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강민영


김경묵의 <청계천의 개>는 현실을 차단한다. 다시 말해 그의 영화가 상영되어지는 동안, 관객은 다큐멘터리를 뛰어넘는 현실과 영화의 벽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차단한 짧은 시간 안에서, <청계천의 개>는 순간적 혹은 우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많은 사건의 수를 나열한다. 영화는 특별한 시퀀스 없이 가속적으로 진행되지만, 그 안에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의 행로는 앞 뒤를 분간할 수 없을만큼 치밀하고 체계적이다.

<청계천의 개>는 복선의 영화다. 하나의 씬이 다른 씬으로 넘어가기 전에 이후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감정선을 영화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첫 번째 장면에서 기다란 머리칼 한 올을 찾았다면, 두 번째 장면은 머리칼의 연장선인 풍성한 가발이 등장한다. <청계천의 개>는 아주 작은 객체들이 쌍을 이뤄 존재하며, 이것은 결국 영화의 가장 큰 바탕을 이루는 머릿돌로 작용한다. 각개의 사건들은 하나만 사라지더라도 전체의 흐름을 단번에 방해할 수 있는 치명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한 남자(혹은 여자)와, 그로 대변되는 다수의 환상과 소망을 차분하게 뱉어낸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주인공(혹은 감독)의 시각은 교차편집과 네거티브씬을 통해 관객의 촉각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것은 단순 '꿈'에 지나지 않는 독백이지만, 한 개인에게 '꿈'이라는 대상이 얼마만큼의 파급효과를 일으키는 지에 대한 날카로운 해답을 찾아낸다. 때문에 <청계천의 개>는 매우 불편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에너지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어차피 남자(혹은 여자)의 환상이 현실로 분배되지 못한다면, <청계천의 개>의 결말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한정되어있을 것이다. <청계천의 개>가 후반부를 향해 달려갈 때, 관객은 영화가 내러티브 밖에 머물 것인지 안에 머물 것인지에 대한 기대를 형성한다. <청계천의 개>는 영화의 앞 뒤를 완전히 밀착시킨 내부적 결말을 택한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환상의 종착점과 한계점을 농밀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여자로 변환하기를 원하는 남자의 선택은 안일한 희망을 향해 걸어간다. 인어가 되고싶은 남자의 소망은 폭포 앞에서 최초의 희망을 갖고, 이후 인어의 꿈을 꾸는 남자는 지하철과 거리라는 공간에 갇혀 변질된 희망을 맛본다. 이때부터 남자의 현실-혹은 통신의 공간-과 이상은 분리되지 않은 채 동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반복과 대구, 그리고 (일종의)'각성'의 시간이 지나고 남자는 자신에게 매우 익숙한 폭포를 다시 마주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현실의 시간이 아닌 남자의 머릿속이다. 남자는 두 다리에 입혀졌던 하늘색 모조비늘 대신 여성의 몸으로, 가발을 쓰고 인공폭포를 마주한다. 폭포는 남자의 꿈 속에서 가장 이질적인 이미지로 존재한다. 폭포의 물소리를 들으며, 남자는 자신과 인어의 이야기를 동일화시키기도 하고, 철저히 나누기도 한다. <청계천의 개>가 놓친 중요한 방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영화는 트렌스젠더와 트렌스라는 단어가 가지는 사적 이미지와 문제점의 해결에 대한 탐구를 기반한다. 남자가 가공의 폭포를 전혀 다른 공간에서 마주하는 순간은 지금까지 이어져왔던 수많은 복선들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시종일관 곧게 떨어지는 물살을 마주한 남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엄청난 공허함을 느꼈을 것이고, 그 공허함이 앞으로 나아가 두 다리를 청계천에 머물게 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좌절과 전진 사이에서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남자의 클라이맥스도 바로 이 부분이다. 뛰어넘어야 하는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청계천에 놓여진 남자의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강력한 자극을 제공해야만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청계천에서 멀어진 남자는 자신이 두려워하던 대상을 다시 만나고,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방향성을 완전히 틀어 희망을 향해 걸어간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주고 싶었던 단상이 '한 없이 아름다운 소수의 세상'이었다면 스스로 한 편의 동화를 마무리하는 남자의 선택은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계천의 개>가 가지던 수 많은 장면의 리듬을 생각해본다면, 영화의 결말, 즉 남자의 '맺음'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의 위화감을 건넨다. 분출되거나 정지해야만 했던 남자의 움직임이 희망적인 내레이션으로 포장되었을 때, <청계천의 개>는 종전까지 불안정하게 이어오던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이후 관객의 머릿속을 사로잡는건, 영화의 단편적 이미지다. 기괴하고, 참기 힘든. 혹은 다가서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실린 서정의 이미지들. <청계천의 개>가 '살아있음'을 증면하는 것은 영화 내에서 곡선으로 흐르는 강력한 이미지들이다. 물론 이러한 이미지의 움직임이 <청계천의 개>라는 영화 자체를 대변하기에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병렬적으로 이어지는 장면들의 위로, 김경묵의 내러티브는 도약을 꿈꾼다. 흩어지는 씬 사이에서 관객을 농락할 수 있는 힘을 일정부분 소유하는 영화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고 보호되어야 할 시선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CinDi 2008에서 보낸 10시간

필진 리뷰 2008.08.24 10:56 Posted by woodyh98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성태


영화제를 찾는 즐거움 중 하나는 의외성이다. 카탈로그에 소개된 시놉시스 몇 줄을 보고, 감독 이름 하나만으로 선택한 영화들이 발견의 기쁨을 줄 때, 영화제를 찾는 즐거움은 몇 곱절이 된다. 그러고 보면 오늘 시네마디지털2008에서의 선택은 절반이 넘는 성공이라 자부할 만하다.

먼저 2회 . 오호라, <크레이지 스톤>의 닝 하오다. 그가 올해 완성한 중편 <기적세계>는 압축된 액션활극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 준다. 도망치는 범죄자와 뒤를 쫓는 형사 사이의 긴장감과 추격의 서사. 그 틈으로 끼어드는 여자 인질과 인질범의 대치가 주는 긴장감. 이를 매개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온라임 게임. 6세대의 리얼리즘이나 장이모우의 무협 대작만이 존재할 것 같은 대륙에 닝 하오 같은 순한 오락 영화를 만드는 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작품이 <기적세계>다(정성일 선생은 <본 얼티메이텀>을 언급했다!). 무엇보다 28분이란 시간 안에 두 인물의 성격을 명확히 각인시키는 것도 모자라 아슬아슬한 서스펜스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라스트의 반전은 보너스다.

이런, 아무런 정보가 없다보니 당혹스러움은 배가 된다. 로토스코핑? 인도 출신 거리의 철학자가 설파하는 명상과 점성술, 그리고 삶에 대한 철학이 그럴싸한데, 내용에 따라 얼굴을 제외한 배경과 형체가 바뀐다. 그렇다. <스캐너 다클리>와 <그녀는 예뻤다>에서 확인한 바 있는 바로 그 기법이다. 감독은 <스캐너 다클리>에 참여했다는 애니메이션 디렉터로 참여했다는 밥 새비스턴. 이런 게 바로 형식과 내용의 합일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현재에 집중하라’는 메시지가 심금을 울렸다.

아, 고민 없는 선택은 종종 괴로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김곡, 김선의 <임계밀도>와 <자살변주>가 그러한 예다. 실험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이 작품에 대해서는 별로 할 얘기가 없다. 찰리(<미녀삼총사>의 바로 그 찰리에서 따 왔다는!)라는 연쇄살인마와 그에 맞서는 여주인공의 이야기, 라고 김선 감독이 설명했다. 내러티브가 있다고 GV에서 강조했지만 이 실험영화는 필릭커(그렇다, 그 깜빡거림!)와 네거와 포지티브 필름의 교차, 노이즈 사운드에 대한 영화적인 실험이다. 아, 이런 건 도저히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다만 닝 하오 감독이 준 오락적 쾌감과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 영화라는 것만은 명심하시길.

뒤이어 마주한 작품은 개막작 상영에서 영사사고가 났다는 바로 그 <24 시티>다. 와우, 지아 장커에게 경배를! <스틸 라이프>와 마찬가지로 <24 시티>는 사그라지는 공간에 대한 사려 깊은 성찰과 존경을 보낸다. 이번엔 청두라는 공장지대다. 청두는 비행기 군수 공장 ‘팩토리 420’가 들어 서며 전쟁 후 번창했던, 우리와 비교하자면 울산과 같은 도시다. 종종 등장하는 공장의 입구를 정면으로 담은 롱 숏으로 시작하는 <24 시티>는 공간의 영화이자 ‘언술’의 영화다. 형식적으로는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 허물기. 지아 장커는 청도라는 공간을 이미 90년대 후반에 담으려고 계획했다는데, 이 죽일 놈의 형식이 문제였단다. 그래서 그 후 고민을 거듭하며 100여명이 넘는 노동자와의 인터뷰 끝에 극영화를 고집할 필요도, 노동자들과의 인터뷰로 빼곡히 채울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래서 모두 8명의 인터뷰로 채워진 이 영화는 실제 인물과 조안 첸을 비롯한 중국의 유명 배우들이 뒤섞인 형태로 완성됐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8명의 노동자 개개인의 사정으로 그리는 ‘청두’의 점묘화다. 우리는 각기 다른 세대가 기억하는 청두와 팩토리 240에 대한 사정을 청취하고 혹은 그 이야기를 건네는 그들의 얼굴을 관람하며 그들의 기억에 동참하게 된다. 누구는 좋았던 시절을 회고하고, 누구는 공장의 꽃이었던 젊은 시절과 그에 빚진 현재를 한탄하며, 누구는 그 공장에서 은퇴한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가 노동자요, 노동자의 자식이라는 점이다. “노동하지 않으면 일찍 늙는다”거나 “잎은 무성해도 뿌리는 다 하나”라거나 하는 전언은 그들이 사회주의 중국의 ‘노동자’임을 잊지 않게끔 한다. 결국 그들이 건설했지만 쇠락해 가는 청두는 그 스스로 사회주의 중국의 역사이자 자본주의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재의 증거인 셈이다. 결국 지아 장커는 이 실제와 허구를 뒤섞은 인터뷰집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중국공산당이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젊은 세대에게 감추고 싶어 하는 그 진실로서의 역사.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장면은 마치 사진을 찍을 때 포즈를 하고 멈춰 카메라 앞에 선 노동자들의 면면이다. 아련한 과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그 땅에 발을 디디고 선 현재의 얼굴이 묘하게 겹치는 것이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울림을 전달해 준다. 지아 장커를 주목하는 이유는 속도전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과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24 시티>, 개봉 하면 놓치지 마시라.

물론 영화제에서의 선택이 모두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기적의 메데아>가 딱 그런 경우다. 우훗,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몇 번이고 읽었지만, 그게 다 최소 5년 많게는 10년이 넘은 일이라 ‘메데아’라는 캐릭터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씀. 메데아는 사랑과 복수의 화신인 전형적인 악녀지만 그러한 메데아의 궤적이 반대로 가부장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자벨 위뻬르가 연기한 이렌 또한 비슷한 캐릭터일 수 있겠지만 영화는 분절된 플롯과 널뛰는 편집으로 인해 신화의 인물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구조를 자랑한다. 아, 유럽영화 특유의 ‘아트’ 영화 분위기를 시종일관 뽐내고 있기에 이 영화를 진심으로 즐기기 어려웠다, 솔직히 고백한다.

하지만 <기적의 메데아>가 불러온 열패감을 해소시켜 준 고마운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린다린다린다> <마츠가네 난사사건>의 야마시타 노부히로. 42분짜리 소품인 <참 작은 세계>는 기이한 SF 영화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을 보지 않았으니 비교하기는 힘들고, 다른 전작 두 편과 비교하자면 이 영화는 <린다린다린다>에 가까운 작품이다(그러니 <마츠가네 난사사건>을 보고 약간 당혹스러웠다면 안심하시라). 100년 뒤 많은 이들이 화성으로 이주했지만, 한 시골 학교에서 의욕 없는 선생님과 세 명의 초등학생, 그리고 괴짜 남자가 살고 있다. 영화는 6학년 학생의 졸업식을 준비하는 이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다. 그런데 별다를 것 없는 꼬마 아이들의 동심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게다가 간단한 설정만으로 SF적인 분위기를 띄는 것도 독특하다. 또 무심한 듯 언뜻언뜻 비춰지는 인간미, 작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일상, 아이들의 천진함 등이 뒤섞여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그러니까 왠만해선 미워할 수 없는 아기자기한 소품 되겠다. 그런데 이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키는건 뒤이어 상영된 다큐멘터리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다. 야마시타가 필모그래피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던 <요짱>이란 작품을 찾아가는 여정인 이 작품은 감독으로서의 자의식과 자괴감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포복절도하던 중간 성찰을 요하기도 한다. 모리구치라는 시골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출연으로 가능했던 <요짱>은 ‘시민참여형’ 영화의 선구자 격인(?) 습작 영화지만, 야마시타 본인에 의하면 몇 년 전에 못 만든 <참 작은 세계>의 동생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두 작품을 연이어 보고 있노라면 야마시타 노부히로가 곧 필견의 걸작을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좋은 영화를 만들, ‘진정성 있는 작가’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느끼게 된다. 서두를 필요 없다. 그는 벌써 <마츠가네 난사사건>을 만들었고, 이제 33살이다. 이런, 33살 이란다.



자,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에만 지아 장커, 닝 하오, 야마시타 노부히로라는 아시아의 거장과 촉망받는 두 명의 작가를 만났다(지아 장커는 내 바로 옆을 그것도 두 번이나 스쳐지나갔고, 심지어 GV에 늦어 화장실 앞에서 후다닥 뛰어가는 코믹한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캐릭터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그러니까 영화제의 즐거움은 이런 것이다. 시간표를 좍 늘어놓고 누구를 만날까 하는 설렘, 그리고 자신의 안목이 이 정도라고 자랑할 수 있는, 일상에서 얼마 되지 않을 거드름, 마지막으로 어떤 작품을 선택하더라도 기본은 하는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영화제의 성장을 확인하는 안도감. 이 모든 것이 CinDi에서 느낀 감정의 편린들이다. 대중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CinDi’여, 제발 오래오래 살아 남아다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8년 8월 23일 토요일 14:40
압구정동 CGV 1관
진행 : CinDi 2008
정리 : 서유경 (네오이마주 편집스탭)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어서고 싶었다"

질문: 어떻게 해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됐는가?

지아장커 : 이 영화는 지난 98년과 99년에 기획해서 시놉시스를 쓰고 있었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찍지 못했다. 당시 중국은 경제 개발 계획에 의해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다. 국영기업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그에 반해 매우 어렵게 생활했다. 이에 대해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풀어낼 수 있겠지만 미학적인 측면으로는 찍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작년 쓰촨성의 칭따오에 있는 이 공장(팩토리 420)을 발견했다. 비행기 엔진 공장이었는데 1958년에 세워져서 약 50년 동안 운영된 공장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이 공장이 모두 없어지고 그 위에 아파트가 세워졌다. 국영비행기를 생산하는 군수공장이 부동산 시장에 들어가 아파트촌으로 바뀌는 과정이 아이러니했고, 재밌는 상황이라고 봤다. 공장노동자만해도 3만명이 넘고 그 가족까지 포함하면 약 10만명이 넘는다. 공장 옆에 위치한 기숙사는 노동자들의 숙소로 이용되고 국가에서 운영하는데, 노동자들의 일상생활 공간이다. 마흔이 넘어 퇴직한 사람도 많은데 연금으로 살기도 한다. 58년도부터 작년까지의 50년 역사에 대한 기억이 공장이 없어짐으로 인해서, 그 중요한 기억을 중국인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다. 1년동안 칭따오에 7, 8차례 방문했다. 지진이 일어나던 그 전날 그 작업을 모두 끝냈다. (* 2008년 5월 12일 쓰촨성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






질문 : 미학적 표현방법을 찾지 못해서 찍지 못했다고 하는데, 지금의 <24시티>를 찍을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인가?

지아장커 :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에서 시작한다. 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 130명을 모두 인터뷰 했다. 인터뷰를 하려고 사람들이 많이 읽는다는 칭따오 신문에 광고를 냈는데 아무도 인터뷰하러 오지 않았다. 그래서 기숙사로 직접 찾아가서 인터뷰할 사람들을 찾았다. 130명을 인터뷰하면서 뭔가 되겠다는 상상력이 생겼다. 그것이 찍으면 찍을 수록 넘쳐났다. 이걸 왜 다큐멘터리로만 해야하는지, 극영화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하다보니 <24시티>가 나오게 된 것이다. 역사의 변화를 변화 자체로가 아니라 상상력을 불어넣어 인간이 변화를 겪는 중에 느끼는 부분들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해오던 것이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어서고 싶었다. 현재 중국사회를 인식하고 중국의 역사를 생각할 때, 그 현실 속에서 어떤 감정이 중요한 것인지 고민한다. 원래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는 허구 부분이 있었다. 상해에서 온 사람의 이야기는 80년대로 돌아간다든지 다른 배우는 50년대로 돌아가는 등의 부분인데, 그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언어로서 이 영화를 끝맺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4명의 배우가 등장하는데, 이 배우들 또한 다른 등장인물인 노동자들처럼 인터뷰를 하게 해서 영화를 완성했다. 액션이나 움직임이 있는 게 아니라 언어로서 이 영화를 완성하는 것이, 하나의 시도였다. 편집할 때 좀 더 열어놓고 생각하려고 했다. 편집과정에서는 픽션을 넣기도 하고, 노동자가 등장하는 화면에 초상화처럼 사진에 찍힌 듯 화면에 넣기도 하고. 예전의 방법대로 표현하는 것도 있다.


질문 : 감독이 허구적인 시나리오를 쓴 부분, 즉 배우들이 인터뷰하는 부분도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게 아닌가?

지아장커 : 네 명의 배우들이 나온다. 처음에 아기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여려평'이다. 예전 티엔주앙주앙(田壯壯)의 <푸른연>(1993)이란 영화에도 나온 아주 유명한 배우다. 두 번째 배우는 '조안 첸'은 <마지막황제>에 나왔던 배우로 상하이에서 온 여인을 연기했다. 세 번째배우는 진건빈이라는 농구공을 들고 서 있던 인물이다. 마지막 배우는 자오타오이고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인터뷰 내용에 나온 것 처럼 실제 있었던 일이다. 동북지방 사람이 서남지방 칭따오에 몰려올 때 아이들을 잃어버린 일이 잦았다고 공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진술했다. 그 아이들이 군수용품을 생산하는 공장의 첫 희생자였던 셈이다. 실제 이 사건의 어머니는 만나서 얘기를 나누긴 했지만 인터뷰에 응하지 않아서 찍지는 않았다. 상하이 여인의 모습은 공장에 다니는 중년여인의 모습이다. 예전 80년대 변혁의 시대에 자신의 청춘과 사랑을 상실해버린 여인들이다. 농구공 남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데, 여기서 연기하는 건 실제보다 4살 많은 걸로 해서 과거 시대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했다. 그리고 그 단락 인터뷰를 하고 야마구치 모모에의 노래가 나온다. 그 시절 일본에서 꽤 유명했던 연예인인데, 이 또래에게는 굉장한 우상이었다. 그 남자가 말했던 얘기는 다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네 명의 배우는 중국에서 굉장히 유명하다. 중국 관객이 보면 어느 부분이 허구이고 현실인지 분간 가능하다. 처음에 인터뷰하는 과정에서는 예전에 그런 방식이 없었기 때문에 기교 자체가 없어서 어색해서 아무 것도 찍지 못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찍는 과정에 대한 방법을 천천히 알게 됐고, 그 뒤에는 노동자들이 말문을 열었다. 그걸 온 몸으로 몰입해서 듣는다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들었다. 이 공장을 운영하던 제도는 평등에서 시작했으나 개인의 존엄을 무시하는 사회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현재는 자본주의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이 과정에 대한 기억을 기록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은 중국 역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다. 역사가 많은 사실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기록들을 문화적, 예술적 방식으로 발휘할 수가 없었다. 감독인 나 자신도 역사적인 무지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역사에 대한 호기심에서부터 출발했다.


질문 : 실제와 허구를 구별하려는 목적에서 유명배우를 기용했다고 했는데, 관객들의 경우에는 노동자의 실제 인터뷰를 보다가 유명배우를 발견하고 '이것이 진짜가 아니라 거짓인가?'라고 놀랄 수도 있다. 이 점을 고려했는가?

지아장커 : 갑자기 배우가 나와서 혼란이 생길 수 있는 위험 요소는 고려했지만 나중에는 상관하지 않았다. 이런 방법으로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영화를 찍는 방법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편집과정에서는 더 많은 것을 추가했다. 가령 노동자를 인터뷰할 때는 곧장 시작하지만, 배우를 인터뷰하는 장면에서는 어떤 경우에는 링겔을 맞으며 등장한다거나, 상하이 여인의 경우에는 경극을 하며 나오는 등의 경우가 있다. 관객들이 그들의 캐릭터를 볼 수 있도록 장치한 것이다. 사실 우리 생활 속에서도 희극적인 요소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런 영화를 마음대로 찍을 수 있게 해준 프로듀서에게 고맙다.


질문 : 중국 관객들은 알 수 있지만 외국인들은 누가 배우인지 모른다.

지아장커 : 당연하다. 사실 공리나 양조위가 연기가 해도 영화는 똑같게 나온다. 하지만 돈이 없으니까.


질문 : 조안 첸은 매우 유명한 배우인데 프로듀서의 역량으로 캐스팅한 것인가?

지아장커 : 아니다. 내가 조안 첸도 내가 결정햇다. 조안 첸을 비롯한 다른 배우들은 모두 영화를 찍는데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시나리오를 보여줬는데 엄청나게 많은 대사들이 나오고 인터뷰 형식인 것이다. 조안 첸은 배우로서나 노동자로서 진실된 이야기를 펼쳐야 한다는 것에 걱정을 많이 했다. 처음 촬영할 때는 배우들이 거부감을 느꼈으나 다들 나름의 노력을 통해 몰입했다고 본다. 조안 첸의 경우에는 다른 영화를 찍자마자 칭따오에 와서 자기와 비슷한 연령대의 주변 여인들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몰입했다. 여령평의 경우 실제나이는 훨씬 적은데 분장과 의상으로 나이 먹은 듯 표현했다. 이 4명의 배우들이 나오는 인터뷰는 한꺼번에 오케이 할 수 있었다. 마치 무대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촬영을 끝내고 스탭들이 박수를 쳤다. 여령평은 인터뷰를 하는 중에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몰입해서 연기한 것이다. 칸느에서 이 영화가 상영됐을 때 조안 첸이 "5일동안 찍어놓고 제가 칸느에 와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는데, 내가 "5일을 촬영했지만 30년의 세월을 연기했다"라고 답했다. 또 짧게 촬영했으나 촬영기간은 1년이었다.


질문 : 조안 첸을 두고 그녀가 젊었을 때 연기한 샤오화를 닮았다는 얘기가 영화에서 나온다. 조안 첸이 샤오화라는 것을 중국인들이 다들 잘 알고 있어 재밌어하는데 외국인들은 잘 모를 것이다.

지아장커 : 그 부분은 외국인과 함께 나누지 못해서 굉장히 아쉽다. 조안 첸은 1978년 샤오화를 찍었는데, 그 시기가 문화혁명이 막 끝난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사랑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중국인들에게 많은 환영을 받았다. 모두들 조안 첸을 알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 시절의 사랑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샤오화를 연기했던 당시의 모습과 이 영화에 등장하는 현재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주는 것이 당시를 돌아보는 청춘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안 첸에게는 처음 촬영할 때 샤오화를 닮은 인물을 연기한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나중 칸느에 가서 영화 편집본에 샤오화 부분을 넣었는데 그걸 보고 조안 첸이 울었다.


질문 : 그간 영화를 디지털로 만들어왔는데, 어떤 영향이 있었다고 보는가?

지아장커 : 2001년 전주에서의 "삼인삼색"때문에 <공공장소>를 촬영했다. 꼭 디지털로 이걸 찍었어야만 했고, 소니 DV로 찍었다. 그런데 피사체와 나 사이에 그렇게 가깝게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버스정류장, 당구장 심지어는 좁은 버스 안에서까지 모두 디지털로 촬영이 가능했다. 그 카메라를 보면서 사람들은 긴장하거나 도망치지도 않았고 오히려 굉장히 자연스럽게 대했다. 그 사람들의 체취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찍을 수 있다는 것이 나를 흥분하게 했다. 자유롭게 시를 쓰듯 영화를 찍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디지털로 작업해왔는데, 어떤 것을 찍고 싶다고 생각만하면 바로 한 달 안에 달려가서 찍으면 된다. 현재 중국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늘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난다. 디지털이기 때문에 바르게 찍을 수 있다. 농담을 하자면 중국의 변화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디지털이 발명된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다. 중국의 변화를 디지털이 따라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객관적으로는 어떤 인물과 생활 양상을 빠르고 가깝게 기록해둘 수 있다. 주관적으로는 어떤 CG 작업을 통해서 자신의 색을 입힐 수 있는데, 이것은 디지털 이전의 기술로는 할 수 없던 영역의 것이다.


질문 : 디지털때문에 허구적인 부분과 다큐멘터리 요소의 경계가 사라진 것이 아닌가?

지아장커 : 디지털이 영화를 찍는 전통적인 시스템을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디지털을 통해 굉장히 많은 양을 역동적으로 찍을 수 있고 매번 새로운 방법을 통해 영화를 찍을 수 있다. 130명의 노동자를 인터뷰하는 가운데 극영화를 찍고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걸 가능하게 했다. 극영화를 찍고 싶다고 해서 다시 돌아가 작업에 대한 예산과 세세한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이 필요없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나와 함께 갈 수 있었다. 매체의 자유로움이 이런 실험을 할 수 있게 격려한다. <스틸라이프>같은 경우 공간이 굉장히 초현실적인 공간처럼 보이고 있다. 도시의 2/3가 철거된 상태여서 마치 외계인의 공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 도시에 이상한 건물이 있었는데 그 건물이 날아가는 건물과 비슷하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고, CG로 그런 성격이 더욱 드러나게 표현했다. 예전에는 디지털이 단순히 값이 싸거나 간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기술적인 부분이 미학의 가능성을 훨씬 넓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실험이고, 이것 이후에 디지털 예술이 등장할 거라 예상한다. 그리고 디지털이 필름영화를 모방하는 것에 대해서는 권장하지 않는다. 디지털만의 성격이 있으므로 그것만의 아름다움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2004)에서도 드라마 속에서 디지털과 인터넷의 세계를 그린다. 인물과 인물, 단락과 단락, 즉 인터넷에서 볼 수 있을 듯한 그런 것을 다룬 것이다.


관객 질문1 : 감독에게 공간이란 어떤 의미인가?

지아장커 : 아이디어는 크게 두 가지면에서 가져온다. 첫째는 인물을 보면서 이야기를 상상한다. 둘째는 공간이다. 빈 공간 자체가 삶의 흔적이 묻어있기 때문에 생명이 있다고 본다. 그 안에 인물의 스토리가 분명히 있고, 나는 그걸로 영감을 얻는다. 영화적 미학을 공간 자체가 나에게 주는 듯 하다. 그래서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미술감독과 공장에서 장면 시작을 하기로 했다. 또 영화 속에서 노동자의 기숙사와 그 뒤쪽으로는 멀리 도로가 보이고 아래에 건물들이 보이는 공간에 붉은 옷을 입은 아이가 등장해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이 있다. 처음 그 장소를 발견했을 때 그 공간이 주는 공허함이나 조용함을 보고 찍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공간이 주는 감각을 증폭시키기 위해 누군가가 이 공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며칠 동안 기다렸다. 빨간 옷을 입은 아이가 나타나서 그 자리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그래서 그걸 찍은 것이다.


관객 질문2 : 중간에 <홍콩>의 주제가가 틈틈이 나왔는데, 어떤 의미인가?

지아장커 : 엽천군이 불렀던 노래인데 세 번 사용했다. 개인적인 이유이기도 한데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아픈 게 있다. 이 음악은 감정을 동요해보기 위해서 썼다. 오우삼 영화에서 보면 알겠지만 그 영화는 과거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어떤 위기의 우리의 인생에 대한 부분들을 다룬다.


관객 질문3 : 인물과 공간의 생활소음이 그대로 들린다. 그 외 각 시퀀스마다 나오는 영화 음악의 선택기준이 궁금하다. 그 전작과는 달리 음악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느겼다. 극영화를 만들기 위한 효과인가?

지아장커 : 두 가지 음악이 나온다. 작곡가가 만든 부분이 있고 유행가를 직접 차용한 부분이 있다. 작곡가 두 명과 함께 했다. 일본의 하노이고 대만의 링챵이다. 영화의 앞부분은 교향곡 같은 음악에서 시작해서 뒷부분은 전자음악으로 끝난다. 음악을 통해서 색깔의 변화를 두고 싶었다. 엄숙하던 시대에서 개인의 시대로 가는 과정을 음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마지막 노래는 '우리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이다. 유행가의 사용은 등장인물들이 그 당시 시대를 이야기할 때 나오는데, 그 사람들이 얘기하는 시절의 유행곡이다.


관객 질문4 :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최근작인 영화들이 떠오른다. <동>이나 <무용>은 다큐멘터리를 전면에 내세운다. <스틸라이프> 가 많이 떠올랐다. 실제 <동>에서 발상했고 <스틸라이프> 안에서도 <동>에서 찍은 장면이 삽입됐다고 들었다. 영화가 현실을 견뎌내길 바랬다는 말을 했다. 어쩌면 허구 속에 현실이 들어와있는 것으로 보인다. <24시티>에서는 오히려 같은 의미에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관계를 줄이고 있지만, 어쩌면 현실 속에 네 명의 허구적인 배우가 있는 것처럼 오히려 현실 속에 허구가 있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짓는다는 측면에서 <스틸라이프>와 <24시티>의 변별점이 있는가. 혹은 <스틸라이프>처럼 원칙을 세워놓은 게 있는지 궁금하다.

지아장커 : 비슷할 수도 있다. <스틸라이프>는 <동>을 찍다가 극영화를 찍는데 허구적인 시나리오를 써서 극영화를 만든 것이다. <24시티>가 다른 점은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는 과정에서) 허구를 넣은 것이기 때문에 <스틸라이프>는 극영화이고,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요소가 한꺼번에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158,696
  • 75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