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하고, 얼큰한 영화다. 잘 끓인 된장국처럼 농도가 짙고, 해장술처럼 얼큰해서 보고나면 엔돌핀이 팍팍 도는 영화다. 이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관객을 배꼽 잡게 만들고, 한껏 영화에 취하게 만든다. 독립영화 장편치고 이렇게 웃긴 영화를 만난 건 실로 오랜 만이다. 1000만원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노영석 감독의 첫 작품인 <낮술>은 대박예감이 팍팍 든다. 예감은 관객 반응을 보고 직감 할 수 있었다. <낮술>은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두 번째로 관객과 만났다. 상영이 있던 날 극장 안에는 웃음이 해일이 되어 관객을 쉴 새 없이 덮쳤다. <낮술>이 만들어 놓은 웃음바다에 푹 빠진 관객들은 몸과 마음이 흠뻑 젖었을 게다.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올해의 독립영화 한 편, 노영석 감독의 <낮술>이다.
<낮술>은 반가운 영화다. 그간 우울한 몽상가라도 되는 양 독립영화가 장편 영화들은 청춘들의 성장통, 비정규직, 탈북자, 노숙자,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현실의 쓰라림을 노래하였다. 대부분이 그랬다. 누구하나 웃어야 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고, 웃기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이상한 불문율이었다. 현실이 심각하다고 영화마저 심각하다면, 우리는 극장에서도 눈물을 흘려야 한다. 한두 편이면 괜찮지만 나오는 영화마다 심각하고, 영화가 두통을 만들어내는 장본인들이었다니. 참 독립영화 볼 맛이 안 났다. 가뜩이나 FTA다 '미친소'다 해서 세상이 아수라장 같은데. 세상이 우리를 속여도 영화는 우리를 속이지 말고 응원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관객은 우울한 현실을 극장에서 보기 싫었는지 독립영화 극 장편을 도외시 했었다. 아닌가? 반면, <낮술>은 익숙한 이야기를 능글맞게 하는 영화다. <낮술>은 명랑 그 자체다. 여기에는 어떤 정치적인 텍스트도 없으며, 세상에 대한 저항이나 반항 혹은 고민이 등장하지 않는다. 되려, 그 고민들을 일상의 저편으로 날려버리고 우리만 남은 일상의 이편에서 한 바탕 축제를 벌인다. <낮술>은 웃음의 카니발이다.
일상이 영화가 된다. 이 영화에는 남자의 욕망, 여행, 여자, 술, 담배와 같은 일상적인 것으로 가득하다. 남자의 로망은 여자가 남자를 낚을 때 쓰는 미끼가 되기도 한다. <낮술>에는 여자를 욕망하는 남자의 소극적인 심리와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의 적극적인 심리묘사가 공존한다. 여자 친구와 헤어진 혁진. 혁진의 친구들은 혁진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 정선으로 여행을 가자고 한다. 다음 날 정선에는 혁진 혼자 도착하고, 여기서 부터 <낮술>의 목적지 없는 로드무비는 시작된다. <낮술>은 욕망과 일상에 관한 영화이다. 혁진은 혼자 머무르던 펜션에서 혼자 놀러 온 여자를 만나고, 그녀에게 작업을 걸어볼까 생각한다. '옆방여자'는 한번 보고 눈길이 머무르는 여자다. 흰색 스웨터를 걸치고, "저기요~ 담배 한 대만 빌려주세요." 혹은 "저기요~ 저 술 한 잔만 사주세요."라고 접근해오는 여자다. 남자라면 누구나 이런 여자에 살살 녹기마련. 거기다가 장소는 한적한 산골의 펜션이다. 별로 할 일도 없고, 방에만 있으려니 별별 생각이 다 난다. 하지만 영화는 혁진의 욕망이 보기 좋게 배반당하는 상황을 계속해서 만들어간다. 노영석의 웃음코드는 욕망과 배반이라는 말로 정리된다. 기대하던 상황이 어긋나면서 주인공 혁진은 비참하게 무너지고, 관객은 그 상황을 즐긴다. 옆방여자는 알고 보니 팜므파탈이었고, 버스터미널서 만난 이상한 여자는 하이쿠를 읊는 자기 멋에 취한 사람이다. 혹시나 꿈에 나타날까봐 무서운 여자. 안 되는 사람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혁진은 게이에게 겁탈당할 뻔도 하고. 참 되는 게 없는 여행이다. 여행 중 혁진은 매일 술을 먹고, 술을 먹다가 정신을 놓기도 한다. 술을 먹으면 개가 되고, 개가 된 취객을 감상하는 우리들은 그 덕에 즐거울 수도 있다. 또는 함께 술을 먹으면서 같이 웃고 떠들 수 있다. 노영석 감독의 <낮술>은 전자와 후자를 모두 포함하는 영화다. 실로 영화를 쥐고 흔들면 알코올이 뚝뚝 떨어 질만한 영화다. 영화에 취하고 싶은 자는 <낮술>을 보라. 그리하면 술에 취한 듯 웃다가 자지러질 것이다.
<낮술>은 폼 잡으면서 진지한 척하는 영화가 아니라, 스스로 웃으면서 함께 웃자고 제안하는 영화다. 여기에는 일상이 있고, 일상에서 오는 소박함이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솔직하고 소탈하며 거짓을 모른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오래두고 가까이 만나는 친구를 대하는 편안함이 생긴다. <낮술>은 다가오는 인디포럼에서도 상영된다고 하니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아마도, 가볍게 웃고 오랫동안 미소 지을 것이다. <낮술> 때문에.

1,000만원으로도 영화 만들 수 있다!
첫 상영 때 관객 반응이 폭발적이던데, 느낌이 어떤가?
표가 없어서 관객과 함께 보지는 못했다. 나중에 지인들에게 듣고서야 관객 반응을 알게 되었다. 관객들과 같이 보고 싶었는데, 보고 나면 GV때 떨릴 것 같아서 보지 않았다. 관개들이 많이 웃어줬다니 기분이 되게 좋다.
서울대 공예학과를 졸업하고 음악을 하다가 영화를 하게 되었다. 이력이 참 다양한데.
중학교 때는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도 좋아하게 되었다. 미술보다 더 오래 했던 건 음악이었다. 미대를 갔던 건, 음대를 갈 실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음악 다음으로 좋아했던 게 미술이라서 망설임 없이 미대를 지원할 수 있었다. 미술이나 음악이나 단지 표현 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은 직접적이지만 그림을 보면 좀 더 느긋하게 생각하면서 볼 수 있다. 두 가지가 합쳐지면 영화로 표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표현 방식이 너무 좋아서 영화를 택하게 된 것 같다. 고등학교 때 "32살이 되면 영화를 해야지"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음악적 꿈은 못 이뤘지만 계획 했던 대로 되어서 너무 좋다.
한겨레 영화 학교 출신이다. <달콤 살벌한 연인>을 만든 손재곤 감독도 한겨레 출신인데, 어떤 과정을 공부했고, 동기들과의 관계는 어떠했나.
연출 공부를 하겠다는 욕심보다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길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한겨레에서 <낮술>에 배우로 출연한 이란희 씨도 만날 수 있었다. 좋은 친구들과 좋은 인연을 만들어준 곳으로 기억에 남는다. 결과적으로 <낮술>을 만드는데 기여를 한 것 같다.
란희 역할로 출연한 이란희 씨는 김곡,김선 감독의 <뇌절개술>에 출연하신 분이다. 이 영화에서는 조감독으로도 참여하셨는데.
많은 부분에 도움을 주셨다. 척 보면, 굉장히 기가 드세 보이는 얼굴이지만 여성적이고 세심한 부분이 많으신 분이다. 조감독 하면서 스크립터도 그분이 해주셨고, 연극을 하신 분이라 배우들 캐스팅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 게이로 출연한 분이 남편분이시다.(웃음) 또, 편한 누나라서 개인적인 고민도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배우와 전 스텝들이 모두 술을 먹고 영화 촬영을 했다고?
그거는...(머뭇) 나중에 홍보를 하게 되면 특별히 내세울게 없을 것 같아서 여러 가지로 고민하다가, "전 스텝이 술을 먹은 영화"라고 컨셉트를 잡았다. 그래서 아예 작정하고 스텝들에게 먹이기도 했다.(웃음) 배우들에게 술을 먹였던 건, 짧은 시간 안에 자연스러운 연기를 뽑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촬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술 먹은 상태를 찍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극 중 '옆방 여자'를 연기한 배우는 나랑 아침까지 술 마시다가 촬영에 들어가기도 했다.
영화 속에 감독님의 경험이 섞여 있는 것 같던데.
경험적인 게 섞여 있지만 조금 과장된 게 있다.(웃음) 영화 속 주인공인 혁진이 정선의 한 펜션에 머무르는데, 나도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 정선의 펜션에 간 적이 있다.
돈을 써야 그게 아까워서라도 무언가를 할 것 같았다. 눈이 엄청 오던 날이었는데, 정선을 가기위해서 기차를 탔다. 흔히들 남자라면 '옆자리에 누가 앉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나. 진짜로 누가 앉긴 했는데 조금 애매한 분이었다. 얼굴이 예쁘기는 한데 나이든 유부녀. 나는 시나리오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바깥 경치를 구경하는데, 그리고 그걸 즐기고 있는데. 자꾸 말을 거는 거다. 그 분은 자기가 서울에 살았다는 걸 강조하면서 내게 인지를 시키려고 하더라. 나는 머쓱해 하면서 "내 알겠습니다" 했지. 그 분의 캐릭터가 극중 란희 캐릭터에 약간 투영되었다. 진평역에 내려서 펜션까지 걸어간 것도 영화 속 혁진의 모습과 같다. 걸어가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길이 너무 적막해서 그런지 무서운 생각이 들더라. 이런 날 산짐승이 나와서 날 죽이면 아무도 모를 건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게 영화 속에는 '호랑이 사건'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펜션에 묵을 때 옆방 여자에 대한 캐릭터를 구상하게 되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여관이나 펜션에서 혼자 있다 보면 옆방에 소리가 들리면 궁금해 하는 거.(웃음) 영화 속 많은 이야기들이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거다. 혁진이 게이에게 당하는 에피소드도 약간의 경험담이다.
한국 영화에 대한 오마쥬가 많이 보인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에서 힌트를 얻었다. <생활의 발견>을 볼 때 깔깔대면서 봤는데. '아! 이런 걸로도 영화를 찍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예지원씨가 한국무용하고, 살사 춤을 추는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홍상수 감독 영화의 엉뚱하면서도 생뚱맞은 상황들을 너무 좋아한다.
<낮술>을 만들면서 홍상수 감독을 염두에 둔 건 아니지만, 아마도 무의식중에 홍상수 감독에 대한 내 애정이 묻어나지 않았나 싶다. 영화 속에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봄날은 간다>는 아직 보지 못했다. <구타유발자>는 낮술을 너무 좋아해서 들어간 것 같다. <구타유발자>에서 강을 끼고 삼겹살 먹는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영화를 보는 데 완전 죽겠더라. 이문식이 교수님에게 생 삼겹살 권하는데, 난 그것도 먹고 싶더라.(웃음) 사실 구타유발자는 인연 아닌 인연이다. 예전에 영진위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시를 한 적이 있다. 발표가 나던 날 확인해보니, 내 이름이 장려상에 올라와 있는 거다. 그래서 나는 붙은 줄 알았지. 헌데 작품을 보니 내 작품이랑 이름이 달라. 알고 봤더니 동명이인인 거다.(웃음) 그리고 나서 그럼 1등은 뭘까 하고 봤더니 <구타유발자>였다. 내가 떨어질 정도였으니 이 작품은 죽이겠구나 싶었지. 물론 나중에 영화를 봤더니 '야~이래서 뽑혔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
감독님이 횟집 주인 역할로 잠깐 등장한다. 히치콕처럼 자신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고 싶었나?
그거는 의도 한 거다.(웃음) 연기를 너무 해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주인공인 혁진 역할을 하려고 했었는데, 연출하면서 연기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이 힘들 것 같아서 '옆방 남자' 역할을 하려고 삭발까지 했었는데, 그 역할도 연출이랑 병행하기에는 힘들 것 같더라. 아, 연기는 정말 해보고 싶더라.(웃음)
여성캐릭터가 인상적이다. '옆방여자'는 남성을 유혹할 만한 캐릭터이다. 혁진에게 상처를 주기는 하지만 미워하려고 해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꼬시기만 하는 여자. 요즘 표현을 빌리면 "남자를 어항 안에 가두는 여자". 쉽게 말하면 남자들이 자기를 짝사랑하게 만들어놓고는 나 몰라라 하는 여자다. 예를 들어서 남자가 혼자 짝사랑하다가 마음을 접으려고 하는데 딱, 그 때 전화해서는 남자 마음을 흔드는 여자. 미워도 미워할 수가 없는 여자들이 있다. 그런 캐릭터를 한 번 그려 보고 싶었다. 영화에서 옆방 여자가 혁진에게 다가와 술 사달라고 조르는데, 혁진의 다리까지 만진다. 그러면 남자들은 "이 여자가 날 좋아하나?" 하고 착각하기 마련이다. 순진한 남자를 혹하게 하는 여자!
버스 정류장에 있는 슈퍼마켓 사장님은 현장 캐스팅인가? 할머니의 대사 리듬감이 매우 특이하다.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와 이영애에게 밥을 주시던 할머니가 생각 날 정도로 구수하고 좋더라.
허름한 슈퍼를 알아보다가 스텝들이 찾은 장소다. 처음에는 스텝이 사장님께 부탁을 하니 거절 하시는 거다. 그래서 직접 찾아갔더니 화장을 곱게 하고, 촬영할 준비를 다 하고 계시더라. 촬영하면서 너무 즐거워하셨다.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할머니 연기가 어색하다. 근데, 오히려 그런 정색하는 연기가 영화에 기여를 한 것 같다. 표정하나 건조한 말투로 "호랑이도 나와"라고 하는 대사가 관객에게 제대로 먹혔던 것 같다. 할머니께 너무 감사드리고, 나중에 꼭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다.
영화 속에서 텅빈 풍경이 자주 등장한다. 이를테면 장날인줄 알고 갔는데, 시장이 텅 비어 거나, 겨울 바다의 썰렁한 풍경들이 주인공을 처량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그런 풍경을 좋아한다. 영화적으로도 공간감을 표현하기에도 좋은 것 같다. 적막함이라고 할까. 텅빈 공간을 통해서 주인공의 외로움이나 쓸쓸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낮술>은 1000만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찍은 영화다. 제작비를 어머님께서 지원했다고 하던데.
지금까지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어머니는 내가 하는 걸 늘 믿어주셨다. 영화한다고 했을 때도 외려 내게 위로를 해주시면서 천천히 하라고 하셨다. 늘 내게 위로를 주시는 분이다. 참 감사드린다.
<낮술>은 독립영화 답지 않게 웃을 수 있는 요소들이 풍부해서 좋은 영화였던 것 같다.
독립영화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닌데, 독립영화하면 우울한 이야기거나 생각이 많이 들어간 영화라는 느낌을 받는다. <낮술>을 통해서 독립영화도 가볍고, 웃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들이 안 웃어줬으면 큰일 났었을 텐데. 그나마 참 다행이다.(웃음) 또, 이 돈(1000만원)가지고도 장편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주변에서 만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맘고생도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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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 낮술의 혼곤했던 추억 '낮술'
Tracked from 골룸에세이 2기 삭제낮술 마시고 취하면 애비 에미도 몰라본다더란 얘기도 있지만낮술은 은근히 흥건히 취하는 경향이 분명 있는 것 같다.뇌세포가 활발히 움직일 때 마셔서 그런건지, 아니면 태양빛이뭔가 나쁜 짓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경험상으로 분명 그렇다.언제인가 설악산에 금강굴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하산길에 있는 주막에서 오징어불고
2008/05/1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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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 타르는, 거스 반 산트가 오마주를 바친 감독으로 이미 동시대의 수많은 감독들에게 찬사를 받고 있는 영화인이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첫 번째 선을 보일 때 벨라 타르의 <사탄 탱고>를 상영했었고, 당시 심야상영이었던 영화에 대한 호평은 끊이지 않았다. 물론 2000년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내가 <사탄 탱고>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말로만 듣던 전주의 소식을 뒤로하고 고등학교에 올라와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러닝타임 7시간'을 자랑하는 <사탄 탱고>를 어둠의 경로를 통해 잠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어줍잖게 만났던 <사탄 탱고>는 결과적으로 내게 갈증만 더해준 꼴이 되었다. 그때 나는 <사탄 탱고>를 스크린으로 보지 않으면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는 생각에 못을 깊게 박았다.
<사탄 탱고>는 분명히 원작이 존재하는 영화였으나, 원작만큼의 내러티브를 기대하기는 힘든 작품이었다. 여러 가지의 챕터로 구성되어 등장인물들의 순환을 바꿔가는 영화에서 주된 내용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쉽게 말하자면 <사탄 탱고>는 인과응보, 혹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를 띄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본적인 틀 만을 바라보았을 때 나올 수 있는 너무나도 간단한 이야기다. 영화는 식상한 표현을 앞세워 말하자면, '인간의 인생은 복잡하다'라는 식의 화두를 던져놓고 꼬인 상태의 문제를 풀어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나의 현상이 던져지고, 그것을 둘러싼 마을 주민들의 일상은 장조에서 단조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마치 오래된 헛간의 거미줄이 솎아내기 힘들 정도로 얽혀있듯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을 창조해낸다. 그들은 '주점'이라는 공간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며 천천히 리듬 속으로 몸을 던진다. 탱고의 12스텝을 토대로 6스텝은 앞으로, 6스텝은 뒤로 발걸음을 옮기며 인간이 보여 줄 수 있는 극한의 공간을 노래한다. 말하자면 '사탄 탱고'는 잿빛 아코디언과 검은 색 피아노가 노래하는 세상의 끝, 인류의 바닥을 달리는 변주곡이다. 

잠시 숨을 가라앉히고 식상한 이야기를 꺼내보자. 전작의 파격과 성공에 대한 기대치는 언제나 후작에 영향을 준다는 정석은 이 세상 어떤 감독이라도 피해갈 수 없는 절대 진리다. 조지 로메로의 신작과 윌리엄 프레드킨의 신작을 같은 공간에서 같은 날에 볼 수 있다는 것은 호러영화의 골수팬들, 그리고 나에게 엄청난 전율을 선사하기에 마땅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을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두 전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과 <엑소시스트>를 망라하는 (꽤 오래된) 후작을 감상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그 누구라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기차는 달리고 버스는 날랐다. 전주 톨게이트를 지나기 한참 전부터 졸린 눈을 부릅뜨고 두 손에 짐을 꼭 쥔 채 버스에서 내려 뛰어갈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가까스로’ 정시에 도착해 친구가 발권해준 티켓을 받아들고 상영관으로 축지법을 구사하듯 뛰어 들어갔다. 로메로와 프레드킨의 '시간적 조우'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하여.
모두가 웃고 떠들어야 할 본질을 ‘영화’에서 찾는다면, 썩 잘 들어맞을 정도로 <오두막>은 재치가 넘친다. 덜 떨어진 등장인물들의 행위를 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장담컨대 관객을 제법 만족시킬 정도로 ‘사람 썰기’를 강행했던 영화의 미장센은 연달은 상영으로 지친 분위기를 마음껏 띄워주고도 남았으리라. <오두막>의 재미가 중반을 넘어서도 급감하지 않는 이유는 ‘주인공은 다치지 않아’의 법칙을 말끔하게 도려내기 때문이다. 어리버리한 주인공들 중 멀쩡한 신체를 가지고 뜀박질을 해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들은 신체 일부가 잘려나감에도 불구하고 불타는 투지로 살인마를 잠재우기 위한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지만, ‘사람 죽이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머리가 잘려나가고 팔이 두 동강날 때 관객이 배를 잡고 폭소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노력에 뻔히 보이는 허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원스레 갈라주는 슬래셔 영화를 보면서 웃을 수 있는 축복을 누리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무엇보다 <오두막>은 적재적소에서 사람을 놀래키는 진면목을 발휘하는 힘도 가지고 계시니, 이쯤 되면 나의 넘버 원 슬래셔 무비인 <카니발! 뮤지컬>에 필적할 만도 하다. 잊지 말고 챙겨 넣어야 할 것은 앤디 서키스의 명연기이다.
특히 전주영화제의 경우, 상영관이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 몰려있는 탓에 이동이 편하거니와 직선으로 뻗은 도로 안에서 움직이다보면 아는 얼굴을 부지기수로 만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결국 인사치레로 약속을 해놓고는 지키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요, 청한 사람이 오지 않아도 그러려니 하는 것도 영화제이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밤에 한 잔 해야죠?”라는 빤한 말이 인사를 대신한다고 할지라도, 다음날 미처 만나지 못한 이들과 멋쩍은 재회의 눈인사를 나눌지라도 그리 흠되지 않는 것도 영화제가 선사하는 너그러움 중 하나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영화제에 영화만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비단 필자 같은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전주의 얼굴을 빛낼 개,폐막작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만다 쿠니토시 감독의 <입맞춤>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국내 옴니버스 영화 <시선 1318>이 각각 선정되었다. <입맞춤>의 만다 쿠니토시 감독은 2001년 <언 러브드>로 칸 영화제를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2004년 <터널>로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정식 초청되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감독이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일상을 토대로 잔잔하지만 치명적인 변화의 아름다움을 선사해왔던 쿠니토시의 발견에 새로운 시선을 던진다. 폐막작으로 선정된 <시선 1318>은 국내 다섯 감독의 인권영화 프로젝트로 청소년들이 바라보는 사회의 모습, 그리고 그들이 행하는 '투쟁'에 초점을 맞추었다. 오랜만에 스크린을 통해 이야기를 던지는 이현승 감독(<릴레이>), 배우로 데뷔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방은진 감독(<진주는 공부중>), 2006년 <삼거리 극장>으로 영화 매니아들을 열광케 했던 전계수 감독(<유 앤 미>), 그리고 최근 가장 주목받는 독립영화계의 재치꾼 윤성호 감독(<청소년 드리마의 이해와 실제>)과 스타 감독으로 자리를 굳혀가는 김태용 감독(<달리는 차은>)등 서로 다른 시선으로 채워줄 따듯하고 직설적인 대화법으로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의 말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회고전의 메인을 장식할 벨라 타르는 헝가리가 낳은 최고의 감독으로 손꼽힌다. 수많은 평론가들이 벨라 타르의 이름을 훑어내리며 그를 위대한 시네아스트라 칭해왔으나 우리에게 벨라 타르의 작품을 맛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특히 전주영화제가 막 걸음마를 떼었을 때 상영했던 <사탄 탱고>는, 7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으나 이것이 무색할 만큼 아름답고 매혹적인 벨라 타르 최고의 작품으로 칭송받고 있다. <사탄 탱고>를 포함해 총 12편의 영화를 들고 '직접' 전주를 방문할 예정인 벨라 타르의 미학은 오래 전 부터 수없이 재발견되었던 것으로, 이번 회고전을 통해 벌써부터 많은 시네필들을 전주로 불러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다.
라울 루이즈의 <렉타 프로빈시아>,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수수께끼>를 포함해 이름을 나열하기도 숨이 찬 따끈한 영화들을 차려놓고 대기중이다. '시네마 스케이프' 부문의 다큐멘터리 작품들 또한 작년보다 다양하게 마련되었다. 지아 장커의 신작 두 편과 함께 새롭게 발굴된 동남아시아들의 주목작들이 상영된다. 또한 전주국제영화제의 또다른 자랑거리인 '특별전'에서는, 지난 5년간 비서구 지역의 영화를 발굴해왔던 전주영화제만의 독특한 소통을 계속 이어간다. 올해는 중앙아시아 5개국에 중점을 두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탄, 타지기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의 영화들을 소개할 예정이다.