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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사의 영화들

필진 리뷰 2007.08.01 15:13 Posted by woodyh98
2007.08.01



김곡, 김선 쌍둥이 감독의 창작집단 ‘곡사’는 2001년의 [반변증법]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열한편의 독립영화를 발표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05년 작품 [뇌절개술]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집행위원 특별상을 수상했고, 2006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옴니버스 영화 [세번째 시선]에서 에피소드 [Bomb! Bomb! Bomb!]을 연출했다. 이들의 영화를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라면 그들이 영화마다 집어넣는 타이틀 ‘비타협 창작집단 곡사’일 것이다. 누구와도, 심지어 관객과도 타협하지 않는 곡사는 그들의 의도가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영화를 만들어 왔다. 어려운 영화가 많은 독립영화계에서도 곡사의 영화는 유난히 어려운 편에 속한다. 그들이 관습적인 내러티브를 거부하는 실험영화를 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2002년 작인 [시간의식]과 2004년 작품 [빛과 계급]은 그런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초기작에 속하는 [시간의식]은 중편 실험영화이다. 시인인 남자와 매춘을 하는 여자, 그들의 방, 그리고 시간 9시 20분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9시 20분에 대한 기억’이라는 자막으로 시작해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것처럼 출발하지만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이야기가 네 번의 챕터 동안 반복되면서 내러티브가 파괴되고 이야기는 모호해진다. 도입부에서 어두운 방에 여자와 다리가 불편한 남자가 등장한다. 방은 어둡고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있다. 특이한 건 조명의 위치인데 마치 카메라 혹은 시선의 존재를 지시하듯 방의 일부분만을 비추는 조명이 이 공간이 비현실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임을 말한다. 이 씬은 챕터가 시작될 때마다 조금씩 바뀌어 반복되며 영화의 분위기를 이끌고 간다. 다음 쇼트에서 남자는 울고 있고 누워있는 여자는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혹시 여자가 죽은 것인가 싶어진다. 그리고 다음 쇼트에서는 더 엉망이 된 방에서 남자가 더 크게 울고 있는데, 이 쇼트는 이야기상으로는 앞 쇼트와 맞지 않다. 시간은 동일한 것 같은데 방의 물건이 바뀌었고 남자의 행동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간의식]의 쇼트 배열은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이 아닌 오히려 맞지 않는 이야기가 충돌하는 몽타주이다. 이 충돌은 몽타주는 쇼트배열 뿐 아니라 씬이나 챕터의 배열에서도 마찬가지로 등장하며 결과적으로 영화를 해체하고 있다. 세번째 의식에 이르면 여자가 자신의 목을 졸라서 죽고 남자가 두 명 등장하면서 인물마저 모호해진다. 이 챕터에서는 저속, 고속촬영이나 여러 트릭을 이용해 화면 안에서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시간이 해체되며, 네 번째 의식에 이르면 시인이 벽에 주저앉아 벽지를 칠하고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끼어들면 공간마저 불확실해지면서 모호함이 화면으로 천천히 침투된다. 결말에 이르면 영화는 완전히 역전된다. 치밀하게 짜놓은 구조를 통해서 시간과 공간을 비틀고 이야기를 변주하고 영화를 해체하는 이 작품은 곡사가 만드는 영화의 경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빛과 계급]은 28분 길이의 회화적인 경향이 강한 실험영화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젊고 깡마른 남자와 늙은 여자가 알몸으로 어둠 속에 서있다. 영화는 이들을 피사체 삼아 그림을 보는 것 같은 화면을 만들어간다. 이들은 액자를 들고 스스로 액자 속 인물이 되기도 하고 프레임 밖으로 빠지거나 안으로 들어오거나 움직임으로서 프레임 안의 구도를 바꾼다. 들을 응시하는 카메라 역시 초점을 통해 인물의 포커스를 바꾸거나 줌이나 트랙으로 구도를 변형한다. 인물이 화면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기를 거듭하는 장면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생각났다. 그의 영화도 회화적인 미장센의 연속이라면 [빛과 계급] 역시 그렇다. 제목은 무슨 의미일까? ‘빛’은 영화 속의 조명으로 등장하지만 ‘계급’은 무슨 의미일까. 남녀의 관계가 계급을 상징하는 걸까? 그들은 얼굴에 피가 묻기도 하고 먹물로 표시가 되기도 하며 이들의 행동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는데, 그것이 둘의 피할 수 없는 계급 관계를 말하는 것일까. 이들은 처연하게 알몸을 드러내고 있으면서도 빛이 쬐어지는 순간 계급은 다시 생성됨을 말한 것일까. 영화가 취하고 있는 깊은 상징성만큼이나 쉽지 않은 영화이다.


2005년의 [뇌절개술]에 오면 곡사의 영화가 조금 달라진다. [뇌절개술]은 극영화 형식을 취한 장편 영화로, 풍부한 내러티브와 많은 유머를 간직해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폐광에 카지노가 세워지지만 일자리가 없는 주인공은 오늘도 사람들이 꿔간 돈을 받아내기 위해 폐광 주변을 맴돈다. 마을에는 사람 머리가 없어지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카지노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하나하나 사라져간다. 정치적이고 자본주의 비판적인 텍스트를 밑에 깐 스릴러 같은 이 영화는, 재미있으면서도 여전히 곡사 영화다운 난해한 요소는 있다. 영화는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의 아버지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다가 중간에 주인공이 끼어들면서 두 인물이 서로 나레이션을 맡으려고 싸운다. 영화의 시간도 주인공이 하루 동안 겪는 일이지만 주인공의 아버지가 결부된 과거를 자유롭게 오가는 등 배열이 모호하다. 추운 겨울 고생고생하면서 찍었다는 폐광 마을의 풍경에는 사람이 빠져나가고 유령만이 맴도는 것 같은 서늘함이 HD로 촬영한 화면 안에 서려있는데, 그것이 이 영화의 백미가 아닌가 한다.


[뇌절개술]에서 더 쉬운 내러티브를 취한 변화가 일시적인 것은 아니었다. 2006년 작 [Bomb! Bomb! Bomb!]은 완전한 극영화이며, [정당정치의 역습] 역시 장르영화적인 쾌감을 내재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정당정치의 역습]은 ‘정당정치 시리즈’로 명명된 일련의 연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B급 SF적인 요소를 차용한 장르 영화이며 소리가 없고 대사를 자막으로 처리한 무성영화이기도 하다. 과학자가 일련의 실험을 통해 유인원 비슷한 존재를 창조해내는데, 실험 중 사고가 일어나면서 평범한 세 여성이 미녀 삼총사로 변신하고, 무기를 가진 남자와 도시를 누비며 전투를 벌인다.

줄거리를 보면 대충 짐작이 가겠지만 영화는 장르영화이면서도 동시에 장르를 패러디하는, 정직한 B급 SF 영화라기보다는 반은 농담처럼 진행되는 영화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유머나 곡사가 직접 연기하는 캐릭터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이들이 B급 영화를 만드는 행위를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장르 영화로도 재미있는 영화지만, 더 파고들어가 본다면 제목에 등장하는 ‘정당정치’를 은유하는 몇몇 요소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시에서 벌이는 전투는 액션 씬이라기 보다는 도시를 배경으로 벌이는 퍼포먼스에 가깝다. 미녀 삼총사와 모히칸 머리를 한 남자는 광화문 일대의 전경들 사이에서 퍼포먼스를 벌인다, 왜 전경들일까? 이런 퍼포먼스는 전편인 [정당정치의 원리]에도 등장하는 걸 보면 곡사가 중요한 비중을 두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5분 길이의 이 영화는 700여개의 쇼트가 나올 만큼 속도가 빠르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미녀삼총사와 남자가 본격적으로 추격전을 벌이면 컷이 정신없이 빨라진다. 붉은색과 초록색이 번갈아 등장하고, 도시를 활강하는 듯한 패닝쇼트들이 자주 등장하면서 무성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에너지를 화면에 채운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빠른 흐름과 감정이 격양된다는 면에서는 마치 액션영화의 클라이막스 같지만 전형을 뒤집는 반전을 보여주는 순간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며 마무리 된다. 관객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 곡사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결말이다.

곡사는 현재 상업 장편 영화를 계획 중이다. 최근의 영화에서 쉬운 내러티브의 영화를 만든 곡사가 상업 장편 영화에서 어떤 타협점을 찾았을지, 혹은 ‘비타협 창작집단’이라는 타이틀을 고수하며 여전히 타협점을 찾지 않았을지 확인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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