 제 대사만 외우고 상황에 대한 감을 잡고 했는데 이번 영화처럼 지문 하나하나를 읽어 보긴 처음이에요. 그 지문 안에 다 답이 있던데요?”라고 하더라고요. 외적인 부분은 더 리얼하게 갈 수 있었지만 너무 과해선 안 될 것 같았고요. 또 태현이가 가진 기본적인 베이스가 만화 속 승룡이처럼 귀여운 느낌이라 좋았죠.

하: 스크린으로 확인하니 만족스러운가요? 평자들도 차태현씨 연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별로 없는 거 같던데.
김: 네, 변신한 모습에 대해 도와줘야 되고 응원도 해 주고요. 연출은 묻혀도 되요(웃음). 차태현이란 배우를 보면 굉장히 속상해요. 어찌 보면 여배우 서브만 해주는 것도 같고. 처음 만났을 때 진짜 영화배우 같지 않고 ‘무슨 사람이 이렇게 착하고 바보 같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본적으로 배우는 ‘가오’도 좀 잡고 속 이야기도 잘 안 하고 그러는데 차태현은 안 그래요. 무슨 감독이 아니라 동네 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놀랬죠. 기본적으로 이런 배우들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고만고만한 영화하다 잊혀져가고 일일드라마 하는 게 아니라. <바보>가 다들 차태현의 앞으로 10년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작품이 되어줬으면 좋겠어요.

하: 하지원씨 캐스팅은 아무래도 <동감>때의 인연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궁금했어요.
김: 무시할 수 없죠. 지호 역을 맡겠다는 톱 배우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사실 지원이는 (제가) 반신반의 했었어요. 분량도 적고 승룡이의 영화니까. 선뜻 하겠다고 해서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느낌이었죠. 지원이도 고맙지만 가장 고마운 건 박희순이란 배우에요. 승룡이가 살아야지 드라마가 사는데 비슷한 색깔의 배우가 상수 역할을 했다면 톤이 확 달라지고 봄나물 같이 화사한 영화가 나왔을 거예요. 우리는 힘을 주려 하지만 관객들이 보기에는 닭살 돋는. 박희순이 그 중심을 잘 잡아줘서 진짜 감사해요. 편집된 부분 때문에 서운한 부분도 있겠지만 소주 한잔 하면 풀릴 거라고 생각하고. 꼭 디렉티스 컷에서……(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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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고백을 하자면 안타까웠던 점이 상수 부분이었어요. 영화가 너무 착해진 것이 상수와 희영 부분이 조금 더 있었으면 공감대가 커졌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 그냥 영화만 놓고 본다면 또 다를 거예요. 전 엔딩은 <빌리 엘리어트>가 최고라고 생각해요. 후반부 다 필요 없이 점핑하는 장면으로 끝나잖아요. 사실 저도 그러고 싶었어요. 사족 같은 부분 다 빼버리고 승룡이 신발 하나 딱 놓고 지인이가 한 번 미소 짓고 끝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하: 강풀 원작의 영화들이 앞으로도 줄을 섰는데 앞으로 메가폰을 잡을 감독들에게 이게 제일 어려웠다거나 하는 조언을 해 준다 면요.
김: 애매한 분량이요. 예를 들어 <식객>이나 <타짜> 같은 경우는 두 시간 안에 정리하면 되는 건데 <바보> 같은 경우는 네 시간짜리로 개봉을 해야 되요. 그런데 묘하게도 <아파트>나 <순정만화> 심지어 <26년>도 분량은 다 마찬가지더라고요. 다 잘 하겠죠. <26년>의 이해영 감독이나 <순정만화>의 류장하 감독 모두 기대하고 있어요. 강풀 얘기 들어봐도 시나리오가 잘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네티즌들이 강풀 작가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이야기’ 때문인 거 같아요. 그리고 강풀 작가가 묵직한 면이 있어요.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 인거 같은데도 본질로 들어가면 심금을 울린다든가 나름 독특한 정서가. 제가 운 좋게도 장진 감독과 두 작품을 했는데 옆에서 지켜보며 대단한 이야기꾼이라고 생각 했었거든요. 장진 감독이 연출을 하거나 시나리오를 쓴 작품들이 사랑받는 이유가 독특한 이야기에 있다고 보고요. 강풀 원작 영화들이 인터넷에서 사랑받았던 것만큼 잘 됐으면 좋겠어요.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요. 그 안에 분명히 정답이 있거든요.

하: 역시 본질적인 부분을 강조하시는 것 같네요. 좀 더 큰 얘기를 해 볼게요. <동감>으로 데뷔해 햇수로 9년차고 이제 세 편째인데 상당히 과작의 감독이에요.
김: 어떻게 보면 정말 게으른 거죠. 무슨 얘기인 줄 알겠고 게으른 걸로 보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상위 영화감독들 중에서도 몇 프로만 여유로워요. 입봉 당시만 해도저보다 월등히 뛰어난 분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 분들이 태반이에요. 순제작비 평균이 30억에서 35억이고 100억대 영화가 만들어질 만큼 파이가 커졌어요. 감독이 그 상업적인 부분을 책임져야 돼요. 잘못되면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바로 그 다음날 실업자가 되는 거죠. 결국 시나리오의 문제인 거 같아요. 좋은 시나리오가 바탕이 되고 콘텐츠가 다양해 져야죠. 그리고 감독 지망생들도 내 시나리오로 입봉한다는 생각도 줄여야 돼요. 그러면 좋지만 기본적인 아이템은 감독이 만들되 상업영화들은 나름대로 체계화 시킬 필요가 있다고 봐요. 한해 만들어지는 110여 편이 다 시나리오 좋다고 시작하지만 결과를 보면 그 중에 본전은 열 편, 나머지는 다 손해. 그럼 투자자들은 다 멀어지죠. 결과적으로 그걸 감당하다 보면 헝그리해 지고 우리 주장을 당당하게 내세울 수도 없고요. 그런 상황에서 관람료 올려 달라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거죠. 관객들 만족도도 높아져 있으니 최소한 반타작은 해서 한국영화 재미있다는 얘기가 나오게 해야죠. 본의 아니게 저도 <동감> 끝나고 <화성>까지 3년, 또 <바보>까지 5년이 걸렸어요. 시장 상황 때문에 그런 거니 답답하긴 해요. 욕심 같아서는 임권택 감독님 1년에 네 편 찍었듯이 하고 싶긴 하지만 그렇다고 좋지 않은 시나리오가지고 찍을 순 없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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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역시 시나리오의 힘이 중요한 거 같아요. 우리나라도 빨리 시나리오 작가들을 더 전문적으로 키우고 보수도 안정화시키고 해야 될 텐데요.
김: 그리고 좋은 시나리오를 볼 수 있는 눈을 키우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팀 버튼이 요즘에 시나리오 안 쓰잖아요. 제임스 카메론, 스티븐 스필버그 보세요. 강제규 감독도 <태극기 휘날리며> 할 때 작가들 20명 불러다가 작업했는데 그 만큼 상업적 마인드를 갖춘 거죠. 장진 감독처럼 잘 하는 감독들은 또 잘 하면 되고요(웃음).

하: 세 편 연이어 멜로 장르를 연출했어요.
김: 감성의 문제인 거 같긴 한데 <바보>까지 해서 이제 조금 제 색깔이 보이는 거 같아요.  <동감>때 말도 안 되게 앞서간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탁월한 감각!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뛰어난가라는 반문도 많이 했고. 기자들은 너무 겸손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한 편 하고 감독의 색깔을 논할 수 있어요. 좀 창피하더라고요. 정서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해주는데 이제 좀 알겠어요. 그게 김정권만의 고유한 색깔이 될 수도 있을 거 같고 이제는 부끄럽지는 않은 거 같아요. 대한민국의 연출자로서 색깔 없는 감독이 제일 부끄러운 거잖아요. 사실 다른 장르 시나리오도 받아 봐요. 기본적으로 공포도 보고 액션 영화도 너무 좋아하고.  멜로가 눈에 들어오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올리비아 핫세가 나왔던 <로미오와 줄리엣>이 떠올라요.

하: 그래서 <동감> 때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는 장면을 넣으셨군요(웃음). 다음 작품도 멜로라고 들었어요.
김: 촬영은 다 마쳤고요. 제목이 <그 남자의 책, 198쪽>이에요. 소설가 윤성희씨의 단편이 원작이고 ‘이상문학상’ 추천작이죠. <화려한 휴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나현 작가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박은영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고요.

하: 나현 작가님은 요즘 너무 잘나가는데요.
김: 잘 나갈 줄 알고 같이 작업하자고 그랬어요(일동 웃음). 최고죠 뭐, 시나리오 작가 중에서. 작년에 600만, 올해 400만.

하: 주연을 맡은 이동욱 씨는 <아랑> <최강로맨스>도 잘 됐잖아요. 유진씨도 <못말리는 결혼>으로 안정적으로 데뷔했고.
김: 네.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말로는 배우 기근이다 하면서 결국에는 톱스타를 찾고 투자사들도 신인 발굴해야 된다고 한다면서도 신인들이면 투자를 안 해요. 환장하는 거죠. 제 PR 같지만 떳떳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톱스타지만 <동감> 때 모두 신인급이었으니까. 톱스타라고 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 특히 유진이란 배우는 가능성을 높게 봐요. 뮤지컬 <댄서의 순정>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깜짝 놀랐어요. 가수 출신 배우들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이 분명히 있잖아요. 유진이란 배우는 노력을 많이 하더라고요. 꾸준하게 자기 트레이닝 하고 연기자로서 노력을 하는 친구고. 그걸 제가 직접 봤고 그래서 캐스팅을 했죠.

하: 돌이켜 보면 <동감>은 시간, <화성>은 공간, <바보>는 캐릭터에 집중했어요. 이번엔 미스터리 멜로라고 했는데 어떤 변주가 있을지 궁금하네요.
김: 사랑 이야기로 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요, <화성>은 공간에 대한 신비함이 있었죠. 그러다 보니 멜로가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하다 미스터리 멜로에 끌렸어요. 전형적인 멜로는 많잖아요, 사랑하다 배신하고, 누가 죽고 불치병에 걸리고. 또 불치병 얘기는 저랑 안 맞는 거 같고(웃음). 이야기는 미스터리 멜로지만 굉장히 밝고 유쾌하게 시작해요. 두 주인공이 상처가 있어요. 유진이 맡은 도서관 사서 은수는 8년 동안 도서관 사서를 해서 무료함에 찌든 인물이에요. 이동욱씨가 맡은 준오는 자기가 잃고 싶은 기억만 잃어버리는 해리성 기억 상실증에 걸렸고요. 그런데 사고가 나기 전 손에 쥐고 있던, 사랑하던 여자가 쓴 ‘OOO책 198쪽을 봐, 그 속에 내가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라는 쪽지 하나를 들고 도서관에 찾아와요. 도서관에 한 번도 안 올 것 같은 남자를 은수가 지켜보면서 자기도 아프지만 자기보다 더 아픈 남자를 도와주고 치료하고 자기도 치유 받는 이야기죠.

하: 장진 감독과 처음 두 편을 함께 작업하다 이번엔 다른 작가와 작업했어요. 솔직히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동감> 때는 장진 감독의 시나리오에 대한 칭찬도 적지 않았는데요.
김: 저는 지금이 편해요. 주목 안받는 게 편해요. 솔직히 감독 김정권이 주목받지 않는 게 부담이 덜해요. <동감>도 아이템이나 구상도 제가 했는데 결국엔 장진 감독님이 주목을 많이 받아서 솔직히 기분이 좋진 않았죠. 근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별게 아니고 도리어 장진 감독님한테 고맙다고 했어요. 이제는 동지고 사석에서 만나면 친구고. 근데 이번에 또 강풀 작가한테 갈 수밖에 없어요. 상업적으로도 맞고요. <동감>의 김정권 해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웃음). 그러면서 우리는 2등하면서 언제한번 제대로 1등 한번 하는 거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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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참, 이 얘기는 제목으로 써야겠는데요?
김: 난 2등이 좋다?(웃음)

하: 개인적으로 <가위손> 얘기도 하셨지만 더 판타스틱한 작품을 만드셔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 ‘뽀샤시’한 화면도 잘 찍으시고.
김: 예쁘게 안 찍으면 가만 안 두니까(웃음). 참, 지원이 정말 예쁘게 나왔죠? 지원이가 무대인사 다니면서 굉장히 좋아해요. 자기가 봐도 예쁘니까요. 물론 자기가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역할이니까 지원이한테 해줄 수 있는 전부였죠. 예쁘게 만들어주자. 하지원 용 조명이 따로 있었죠(웃음). 그런 변화를 주고 싶어요. 단순히 장르의 크로스오버 차원이 아니라 ‘와, 우리나라도 이런 판타지도 가능 하구나’. 그런 시도들이 이곳저곳에서 보여서 솔직히 기분 좋아요. 나이를 한두 살 더 먹고 작품이 늘면서 어깨를 짓누르는 생각이 솔직히 나까지 사회적인 것들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 심지어 광주, 사회의 슬픔, 아픔들은 이미 다 하고 있는데. 나 같이 2등하고 잘 안 보이는 놈이. 그렇다고 <미지왕> 같은 거 말고(일동 폭소). 그런 걸 구상하고 있고 기대를 한 번 해 주세요.

하: 네. 허진호 감독님이 멜로의 제왕이면서 슬픔과 아픔을 그린다면, 감독님은 밝은 면을 강조하는 멜로물에서 일가를 이루셨으면 좋겠네요.
김: 게임이 안 돼요, 너무 잘해. (허진호 감독은) 고향 전주 선배시고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감독님이에요. 개인적으로 만나도 친동생처럼 해주시고. <8월의 크리스마스>는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명작중의 명작이죠. 그런데 다른 거 없어요. 남이 하는 거 따라하는 거 보다 차라리 죽으려면 멋지게 죽는 게 나은 거 같아요(웃음). 제가 시나리오 잘 쓰는 감독도 아니니까 제 생각을 잘 옮겨줄 수 있는 작가님들하고 좋은 아이템 구상을 해 보고 싶어요. 또 의뢰가 들어오는 것들이 종전에 해왔던 것들이에요. 재미도 없고. 저도 이번에 <바보>를 통해 많이 느껴요. 요즘 관객들이 많이 바뀌고 있구나. <8월의 크리스마스> 컷이 조금 길고 나름의 여백, 정서, 여운을 주는데 그럼 요즘은 하품하고 중간에 나가버리니까. 이런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해야죠. 안일하게 ‘왜 내가 예술 하는데 관객들이 이해를 못 해줘’, ‘이 나라가 나랑 정서가 안 맞나?’ 이건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인 거 같아요.

하: 다음 작품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김: 배급이 아직 안 정해졌어요(웃음). 아직 편집 중인데 이 정도면 되겠다 싶을 때  배급사 관계자 분들한테 보여드리고 배급 결정지어야죠. P&A 비용 때문에 걱정도 좀 되지만, 뭐 작품이 좋으면 개봉 못 하겠어요. 가을이나 겨울 정도에 개봉하면 좋을 거 같아요.

하: 그때까지 원작이랑 시나리오 다 읽어보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김: 네. 언제 한번 소주 한잔 하죠?
하: 저야 언제라도 콜입니다. 다음엔 아예 취중토크로 인터뷰를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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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성태
사진 권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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